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한 에르도안과 이슬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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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한 에르도안과 이슬람주의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7.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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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지난 7월 24일 정오에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이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모스크로 바꾼 “성 소피아 대사원”(모스크 아랍어 현판에는 ”마스지드 아야 쑤피야 알카비르“)에서 1,000여명과 함께 이슬람의 금요 기도를 했다. 아야 소피아 건물 밖에서는 더 많은 터키 무슬림들이 대형 스크린에 비친 기도 순서에 따라 함께 기도했다. 터키인들은 86년만에 아야 소피아가 모스크로 바뀐 것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는 무슬림들도 있었다고 BBC는 전했다.

터키 종교성 장관 알리 에르바스(Ali Erbas)는 금요 설교 중에 ”정복자 술탄 메흐메트가 이 건물을 부활의 날까지 모스크로 사용하도록 무슬림들에게 주었다“고 말했다. 이슬람주의를 옹호하는 카타르의 국영 방송 알자지라의 특파원은 ”1,800만 도시에서 7월 24일 금요일이 매우 중요한 날이 되었다“고 전했다.

매일 다섯 차례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시간에는 성소피아 건물에 부조된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성상과 기독교적인 상징들이 커튼으로 가리워졌다. 에르도안을 비롯한 이슬람주의자들이 성소피아 건물 내부에서 오래 전부터 기도하고 싶어 했는데 ”이제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고 에르도안은 금요 기도 후에 짧게 인터뷰를 했다고 전한다.
 
정교회 성당  ‘아야 소피아의 역사

터키어  ‘아야 소피아(Aya sofia)’는 그리스어로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성스러운 지혜)이고 아랍어로는 ‘아야 쑤피야’라고 한다.

아야 소피아는 537년 비잔틴(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안(Justinian,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성당을 건축하면서 시작되었고 그 뒤 900여년 동안 비잔틴 황제의 즉위식이 이곳에서 거행됐다. 지붕은 거대한 둥근 돔(dome)으로 되어 있고 당시 아야 소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들 중의 하나였다. 그 뒤 수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의 손에 있다가 1204년 십자군이 그 도시를 침입했을 때 잠시 그들에게 넘어갔으나 비잔틴 제국이 줄곧 성당으로 사용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이스탄불(당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무슬림 정복자들이 아야 소피아 경내 안에서 금요 기도를 했다.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들은 이 건물을 모스크로 바꿔 버렸는데 그 때 성당 밖에 4개의 미나렛(첨탑)을 건축하였고 성당 내부에 있던 기독교인의 장식에 덧칠했다.

소피아를 방문하여 옆 계단을 올라가면 그 덧칠을 벗겨낸 자리에 정교회의 성상들과 모자이크가 부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성당의 메인 건물 위쪽 벽에는 “알라, 아부 바크르, 무함마드”라는 단어들을 아랍어로 써서 판넬로 걸어 두었다. 수세기 동안 아야 소피아는 무슬림 오스만 제국과 정교회 세계 간의 문명적 라이벌의 대상이 됐다.

1934년 세속주의 노선을 지향하고 서구화 정책을 강조한 케말 아타투르크는 성 소피아를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바꾸었으나, 에르도안 현 대통령은 2020년 7월 24일부터 성 소피아를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했다.

에르도안은 2003년 실권을 갖는 총리가 됐고 터키 경제가 좋아지면서 2014년에는 직선제 첫 대통령이 되어 모두 18년간 1인 집권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고 정치적 위기를 맞자 이슬람주의자들과 보수 진영의 인기를 얻고자 성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꿔 버린 것이다.

아야 소피아는 1년에 370만명의 여행객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됐으나 코로나19 이후 관광객들이 뚝 그치고 말았다. 소피아 건물 맞은편에 무슬림들이 늘 기도할 수 있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1616년-현재, 블루 모스크)가 엄연히 있는데,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왜 아야 소피아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서 터키 법원이 박물관 지위를 없애 버리게 했을까?

