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체코 수교 30주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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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체코 수교 30주년의 의미
  • 김만석 체코한인회 명예회장
  • 승인 2020.03.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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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석 체코한인회 명예회장
김만석 체코한인회 명예회장

자유와 개혁운동의 상징적 의미로 불리우며 ‘프라하의 봄’으로 널리 알려지고 또한 동쪽의 로마라고 일컫는 천년 고도인 체코 프라하에 필자가 정착한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우리나라는 1990년 3월 22일 최호중 외교장관이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을 방문해 수교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1993년 1월 1일부로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분리 독립되면서 체코공화국으로 이어져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한-체코의 첫 만남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사실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큰 교류가 없던 체코슬로바키아였지만 우리와의 첫 접촉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됐다.

1917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체코슬로바키아 군대는 오스트리아군으로 편입돼 유럽 동부전선인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러시아에 투항했고, 다시 러시아군대의 일원으로 전투를 벌이다가 이때 해외에 조직된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의 군대로 남아 나중에 철수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배속됐고, 1918년 10월 체코슬로바키아가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자 망명군대는 귀국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럽행 배편을 타고 철수를 시작했다.

이때 우리나라 해외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 중에 하나였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민국 독립군이 체코슬로바키아 군대로부터 당시 그들이 갖고 있던 성능 좋은 박격포, 기관총 및 다량의 소총과 탄약을 구입했고,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대첩(1920년 10월)에서 이를 사용해 일본군을 격파하고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향하는 그들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부터 식민통치를 겪은 동병상련의 입장이었기에 갖고 있던 무기들을 독립군에게 헐값에 매각했다고 하며, 훗날 체코슬로바키아 골동품 시장에는 당시 우리 독립군으로부터 무기판매 대금으로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비녀, 금반지, 비단 보자기 등의 물품이 매물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수교 30년 만에 괄목 성장한 한-체코 관계

이러한 짧은 수교역사에도 불구하고 고위급 인사 교류는 꾸준히 이루어져 김영삼 대통령(1995년), 박근혜 대통령(2015년)을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2018년)도 체코를 방문했고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1992년)을 비롯한 바츨라프 클라우스 대통령(2009), 밀로스 제만 현 대통령도 총리 재임시절(2001년) 한국을 방문했다.

또한 2015년 2월에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는데, 이는 체코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 프랑스 다음으로 세 번째이며 아시아국가로서는 우리나라가 최초에 해당한다.

그로부터 수교 30년을 맞이한 체코와 한국의 관계는 괄목할만한 새로운 도약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양국 교역은 30억불 규모로 확대됐고, 2006년에는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이  체코에 설립돼 연간 40만대를 생산하며 전 세계 56개국에 판매하고 있다. 또한 넥센타이어, 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부품 협력사 및 관련기업 62여 업체들이 진출해 한-체코 기업 간 협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됐으며 한국은 독일, 일본 다음으로 체코의 3대 투자국이 됐다.

2004년부터는 인천-프라하 구간의 직항노선이 개설돼 대한항공의 취항으로 체코는 우리에게 더욱 가깝고 친숙한 나라가 됐으며,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는 유럽공항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로 표기된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2020년은 한-체코 상호교류의 해로 풍성한 행사 준비 

주체코한국대사관에서는 한-체코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2020년을 상호교류의 해로 정하고 2천8백여 명의 체류 교민들과 협력해 각종 기념 문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매년 수천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프라하 성에서 우리 관광객이 체코의 역사를 좀 더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설치를 추진하고 있고, 프라하 시내 도로 한 곳을 '서울의 거리'로 이름 짓는 명명식도 예정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인 드보르작과 스메타나를 배출한 나라인 체코에 양국 음악인으로 구성된 한-체코 합동오케스트라가 펼칠 클래식 공연도 준비 중이며,  중부유럽에서 개최되는 유명한 음악축제 중 하나인 ‘프라하의 봄 뮤직 페스티벌’ 기간 중에는 시내 중심부의 역사적 장소인 시민회관의 스메타나 홀에서 국립국악원이 한국의 전통 춤과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렇듯 한-체코 수교 30년을 기념하기 위해 공관과 교민사회가 힘을 합쳐 계획한  많은 문화 예술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전혀 예상치 않게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벌써부터 기념행사들이 지체되고 있어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춥고 어두운 겨울이 지나간 후 초록의 싱그러움을 품고 다가올 프라하의 봄과 함께 맞이할 수교 30주년 행사를 가로막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가 원망스럽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언제나 물러 갈까? 하루라도 빨리 사그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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