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의 코리안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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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코리안 네트워크
  • 이 진영(인하대 국제관계학 교수)
  • 승인 2004.11.2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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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코리안 네트워크 회의를 갔다왔다. 작년 도쿄대에서 열린 회의가 ‘동아시아 공동의 집’ 속에서 코리안 네트워크를 모색하는 방법이었다면 이번 회의는 일본 시민운동 속의 코리안에 대한 내용이었다. 중국동포를 중심으로 연구하면서, 러시아 연해주의 다민족다문화 공동체를 연구하는 필자에게 일본의 코리안 네트워크 관련 회의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중국동포들이 그러하듯 일본동포들도 이제 한국어 및 한반도 역사를 모르는 3세대들이 그 주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동포들이 남북한과 다른 ‘중국의 조선민족’이라는 제3의 정체성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이들이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려고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북한 체제경쟁의 해외전투장이었던 재일동포 사회를 생각할 때, 탈냉전 시대에 들어 이들이 자이니찌(在日)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자이니찌는 민단이나 총련 등 이념적인 색채도, 그리고 귀화인, 레이트카머(70년대 이후 도일), 무국적 조선적이라는 상황도 떠나 일본사회에 살고 있다는 관점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번 회의에서 토론하고 보고된 일본 코리안사회의 운동은 자이니찌에서 한발 더 나간 느낌이었다. 그것은 ‘일본이라는 영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본적인 시각’을 가진, 한반도와 관련이 좀 더 멀어진 ‘제3세대’가 중심이 되어 ‘아시아라는 틀’과 함께 ‘일본사회내의 소수민족’으로 코리안을 위치시키고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연대의 중심도 다른 재일동포보다는 제3국인(대만인), 외국인노동자 등 ‘일본 내의 소수자’들과 함께, ‘일본 내에서의 법적, 사회적 권익’을 향상시키는 차원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세계화라는 현상이 가져온 탈민족주의적인 다민족 다문화 공존공생의 시각이 도입되어, 일본뿐 아니라 한국, 중국의 민족주의적인 운동과 색채는 비판받고 있었다.

한 예로 한국의 정부나 동포관련 시민단체가 추진한 ‘한민족공동체‘ 논의가 가진 민족주의적 성격을 비판하고, 한 걸음 나아가 시대착오적 폭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러한 인식의 틀은 일본 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주류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할 재일동포 후속세대에게는 절박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촌 한민족의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점차 동질성의 척도에서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중국이 정체성의 진한 정도에 따라 화인과 화예를 구분하는 것에 비유한다면, 혈연적인 흔적만이 남아있고 언어, 문화, 생활습관 등 다른 요소가 옅어진 한인의 후예상태라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코리안 네트워크의 형성이라는 과제도, 일본 측에서는 한국 중심으로 사고한다고 비판하고, 한국에서는 각 재외동포 사회가 하나의 주체적 단위가 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좋은데, 거기에 중심이 되는 요소는 무엇이냐고 반문하게 된다.

심지어 연대의 폭이 다른 민족, 다른 이주 집단까지 넓어지면서, 일본의 ‘원 코리안(One Korean)' 운동이라는 것이 코리안 운동이라기보다 소수민족 인권운동과 같아 그렇잖아도 통합을 못하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분열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동아시아가 열린 구조로 진행되고 그 가운데에서 코리안의 정체성이 보장될 것인가 하는 점에 달려 있다. 일본의 새로운 시민운동이 세계를 향하여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일하게 이상을 추구하는 점에서는 장기적 목표 개념으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단기적으로 볼 때, 미래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멍에가 무거운 재일동포의 실상과 다른 코리안과의 연계를 생각한다면 너무 이상적이 아닌가 우려도 된다. 다양한 의사가 존중되는 사회면 좋으나, 그러지 못할 경우 선의의 운동은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구한말 개화파의 일부였던 아시아통합주의자들이 지금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페스티벌에서 한국의 리듬에 일본어로 부르는 가수의 노래가 일본문화의 일부이지, 아직 우리 문화의 일부가 못 되는 현실에서 한국의 폐쇄성을 생각한 것은 너무 기우일까?

jeanylee@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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