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강제연행 자료 들고온 홍상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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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강제연행 자료 들고온 홍상진 씨
  • 한겨레
  • 승인 2003.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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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부터 닷새간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로비에서 ‘일제강제연행피해자 40만명 명부 전시회’가 열렸다. 이 행사를 주최했던 국회민족정기의원모임(회장 김희선)은 “이 기간 동안 750명 안팎의 피해자 가족이 전시회를 다녀갔으며, 이 가운데 81명이 명부에서 이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지난 30여년간 수집해온 자료들을 바다건너 가지고 온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홍상진 사무국장. 그는 일제강제연행 피해자 문제를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제연행의 직접 피해자인 1세대들이 거의 돌아가시거나 고령이다.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혀질 수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정부에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출국한 홍 국장을 3일 저녁 그가 머물던 호텔 숙소에서 만났다.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활동은 어떻게 하나.

=1972년에 만들어졌다. 총련과 일본의 변호사, 교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다. 1세대들의 기록을 정확히 남기는 게 중요하다. 1세대들의 증언을 녹취도 하고 관련 자료를 찾기도 한다. 최근 10년여 동안 25개 지역별 조사단을 구성했고, 각 조사단은 조선쪽과 일본쪽 조사단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신일본제철소에서 지불되지 않은 강제연행자의 임금이 2800여명에 41만엔(현재 물가로는 2900억엔)이라는 것도 찾아냈고, 군인·군속 사망자 후생연금 9만명분 9천만엔이 지불되지 않은 것도 공개했다. 이런 조사결과는 책으로 냈다. 그동안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의 기록’ 등 100권 이상을 냈다.

-조사에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는.

=일본정부는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로 자료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작년 8월 일본 후생성에 강제연행자 명부 24만명에 대해 공개요청을 했는데, ‘개인에 관한 정보’이기 때문에 공개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일본의 전몰단체나 야스쿠니진자 등에는 자료를 다 넘겨주고 있다. 따라서 프라이버시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후생성에 다시 반박문서를 보냈다. 또 거부하면 소송할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나.

=미국 워싱턴 공문서보관소에는 미군정 시절 일본에서 가져간 자료들이 있다. 91년 워싱턴에 가서 3주간 머물며 자료들도 찾았고,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도서관에서도 찾았다. 또 91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을 8~9번 방문했는데, 거기서 자료를 얻기도 했다.

또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도서관은 중앙정부와 달리 조사에 협조적이다. 아이치현의 한다시는 과거 일제 전투기를 만들던 회사와 교섭을 해서 명부을 받아낸 뒤 우리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일제강제연행자수는 얼마나 되나.

=조사주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한국 조사는 740만명이라고 하며, 북한에서는 840만명이라고 한다. 우리는 600만명으로 추산하는데, 지금 재검토하고 있어서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강제연행의 개념 때문이다. 과거에는 강제를 육체적 강제로 제한했다. 일제시대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이 나왔다. 이 법에 의거해 39년부터 45년까지 정부가 직접 법령이나 지시문으로 일본에 끌고간 경우를 강제연행의 개념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신적 강제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총동원법 이전인 32년 일본 위안부 알선업체가 나가사키에서 일본 여성을 ‘취직시켜주겠다’고 속여 중국 상하이 일본군위안소에 데려간 사건이 있었다. 37년 피해자들이 이들을 제소해서 일본 최고재판소로부터 ‘사람을 속여 데려간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 판례를 97년 오사카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이런 점에서 보면 38년 국가총동원법 이전에 끌려갔던 조선인 위안부 등도 강제연행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엔 국제법위원회는 을사조약이 무효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러면 강제연행은 1905년부터 45년까지 다 포함될 수 있다. 우리 민족 전체가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600만명이라는 계산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일본 외무성에 강제연행자가 450만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것을 토대로 추정한 것인데, 조사단에서 재검토하는 단계다.

-서울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가.

=지난해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위가 중심이 돼서 두 차례 초청했었다. 그러나 한국정부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아 무산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전시회가 처음인데.

=와서 보니까 한국정부의 태도는 일본정부와 꼭같다. 정부기록보존소에는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은 48만명분의 강제연행피해자 명부가 있다. 그러나 공개가 안되고 있다. 본인이 아니면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정보공개법에는 ‘위법 부당한 사업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가 있는 정보’는 비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모두 공개해야 한다.

이번 전시회에도 피해자 가족들이 와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도 모른다’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봤다. 정부기록보존소에 명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없으면 대전 정부기록보존소에 가서 찾아보라고 일러줬다. 국민들의 고통을 이렇게 무시하는 정부가 어디 있나.

