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프랑스의 역사 교사 참수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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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프랑스의 역사 교사 참수 원인은 무엇인가?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 승인 2020.10.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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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최근 아랍의 테러 사건들을 되짚어보면

지난 10월 중순 아랍 위성 방송에서는 이슬람의 이름으로 폭력, 즉 무슬림이 저지른 폭력(알운프 알이슬라미) 사건이 3건 보도됐다. 첫 번째는 이라크의 쌀라흐 알딘 주에서 일어난 12명 납치 사건인데, 그들 중 8명이 살해됐다. 순니와 시아 무슬림 간의 사건이고 무장한 시아파 무슬림이 순니파 무슬림을 납치해 죽인 사건이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이란에 충성하는 집단들이 현 이라크 알카지미 정부와 쿠르드족과 순니 무슬림에 대항하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레바논 북부에서 IS 조직이 저지른 사건인데, 한 마을에서 3명의 기독교인이 살해됐다. 레바논 군인들이 용의자를 뒤쫓아 조직원 10명이 사살됐고 10명은 체포됐다. 레바논 북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순니 레바논 사회 안에 무장된 지하드 조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세 번째는 요르단에서 일어난 흉악 범죄 사건이다. 요르단은 정부 주도의 사회 통제가 강해서 나쁜 뉴스는 좀처럼 언론에 비치지 않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끔찍한 살인 사건이었다. 이 범죄가 요르단의 이미지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 알샤르끄 알아우사뜨는 전했고 요르단 경찰은 관련 동영상을 유포한 자를 엄단하라고 지시했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에 있는 자르까에서 10명의 무슬림이 16세 소년을 사막으로 데려가 도끼로 두 손을 자르고 눈을 칼로 찌른 내용이 동영상으로 유포됐다. 그 소년의 아버지가 갱단의 한 사람을 죽인 일로 갱단이 아들에게 보복한 것이다. 가게나 자판대를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갱단이 돈을 갈취하는 일이 요르단에서 최근 몇 년 동안 확산되고 있다. 

국가 경제가 악화하고 부패가 확산되고 있는 요르단에서 정부가 코로나 방역으로 국민 보건에 집중하다 보니 이런 사회적 문제를 방치해 온 것이 아니냐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2003년 이라크에서의 테러 활동 그리고 2011년 이후 혼란스런 시리아에 요르단 범죄자들이 지하드 전사(jihadist)로 참여하는 것을 요르단 정보 당국이 눈감아주었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사건은 정치적-전략적, 종교적-문화적, 경제적-사회적인 이유를 갖고 모두 사전 모의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럽연합 28개 회원국에 거주하는 무슬림 2천 5백만명

그런데 10월 16일 프랑스 역사 교사가 무함마드 만평을 수업시간에 언급한 것이 이슬람의 예언자를 비하했다고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체첸 무슬림에 의해 참수됐다. 당시에 역사 교사를 죽이라는 “파트와(이슬람 법적 문제에 대한 판결)”가 있었다고 언론은 전한다. 프랑스에서 역사 교사참수 사건 이후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연설에서 프랑스의 ‘분리주의 이슬람’(알이슬람 알인피쌀리)이 문제라고 했고 ‘무슬림들의 잔인성’을 지적했다고 레바논의 이슬람 학자 라드완 알사이드가 전한다.

유럽연합(EU)의 28개 회원국에 거주하는 무슬림은 2천 5백만명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일자리를 찾아 유럽으로 건너왔고 주로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업종에서 일했다. 1980년부터 그들은 모로코, 파키스탄, 터키에서 온 이민자로 인식되지 않고 ‘무슬림’으로 유럽 사회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그들의 신분증에 ‘무슬림 프랑스인’이라고 적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무슬림이라고 기록된 신분증이 기존 사회에서 차별받는 원인이 된다고 일부 무슬림들은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토종 무슬림 6만명 그리고 해외에서 입국한 무슬림 20만명, 도합 26만명이 살지만 신분증에 종교를 표시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역사 교사의 참수 원인은 무엇인가? 

아랍인 칼럼니스트들은 지난 한 주간 아랍 신문에 참수 원인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내놓았다. 이런 견해들 중에는 이슬람적인 입장 또는 고전적인 서구적인 시각 그리고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글을 전개했다. 여러 분석 기사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서 필자의 생각을 추가해 정리해보았다.   

