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할 유산들> 한국병원의 고매하신 사모님-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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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할 유산들> 한국병원의 고매하신 사모님-마지막회
  • 임용위
  • 승인 2004.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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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뭐 의술에 대해서 아나?
공인 태권도 유단자의 날렵한 몸놀림은 필자의 사타구니를 정통으로 가격하고는 민속촌 주점에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자지저질 듯이 비명소리를 질러대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찍 소리 하나 못하고 필자는 술판이 벌어졌던 좌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시비를 먼저 건 쪽은 분명 필자였기 때문에 사타구니가 아닌, 가슴을 정통으로 맞고 나뒹굴어졌다한들 할말이 없는 필자의 입장이었다.
6개월만에 만난 H양이 반가웠었다. 오로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말을 걸었던 것이다. 인사를 안 받아치면 그냥 모른 체하면 되었다. 왜 모른 체 하느냐고 물었던 게 큰 실수였다.
'죄 없는 이모네 가족이 당신 때문에 이 땅에서 쫓겨났다. 내가 왜 그런 당신 인사를 받아야 하느냐?'
H양이 고개를 치켜들고 '필자를 모른 체 해야했던 이유'의 변을 또박또박 늘어놓기 시작하자 순간 끊어 오르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던 필자는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게 두려웠던 동석의 술친구들이 필자의 행동을 제지한다고 양팔을 붙잡은 틈에 벌어진 H양의 비호같은 동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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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던 '착각'이었을까? 김종택과 그의 아내가 떠난 멕시코 땅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두 부부의 망령이 키 작은 김 여사(H양)로 인해서 버젓이 활개치고 있었다. '당신 때문에...'라는 말은 적어도 그녀의 이모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H양은 필자가 모르는 사이에 필자를 향한 뿌리깊은 원한과 사무치는 복수심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속촌 주점 폭행사건은 두고두고 '임용위가 연약한 소녀를 놀이게 감으로 업신여겼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행여 연약한 소녀(?)를 당시 취기상태에서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우선은 필자의 팔을 붙잡고 보았던 주점에서의 한요한씨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현명하게 그가 제지하지 못했다면 필시 흥분의 발산은 분명 H양을 먼저 때렸을 필자였고, 그 다음 H양이 나동그라져서 경찰을 부르고 구급차를 부르고 생난리를 피웠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김종택 가족의 필자를 향한 사무치는 원한의 덤 태기는 고스란히 필자가 뒤집어 써야 할 상황으로 돌변했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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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택씨는 A씨가 요구하는 합의 사항에 거의 동의를 하기도 했거니와,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깊이 뉘우치는 기색을 보였던 그의 속셈은 여차하면 도망칠 계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주변사람들로부터의 방어벽을 쌓으려는 비열하기 그지없는 김씨 특유의 수법'이었다고 당시 화합의 석상에 참관했던 전 정화위원들이 들려주는 말이다. 김종택씨가 A씨에게 약속했던 합의금이 얼마였으며, 그 중 얼마를 지불하고 야반도주를 했는지는 필자는 잘 모른다.
필자는 두 해를 꼬박 넘기고 난 어느 날, A씨의 전화를 받고 시내에서 커피를 함께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생후 21개월이었던 A씨의 외동딸은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아내와 함께 세 식구가 단란한 이민생활을 해 오는 동안 불과 2년 전에 겪었던 '악몽'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싫어서 합의금 명목으로 놓고 간 김종택씨의 벤 승용차를 김씨의 조카 H양이 몰래 팔아먹었다는 소식에도 담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A씨는 딸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말을 남기고 필자와 헤어졌다. 김씨 부부가 과테말라에서 멕시코에서 했던 똑같은 수법으로 동포를 상대로 한 의료업을 한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나는 전적으로 흘러 다니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 상당한 세월이 흘렀고, 그 흘러간 세월의 두께만큼 김씨 부부가 스스로들에게도 '악몽'이었을지 모를 아픈 상처를 딛고 어디에선가 정직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억지로라도 그려보고 싶기 때문이리라.
<끝 designtimesp=28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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