-정부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 공개해야 한다. 정부가 명부를 들고 전국을 돌며 전시회도 열어 피해자들을 적극 찾아나서야 한다. 우리는 명부를 들고 일본 전국에서 10차례 이상 전시회를 했다. 왜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의 비공개원칙을 따라가나.

일본은 지금도 남양군도 등 해외유골을 찾기 위해 방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다. 또 8월이면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명단을 전국에 돌리며 찾는다. 물론 조선인강제연행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만, 자기 나라 국민들에 대해서는 철저하다.

-한국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요집회를 10년여째 하는 등 피해보상 문제가 쟁점인데.

=일본의 현행 법해석은 일제의 한국강점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강제연행도 적법행위다고 해석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재판하는 것은 승소할 가능성이 적다.

독일과 미국의 해결방식이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 미국은 정부가 나서서 독일정부와 협의해, 미국의 나치피해자들에게 독일정부와 해당 기업이 절반씩 피해보상을 하도록 했다. 또 이 문제를 국제재판소로 가져가는 방법도 있다. 다만 국제재판소는 민간인이 아닌 정부만 제소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

-민단과의 협조관계는.

=애초 민단은 이 문제에 크게 관심을 안가졌다. 그러나 90대 이후 민단과 ‘사망자 추도회’ 같은 사업을 함께 하는 경우도 생기는 등 분위기가 좋아졌다. 2년전에는 사이다마현에서 민단과 총련 책임자가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동포 1세들의 증언담을 공동으로 수집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남·북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있는데, 이들간 국제연대 노력은 없나.

=지난해 5월 평양에서 남·북한, 중국, 미국, 필리핀 등 8개국에서 참여한 국제연대 회의가 있었다. 이제까지는 피해자들간 연대가 별로 없었다. 제각각 일을 해왔다. 처음으로 연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국제연대기구를 만들자고 결의했다. 올 회의는 중국 베이징에서 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본의 전국 4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30곳에서 조사가 이뤄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역사를 우리 2세, 3세들과 일본학생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

일본인들도 당시 진상을 알게되면 나름대로 판단을 한다. 역사를 정확히 알리는 작업을 안하면 야스쿠니진자 문제, 교과서 왜곡사건 등이 또 나온다. 한국정부도 일본 땅에 묻힌 피해자들의 유골발굴 작업 등 민족의 존엄을 세우기 위한 일에 나서야 한다. 이런 일은 민간의 힘으로 다하지 못한다.정부에서 나서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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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뒤안길

그에게서는 ‘생기는 것도 없는’ 한 길만 걸어온 외고집 같은 것이 좀체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일본정부의 비협조적 태도에 넌더리가 났을 법도 한데 일본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도 핏대 한번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말 끝머리를 너털웃음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쾌활하고 사람좋아 보인다는 인상도 줬다.

그러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이 얘기하려면 또 한참 걸리는데”라고 단서를 붙이면서도 귀찮은 표정없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는 새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 대해 적지 않은 기대감을 표시했다.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정부태도에도 변화가 있겠죠. 특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지은희씨가 여성부 장관으로 입각했으니 기대해 봐야죠.”

그러면서 그는 넌즈시 ‘꼭 써달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전쟁 말기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이 작성한 147명의 미공개 위안부명부를 갖고 있는데, 정부가 비공개로 이들 조사에 나선다면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개인 프라이버시와 관련돼 있어 이번 전시회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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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진 누구인가

총련과 일본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홍상진(53) 사무국장은 일제의 강제연행피해자 조사를 필생의 일로 삼아온 재일동포 2세다. 그의 부모는 제주 출신으로 1930년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으며, 홍씨는 1950년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끼에서 태어났다.

74년 도쿄 조선대 교육학부를 졸업한 그는 효고현 조선학교 교원으로 부임하면서 재일동포의 역사 연구에 관심을 쏟게 된다. “부모세대의 역사를 몰라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처음 시작한 일은 동료들과 함께 효고현 재일동포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90년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으로부터 함께 조사작업을 하자는 제안을 받으면서 그의 본업은 교직에서 강제연행 역사연구자로 바뀌게 된다. 애초 3개월만 임시로 하기로 하고 시작했으나, 한번 발을 들여놓자 중도에서 그만 둘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이후 강제연행 관련자료를 찾기 위해 일본 각지를 돌아다닌 것은 물론이고 미국 워싱턴의 국립공문서보관소, 유엔의 제네바 도서관, 북한 등을 여러차례 방문했다. 또 일본 각지에서 10여차례 피해자 명부를 공개하는 전시회도 열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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