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힘을 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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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힘을 빼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0.07.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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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힘’이라는 말은 정의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힘이 세다, 힘이 들다, 힘을 내다, 힘을 주다, 힘이 빠지다 등 함께 쓰이는 표현도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힘은 참 중요한 어휘입니다.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이루고 싶은 일도 있고, 말 한마디에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살기가 힘들다는 말을 들으면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힘이 들어가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힘이 빠져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몸에 힘을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이 들어가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힘이 생겨나야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밥도 먹습니다. ‘밥심’이라는 말은 ‘밥힘’이라는 뜻입니다. 먹어야 힘을 내고,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주먹을 쥐는 것도 다른 말로 하면 몸에 힘을 주는 것입니다. 가슴에 힘을 주고, 어깨에 힘을 줍니다. 힘을 주는 게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거만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힘은 필요할 때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늘 힘을 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뜻밖에도 살아가면서 힘을 빼야 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생활의 현장에서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힘을 빼라는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힘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상하지요. 힘을 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언제 힘을 빼라는 소리를 듣게 되나요? 언제 힘을 주고, 언제 힘을 빼야 할까요? 

저는 미용실에서 머리 감을 때 목에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생각이 납니다. 미용사가 머리를 감아줄 때 목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제대로 감기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편하게 누워서 힘을 빼라는 말을 듣지만 막상 목에 힘을 빼는 게 쉽지 않습니다. 목에 힘을 주고 사는 버릇은 되어 있는데 목에 힘을 빼는 버릇은 없었나 봅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야 겨우 목에 힘을 빼게 됩니다. 주사를 맞을 때도 힘을 빼라고 하지만 오히려 긴장해서 힘을 더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힘을 빼라는 말이 우리를 긴장시키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운동을 배울 때도 힘을 빼라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특히 수영을 배울 때 제일 자주 들은 소리가 힘을 빼라는 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힘을 주면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도 처음에는 힘을 뺄 수도 없습니다. 힘을 빼면 더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물론 힘을 빼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힘을 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말에 새삼 놀랍니다. 우리는 보통 때 힘을 주고 있지 않고 있음을 새삼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힘을 빼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힘을 주는 겁니다. 힘을 주지 않고 힘을 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무엇을 배우거나 세상을 살아갈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힘껏 살지 않고서 힘을 뺄 수는 없습니다. 힘이 드는 것은 힘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어야 힘을 뺄 수가 있습니다. 집착을 없애려면 집착이 있었어야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요즘 저는 장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장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은 일단 세게 치라고 합니다. 세게 칠 줄 알아야 나중에 힘을 빼고 칠 수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세게 쳐서 제대로 소리를 낸 후 점차 힘을 빼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장구와 함께 민요도 배우고 있는데, 민요도 마찬가지입니다. 큰소리로 부를 수 있어야 낮고 깊은 소리도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목청을 틔우고 나서야 세밀한 소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겁니다.

세상을 사는 것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힘든 삶일수록 더 스스로에게 힘을 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어깨에 힘을 주었으면 합니다.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은 자신감을 의미합니다. 목에 힘을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어깨에 힘을 주고 힘이 들더라도 앞을 향해 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나서 서서히 힘을 빼는 겁니다. 힘을 빼고 옆을 봐야 합니다. 힘을 빼고 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일 겁니다. 늘 힘만 주고 살고 있다면, 반대로 늘 힘이 빠져 살고 있다면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 힘을 주고 빼면 힘만 들어갑니다. 그야말로 힘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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