이슬람주의자의 꿈이 현실이 되다

지난 수년간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서구화와 세속주의 정책의 상징이었던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었고, 반면에 세속적인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에르도안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이슬람주의 정책을 주도 면밀하게 실행해 왔는데 그가 성 소피아의 박물관 지위를 없애고 모스크로 바꾼 것은 오직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에르도안은 세계의 종교적 및 정치적 리더들의 비난을 의식한 듯 소피아 성당의 모스크 용도 변경은 터키의 주권적 권리를 행사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성 소피아가 박물관이 된 것은 서구의 모더니티에 국가의 혼(soul)을 팔아버린 것으로 보았고 그래서 이런 치욕의 상징이 된 박물관을 모스크로 바꾸었다고 에르도안은 주장했다.

그런데 1965년 12월 성 소피아에 대한 컨퍼런스에서 이슬람주의자이고 시인이자 논증주의자 키사쿠렉(Kisakurek)은 “성소피아가 박물관으로 변한 것은 터키인의 혼을 박물관 안으로 구겨 넣은 것과 같다”고 주장했었다.

성 소피아는 그 지위가 바뀔 때마다 시대적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현대 터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말 아타투르크는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을 단행하여 이슬람식의 술탄제를 폐지했고 서구화를 꾀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를 그의 이슬람주의 비전에 따라 바꾸려고 아타투르크의 세속적인 유산을 하나 하나 걷어내고 있었다. 에르도안은 자신을 “이 시대의 정복자”로 소개했고 이번에 그가 성 소피아를 이슬람 모스크로 바꾼 것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꾸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터키의 주권을 공격하는 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된 성 소피아를 모스크로 쓰겠다고 한 것에 대하여 유네스코는 심히 유감이라고 표명했고 이스턴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와 차이가 있음; 공일주의 아랍의 종교-,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 세창출판사 참조)의 수장은 에르도안의 이런 조치를 비난하였다고 서구 언론이 전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성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꾼 것은 문명세계에 대한 공개적인 도발이라고 했고 터키 행정 법원에서는 모스크로 지정된 이 건물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불법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1934년 모스크로 사용하도록 했던 결정이 그 뒤 박물관으로 사용된 것은 터키의 법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터키의 보수적인 종교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은 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어 그의 이슬람주의 비전을 실현시킨 것이다. 2020년 7월 14일 뉴욕 타임즈의 정치 분석가 셀림 코루(Selim Koru)는 그의 글에서 “터키의 이슬람주의자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고 소개했다.

터키의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 개발당과 에르도안은 아타투르크의 세속적인 정권을 터키에 대한 외국의 기만(imposition)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성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만든 것은 터키 국가의 정신을 봉인해 버린 것과 같다고 말해왔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을 정치에 이용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무슬림 아랍 국가들이 왜 에르도안의 이슬람주의를 거부할까?

꾸란은 '성당이나 교회를 모스크로 바꾸는 것'을 금하고 있다

우선 아랍 무슬림들은 이슬람주의자와 이슬람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피야 성당은 정교회 성당에서 출발했다는 역사적인 사실도 확인했다. 레바논의 정치인이고 이슬람학 교수인 라드완 알사이드는 알샤르끄 알아우사뜨 신문에 기고한 그의 글(7월 17일자)에서 이슬람이 시작될 때부터 무슬림들은 교회를 모스크로 바꾸거나 교회를 부수는 것은 종교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 예로 그는 알왈리드 븐 압둘말리크가 시리아에서 세례 요한의 교회의 땅 일부를 차지하고서 그곳에 우마위야 모스크를 짓기 전에 정교회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물론 오늘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가면 무슬림들이 그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을 우마위야 모스크라고 말하고 세례 요한의 교회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라드완 알사이드는 7세기 우마위야 왕조가 들어섰던 다마스쿠스에서 그 때는 그렇게 했다고 말하면서 에르도안이 성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꿔 버린 것은 “이슬람 종교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꾸란 구절 22장 8절에 근거하여 교회를 절대로 모스크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 ……만일 알라(Allah)가 일부 사람들을 다른 사람에 의하여 내쫓지 않았더라면 많은 수도원(sawami’), 교회(biya’), 모스크(masjid), 회당(salawat)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알라는 그를 돕는 자를 돕는다…...(꾸란 22:8b, 공일주의 꾸란 해석과 의미번역에 따름).

