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한글과 삼강오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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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한글과 삼강오륜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1.10.0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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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예전부터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이릅니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부부 간의 도리를 의미합니다.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지만 시대에 따라 충성이나 효도, 절개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한글과 삼강오륜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선 세종이 삼강행실도라는 책을 펴냈음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종은 왜 삼강행실도를 펴냈을까요? 세종 당시에 진주에 사는 김화라는 사람이 부모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세종은 인간의 윤리를 도탑게 하고자 삼강행실도를 편찬하는 겁니다. 삼강행실도는 충신, 효자, 열녀의 이야기 즉, 삼강행실의 이야기에 그림을 그린 책입니다. 우매한 백성이 글을 읽지 못하여 깨닫지 못할까 하여 그림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삼강행실도의 편찬과정을 보면서 한글의 창제와도 닮은 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삼강행실도는 한자로 되어 있는 책으로는 내용을 알 수 없었기에 그림을 붙인 것이고, 훈민정음은 한자를 읽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우리말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든 것입니다. 원인은 좀 달랐지만 둘 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삼강행실도에는 그림을 더했지만 여전히 글자를 모르는 백성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한자를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걱정과 당부도 세종실록에 나와 있습니다. 한자를 아는 사람에게 잘 가르쳐 주도록 당부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는 한자를 몰라서 생기는 문제를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하고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번역하고자 합니다.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인간의 도리를 중요하게 생각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후 떠오른 생각이겠죠. 삼강행실도와 훈민정음은 이렇게 닿아있습니다. 저는 삼강행실도의 정신과 훈민정음의 정신은 근본적으로 모두 백성 사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하여 반대 상소를 올린 사람들을 기억할 겁니다.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를 비롯해 여럿이 있습니다. 세종은 상소를 올린 ‘부제학(副提學) 최만리(崔萬理), 직제학(直提學) 신석조(辛碩祖), 직전(直殿) 김문(金汶), 응교(應敎) 정창손(鄭昌孫), 부교리(副校理) 하위지(河緯之), 부수찬(副修撰) 송처검(宋處儉), 저작랑(著作郞) 조근(趙瑾)을 의금부에 내렸다가 이튿날 석방하라 명합니다. 다만 이 중에서 한 명은 파직하게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정창손입니다. 

정창손을 파직한 이유가 바로 삼강행실도 관련 내용 때문입니다. 세종이 밝힌 파직의 이유를 조금 어렵지만 <세종실록>의 내용을 그대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 · 효자 · 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라는 질책을 세종께서 하고 있는 겁니다. 전에 임금이 정창손에게 하교하기를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정창손의 말에 질책을 한 것입니다.  

저는 최만리 등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나 정창손의 삼강행실도 언문 번역 반대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반대도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그래도 한글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보인 겁니다. 모두가 한글 때문에 삼강오륜을 지키는 것은 아니어도 한글 덕분에 서로가 삼강오륜을 지키려는 마음이 깊어질 수는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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