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집트의 한류는 나일강을 타고 번성해 나갈 것이다
상태바
[기고] 이집트의 한류는 나일강을 타고 번성해 나갈 것이다
  • 양상근 주이집트한국문화원장
  • 승인 2021.02.04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상근 주이집트한국문화원장
양상근 주이집트한국문화원장

오늘 아침 우리 문화원의 이집트인 직원 한 명이 출근하기가 무섭게 휴대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어제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식품 진열대에 당당하게 한 칸을 차지한 한국 식품들을 보고 기쁜 마음에 찍어왔다고 한다. 

그간 이집트에서는 한류 팬을 중심으로 K-Pop과 함께 한국 음식에 대한 인기 또한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현지에서 라면 등 한국 식품을 직접 구매해서 조리해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한국 식품 중에서 이슬람 율법이 허용하는 식품, 즉 할랄 인증을 받은 식품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있다 해도 낮은 인지도와 높은 가격으로 인해 찾는 이들이 적다 보니 일반 식품점에서 구경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주이집트한국문화원은 한국의 할랄 인증 식품업체와 이집트 현지 유통업체들을 온라인 상에 모아 비즈니스 미팅을 주선하고, 유명 SNS 인플루언서의 협조를 얻어 한국 식품을 온라인 상에서 떠들썩하게 홍보한 적이 있다.

다행히 행사에 참여한 한국 업체와 이집트 업체 간에 사업계약이 체결되고, 현지 대형 유통업체에도 한국 식품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다는 반가운 소식들이 이어지더니 이제는 현장에서 귀한 결실들이 맺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 나라에서의 한류는 더딘 듯 실속 있게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2018년 봄, 낯설고 물선 먼 나라 이집트에 와서 “사막의 모래바람보다 뜨겁게 한류를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필자는 문화원장으로서 주어진 임기를 마치고 어느새 귀임을 앞두고 있다. 

지난 3년간 이집트 방방곡곡을 누비며 한국문화를 알려왔건만, 막상 그간의 활동에 대한 성적표를 확인하려니 자신이 없는 면도 없지 않다. 

문화원이 주최하는 행사마다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한류 팬클럽 회원 수도 크게 증가했다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여전히 한국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고 남북한 구별은 물론 대한민국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이가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나라 한류의 외연은 확장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던 것일까? 이러한 불안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찾게 됐다.

지난해 초부터 불어닥친 범세계적인 팬데믹은 사람을 모으는 것을 주된 특성으로 하는 문화원 활동에도 직격탄을 안겼다. 이로 인해 한-이집트 수교 25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이벤트들이 줄줄이 취소된 것은 물론, 문화원 내부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행사조차 더는 진행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바로 비대면 문화행사로의 전환을 서두르게 하는 순기능도 가져왔다.

온라인 중심으로 문화행사를 개최하다 보니,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한식강좌, K-Pop 강좌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특히 강좌 참여를 위해 몇 시간을 오가야 했던 지방 거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참여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4월 개최한 온라인 한식강좌의 경우, 실시간 시청자 수가 200명을 넘어서고 누적 뷰어 수 3천여회, 경연대회 온라인 투표 참여자가 2만6천명에 달하는 등 10명 내외가 참여하던 예년 행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더 나아가 지난해 11월 개최된 온라인 할랄푸드 전시회(18만회)와 수교 25주년 기념 영상(누적 7만2천회)은 그간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조회 수를 기록해, 이 나라 곳곳에 잠재돼 있는 한류 수요층이 얼마나 두텁고 확장 가능성이 큰 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렇듯 2004년 드라마 ‘가을동화’ 방영을 계기로 시작된 이집트의 한류는 범세계적인 K-Pop 인기에 힘입어 한 단계 성장했고 이제는 한국음식(K-Food), 한국미용(K-Beauty), 디지털콘텐츠(K-Content)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금년 초 우리 정부는 국제개발협력(ODA) 중점협력국에 이집트를 포함함으로써, 우리의 개발경험을 이 나라와 적극 공유하고 각 분야 개발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앞으로 한국정부의 이러한 지원 노력이 곳곳에서 성과로 나타나면 한국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여기에 한국의 문화까지 덧입힌다면 이 나라에서의 친한(親韓) 분위기는 더욱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확산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잘 살려 양국 간의 수평적인 문화교류를 적극 장려해 나간다면 우리 문화에 대한 이 나라 대중의 수용성은 더 높아지고, 이를 통해 한국문화가 ‘소수 매니아 계층만이 찾는 변방의 문화’가 아닌 이집트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류 문화로 우뚝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집트 속담에 “한 번 나일강 물을 마신 사람은 반드시 되돌아 온다”는 말이 있다. 비록 다시 돌아올 수는 없을지라도 이 나라에서의 한류가 나일강을 타고 계속 번성해 나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이역만리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했던 소중한 자산들이 본부(국무조정실)에 복귀해서도 값지게 쓰여지리라 기대해 본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