첫째, 이번 테러는 외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체첸인 난민이 프랑스인 역사 교사를 참수한 뒤 아랍 언론은 그가 시리아 이들립의 IS 조직원(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극단주의자)과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를 이용했다는 것과 그가 프랑스 역사 교사를 식별하는데 4명의 학생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보도했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 10월 20일 페이스북으로 동영상을 나눈 모스크를 폐쇄하라고 명령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의회가 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통로를 차단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동영상에는 학부모들이 그 학교 이름을 대고 교사 이름까지 밝히고 있었다. 테러리즘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다는 프랑스 야당의 공격을 받은 마크롱 대통령은 “‘이슬람주의 분리주의자’를 단속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슬람을 더 잘 알고 아랍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랍어를 잘 안다고 이슬람주의자를 분간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3년간 32건의 이슬람 테러가 있었다고 하는데, 알아즈하르의 쉐이크 아흐마드 알따입은 서구의 정치인 일부가 ‘이슬람 테러(알이르합 알이슬라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비판했다.

둘째, 프랑스가 갖는 사회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슬람 종교에 속해 있으면서 극단과 테러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은 남에 대한 증오와 상대를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 이들을 아랍어로 ‘이슬라마위’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슬람의 이름으로 테러를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프랑스에 사는 무슬림들 중 소수는 가난하고 문맹인이 있지만 또 부자인 사람도 있고 공적인 일에도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무슬림들이 프랑스에서 특정 지역에 주변화돼 있다. 한 가지 문제의식은 무슬림들이 프랑스인과 권리 의무에서 동등하고 공존과 사회적 통합에 얼마나 열심이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체첸인 무슬림도 프랑스에 난민으로 와서 법에 규정된 연령까지 정부 지원을 받다가 그 이후 지원이 끊기면서 폭력 세력에 발을 디딘 것이라고 한다. 

현 리비아 외무장관 압드 알라흐만은 이번 사건의 범인은 이슬람의 정신을 몰랐던 사람이라고 진단하고 프랑스에 사는 무슬림 신세대가 종교의 무지에서 벗어나려면 아랍어 학습을 확대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에서 아랍어과 전공을 하더라도 꾸란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꾸란을 해석하고 알기 어렵다. 오히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격이니 어설프게 아랍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리비아 외무장관 압드 알라흐만은 프랑스 교사를 죽인 것은 이슬람이 아니고 이슬람에 대한 무지가 그를 죽였다고 했다. 우리나라 언론에 등장하는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간혹 그 정확성과 객관성에서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랍 이슬람국가들은 타종교에 대해 각급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현상을 ‘무지의 충돌(씨담 알자할라트)’이라고 불렀다. 이슬람 사회가 타종교를 이해하려면 객관적인 시각에서 타종교를 학습해야 한다. 

셋째, 이번 테러는 일부 무슬림들의 극단적인 문화 때문이다

워싱턴의 어느 대학에서는 세계에서 극단과 테러가 증가하는 것을 다각도로 해석한 교수가 있었다. 첫째, 보수적인 문화를 공격하는 서구적인 생활 패턴과 현대화에 대한 반작용이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고 둘째, 오늘날 수백만 무슬림 청년들이 주변화돼 살고 있는 상황 때문에 그들이 심리적 좌절감에서 벗어나려고 극단적인 문화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고전적인 해석인데, 극단적 성향이 높아지는 이유는 서구 제국주의 특히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해석은 극단주의자들이 바라던 것 이상이다. 오히려 무슬림 청년들이 자신들이 고립됐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들 스스로가 감정에 불을 지피고 극단 세력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다양한 요인들이 극단과 증오 문화 속에 잠재돼 있었고 이것으로 인해 ‘병든’ 무슬림 전사를 키워낸다는 사실이다. 

극단적 사고의 주된 동인은 서구 대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제국주의와 현대화의 주제와 상관이 없고, 이들 무슬림들은 카피르(알라를 믿지 않는 자; 『한국의 무슬림』 책 참조)나 진리의 길에서 길 잃어버린 자를 처단하고 세상에서 이들의 오점을 깨끗이 지워버리자는 것이다. 

