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아리랑-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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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아리랑-7
  • 최정규
  • 승인 2004.11.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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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문화나눈마당
독일아리랑-7

어느새 겨울이 내곁에 아주 가까이 왔다.

2주년전에 첫눈이 살짝내리더니, 오늘새벽 3시에 일어나 밖을 보니 온통하얗게 내렷고,

또 내리고 있다.


그동안 나는 행사나 모임이 없으면 집에 밖혀서 민지네의 ‘알리’가 바람너은 동영상

(영화,드라마)보기 정신이 없었다. 오버넷으로 ‘김화’와 ‘보고보고’를 통하여 영화 빵과 장미,
섬, 하류인생, 거미의 숲, 누구나비밀은 있다. 얼굴없은 미녀, 사마리아, 등

수십편과 KBS. MBC의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해서 볼수없게 되어서 민지네한테 하소연을
해보기도 했다.

갑자기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자 내가 할수있는 짓을 다해보았으나 별로 효과가 없어
고민할 때 마누라가 한마디 툭 쏘는것이다.

‘아무리 컴퓨터지만 그렇게 밤낮이 없이 켜놓으니 그렇지!’ 하는것이다.

아! 내가 컴퓨터를 착취했나.(노동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아마 ‘착취’라는 단어가 생각될것임)

우선 모뎀과 공유기를 끄고, 최근에 산 무선전화기를 컴퓨터에서 좀 멀리 떼어놓았다.

그리고 컴퓨터에게 휴식을 주었다. 그랫더니 빨라져서 다시 드라마 부모님전상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용서, 등과 뉴스를 보게 되었다.

컴퓨터 그라픽카드에 티브이 아웃이 있어 텔레비전에 연결하여 보게 되니 착각에

빠질때가 있다. ‘ 우리 독일에서 사는거 맞아.? ’



지난주말에 있었던 ‘한국문화의 밤’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어머니 무용단 ‘햇님’의 화관무와 부채춤으로 문화의 밤을 열었다.]



한국문화의 밤은 독일복흠한인회와 사단법인 한국민중문화모임이 주최하고 인근지역의

한인회와 한인단체의 후원으로 이루어 졌다.

출연은 동포와 유학생, 2세청년, 독일청년들로 이루져,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졌다.



[13살의 신동이라 불리는 백구현이 ‘가고파’를 연주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울렷다.]



[가야금장단에 구성지게 우리민요를 어머니부대가 부른다. ]



[여성사물놀이패‘두레’ 신명난 난장에 열광적이 박수를 받았다.]



[서예반들이 서예를 전시하여 행사장을 빛냈다. 이날 두점의 서예가 독일인에게 팔렸다.]



재독한인 중앙단체(재독체육회, 강원도민회, 결혼식)들이 인근에서 송년잔치를 하고 있어서
문화의 밤에 사람들이 적을거 같았다. 또한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여서 시작될때까지
모두들 사람들이 적을것을 걱정하였다.

헌데 막상 시작하는 시간에는 앉을자리가 모자랐다. 약 200여명이 온것이다.



[시청의 외국인담당자, 신문기자, 청소년센터 청년들과 동포들이 모였다.]


이번행사의 목적은 독일노동복지원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센터’의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것과
문화의 나눔으로 하였는데, 후원금이 약 100만원(700 유로)을 모았다.



[청소년센터의 청년들이 ‘블랙댄스’를 공연했다. ]

늘 독일에 의지하고, 덕을 보면서 살아온 우리가 이제 조국(한국)만 생각할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장(독일)과 이웃도 생각하자는 뜻에서 가꿈해온 행사다.

김밥, 잡채, 만두와 음료수를 준비하여 나누웠다.


다음날 일간지 신문에 기사가 났다.





사단법인 한국민중문화모임은 70년말부터 ‘문화운동으로 대중성’이란 생각으로 줄기차게
실천해왔다.

그러나 회원들이 나이가 들고, 2세들은 대학이나, 직장으로 떠나게 되어서 활동이 뜸했는데
최근에는 ‘연금’에 들어가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 시간을 갖게 되자 여성 사물놀이패
‘두레’를 만들어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유럽에 자랑은 제민주, 민중단체들이 매년 오월이면 오월항쟁계승행사로 ‘오월민중제’를
하는것이다. 내년에 그 오월항쟁이 25주년이 된다.



나는 꿈을 꾼다.

내년 오월민중제에 50여명으로 풍물패를 만들어 ‘오월에서 통일로!’ 판굿을 만들 꿈을 꾼다.

25년간 오월항쟁이 유럽사회와 동포(우리)에게 어떤영향을 끼쳣을까.? 를 조명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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