꾸란의 위 구절은 인류가 종교에서 서로 다를지라도 예배의 자유와 예배 장소를 보존하라는 뜻이라고 라드완 알사이드는 해석했다. 따라서 다른 종교인들의 예배 장소를 자신이 속한 종교의 예배장소로 변경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종교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윤리적인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꾸란이 금하는 일을 과거에 무슬림들이 행한 일이 있는가라고 묻고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종교가 한 일이 아니고 정복(Fath)과 억압적인 권력을 가지고 행한 것이라고 했다. 이슬람의 칼리파(영어로는 칼리프) 우마르 븐 알캇땁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음에 성묘 교회(아랍어로는 kanisah al-qiyamah)에서 기도하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이 기독교의 성소피아 성당에서 무슬림들을 불러 모아 무슬림들의 예배를 드리도록 한 것은 꾸란 본문과 이슬람 전통에 맞지 않는다.

아랍 무슬림의 입장은 '에로도안이 성 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바꾼 일은 정치적인 활동이고 이슬람과 무슬림을 위한 일은 아니다.'

레바논의 이슬람학 교수 라드완 알사이드는 터키의 일부 국민들이 에르도안의 이런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는 것은 확인하고, 그러나 이 일은 정치적인 일이고 이슬람과 무슬림들을 위한 일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이미 이슬람 국가 조직(IS)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교회를 부순 것은 금세기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이슬람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남긴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교회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라드완 알사이드는 에르도안의 성 소피아에 대한 조치는 세속주의 터키인에게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이슬람에도 해를 끼치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수프 알디니는 7월 17일 알샤르끄 알아우사뜨에 기고한 그의 글에서 “에르도안이 국내 문제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했다. 게다가 에르도안이 시리아 전과 리비아 전 개입에서 자충수를 두었고 극단 세력을 지원하고 또 긴장 지역에 테러리스트들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알자지라 TV를 통하여 에르도안이 열심히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지만 그의 주장은 역사적인 사실을 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관용과 온건한 이슬람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했다. 오히려 에르도안이 문명 간의 충돌을 선동하였고 이슬람 포비아의 물결을 조장했다고도 했다.

에르도안,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 조장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 문화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목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에르도안을 “이슬람 세계의 리더”로 정립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터키 밖에서 그의 외교는 실패를 거듭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오스만의 유산을 복원하려는 시도도 불발됐다.

두번째는 에르도안의 역내 국가들에 대한 야심이 서구세계와 EU를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 그가 터키에서 이미 모스크로 바꾸어 버린 4개의 교회보다 성 소피아가 역사적인 상징성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코로나 19 이후, 터키 경제가 심각해지고 시리아와 리비아에서의 군사 작전이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외교에서 실수가 잦아지면서 그는 종교적 그리고 민족적인 이미지를 회복할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아랍의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 됐다.

에르도안은 터키인들에게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되찾자고 강조하는데 이것은 외부로는 이슬람주의를 그리고 내부로는 민족주의를 고양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슬람의 종교인들이 강조하는 이슬람의 종교적인 관용과 문명 간의 대화를 막아버리고 이슬람의 이미지를 왜곡시킨 이번 성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은 그가 아랍 무슬림들에게 “형제”로 불리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일부 이슬람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아랍 무슬림 언론들이 앞 다퉈 그의 성소피아 성당의 모스크 전환을 비판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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