물론 테러와 폭력 문화의 뒤에는 극단주의가 있다. 그들에게 폭력 문화는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지 않고 서로 얽힌 다양한 안건을 해결하는 첫 번째 타격이라고 보았다. 

무슬림들은 두 가지 역사를 갖고 있다. 하나는 관용적이고 계몽적인 사고를 갖는 역사인데 공존과 안정을 지향하고 사상가, 의사, 법학자, 시인, 정치 지도자들 중에 이런 부류의 무슬림이 있다. 다른 하나는 극단주의를 부르짖는 무슬림인데 근본주의 정치 지도자와 역사가들이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역사가 첫 번째 역사를 능가한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중동 이슬람 세계에서 후자의 역사가 위세를 떨쳤다. 이슬람 역사에도 관용과 계몽의 시기가 있었지만 무슬림 청년들이 자라면서 지난 세월에서 부당한 측면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아랍 이슬람 역사의 문화적 황금기를 가르치지 않고 극단주의로 이끌어가는 극단주의자들이 청년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해법은 무슬림들이 극단주의 문화(사까파 알타따루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슬림 청년들의 물 컵에 독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 

넷째, 유럽에서 이슬람 종교 집단과 테러 집단에 대한 저항이 확대될 것이다.

아랍인 칼럼니스트 사우산 알샤이르는 프랑스 역사 교사의 참수 이후, 프랑스 사회 안에서 종교집단을 지원하는 좌익 세력과 야권의 우익 세력이 충돌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역사 교사가 살해된 이후 프랑스 언론은 일제히 종교 집단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좌익 정당들은 이슬람 종교 집단들을 지원하는 그들의 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우산은 앞으로 유럽에서의 갈등은 이슬람을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종교 집단에 대한 저항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테러와 관련된 종교 집단에 대한 유럽인들의 봉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슬람 담론의 갱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슬람과 테러 간의 범죄 상황에 대한 설명에서 “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슬람의 테러(알이르합 알이슬라미)’라는 말을 두 번 사용했다. ‘알이르합 알이슬라미’는 이슬람이 저지르는 테러라는 말이 연상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그의 정적을 겨냥하고 이런 말을 사용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아랍 국가들 중 일부에서는 모스크에서 일하는 이맘들을 재교육을 하고, 정부의 종교성이 모스크 설교의 사전 점검, 소통 방식의 개선, 종교의 올바른 인식, 잘못된 종교적 개념의 개정, 성숙한 사고의 확대 등을 지도해 왔다.

2004년 암만 메시지, 2007년 사우디의 압둘라 왕 재단이 주관한 종교 간 문화 간 대화, 알아즈하르의 공존에 대한 백서 등 종교적 개혁(알이쓸라흐 알디니)의 과정들이 있었지만 이슬람 종교 기관으로 이런 캠페인이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종교적 담론에 대한 갱신을 아랍 이슬람 정부가 꾸준하게 강조해 왔지만 여전히 무슬림 청년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라드완 알사이드는 말한다. 그는 이슬람 세계의 문화인, 종교 책임자, 정치인들이 폭력에 대항해 안정된 사회를 추구하고 청년들은 자기 절제를 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사건을 보고 아랍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어떠한 명분으로라도 극단, 과격, 테러는 용납될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국 정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토종 한국인 무슬림 6만명보다 외국인 무슬림이 20만명으로 3배 이상 더 많으므로 무슬림들이 종교 간의 화합에 힘쓰고 우리나라의 법과 한국 문화를 존중하게 하려면 그들을 위한 중도 이슬람(와사띠야)과 종교적 담론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은 이슬람의 유산과 현대 이슬람 사상과 문화, 그리고 사회 현상을 알아야 균형 잡힌 안목을 갖게 된다. 과거 이슬람 유산에만 치우쳐 있거나 어떤 특정 국가에만 제한되거나 어느 이슬람 종파나 신학파에 국한되지 말아야 한다. 

아랍 이슬람 세계는 지난 100년 동안 종교적 담론을 개선하는 운동을 하지 않다가 최근 몇 년 전부터 이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인명을 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이슬람 세계의 극단주의 문화가 국내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정책을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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