[우리말로 깨닫다] 놀이를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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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놀이를 놀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1.1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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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놀다는 말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원형적인 의미는 즐거움입니다. 사람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한 학자(호이징하)도 있을 정도로 놀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놀이가 즐거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일의 반대말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놀이는 일과 반대되는 개념은 아닙니다. 놀이가 그대로 일이기도 합니다. 놀다의 다른 뜻에는 움직이다, 일하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자놀이의 놀이는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손을 빨리 놀린다는 말도 손을 빨리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아이가 뱃속에서 노는 것도 아이가 움직인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는 것은 즐겁게 일한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놀이는 연주나 연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노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하는 이에게는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영어에서도 놀다에 해당하는 단어인 ‘play’가 연극을 의미하거나 연주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의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했겠지요. 우리말에서는 연극적 요소가 강한 북청사자놀음이나 사물놀이 등에 놀다와 관련된 표현이 나타납니다. 우리말에서도 연극이나 연주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것이고, 신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물놀이는 북, 장구, 꽹과리, 징으로 이루어진 연주입니다. 원래는 훨씬 큰 규모로 이루어졌던 것인데, 1978년에 악기의 수와 규모를 줄여 공연에 적합하게 수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물놀이가 요즘에는 국악 연주의 대표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네 가지 타악기의 어우러짐은 환상의 조화를 이루기도 합니다. 많은 악기가 그렇습니다만 타악기는 듣는 사람보다 치는 사람의 몰입도가 깊습니다.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접 배워서 타악의 리듬 속에 스스로를 맡기면 심리적인 고통을 벗어나는 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물은 혼자서 하는 연주가 아니라는 점도 좋습니다. 다른 합주도 비슷하지만 사물의 경우에는 모든 참여자가 모든 악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구를 배워서 기본 장단을 익히고, 꽹과리, 북, 징을 익힙니다. 그 중 하나 또는 몇 개의 악기를 담당하지만 모든 악기에 익숙한 사람이 함께하는 연주는 조화의 깊이가 다릅니다. 공감의 깊이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남의 구별이 없어집니다.

여럿이 함께하면 공감의 에너지를 크게 합니다. 넷이서도 가능한 연주이지만 함께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더 흥겹습니다. 흥겹다는 말에서 ‘겹다’라는 말은 ‘정도나 양이 지나쳐 참거나 견뎌 내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저절로’라는 말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흥이 오르면 어깨가 절로 들썩거리는 겁니다.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절로 추임새가 나옵니다. 물론 흥에도 연습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절로 나오는 흥을 잘 이끌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임새가 그런 역할을 합니다. 혼자서는 어색한 흥을 불러 모아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흥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잘한다, 좋다, 얼쑤, 얼씨구’ 등의 말을 하고 들으면서 신이 더 납니다. 몸속의 신이 솟아납니다. 칭찬이 우리를 춤추게 하는 겁니다. 틀린 부분에서 웃음이 납니다. 웃음도 음악이 됩니다. 웃음소리도 공연의 일부가 됩니다. 지나치게 틀려서 당황해서는 안 되겠지만 웬만한 실수는 흐름을 따라 지나갑니다. 그렇게 실수도 흘러가는 겁니다. 실수가 집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은 과장되게 동작을 하여 보는 이, 하는 이의 공감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발림’이라고 합니다. 발림은 비어있는 시간의 공간을 메우기도 하지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화려한 손동작이 소리를 빛나게 하는 겁니다. 과장된 모습은 감정을 전하는 힘이 됩니다. 사물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겹습니다. 흥겹고, 정겹습니다. 몸속에 있는 기운이 펄펄 날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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