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할 유산들> 한국병원의 고매하신 사모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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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할 유산들> 한국병원의 고매하신 사모님-4
  • 임용위
  • 승인 2004.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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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뭐 의술에 대해서 아나?'
김종택씨가 1년 넘게 한국병원의 환자대기실에 걸어둔 허가증(멕시코 보건청인가)은 곧 위조된 가짜 서류임이 밝혀졌다. 김명기 정회위원장은 당시 한인최초로 멕시코에서 한방전문 의술 허가를 득한 한의원 종사자였고, 한국병원을 방문하는 순간부터 벽에 비치된 허가증을 아리송한 눈초리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던 터였다. 의문의 허가증을 보건청 현지인담당 직원을 급히 불러 호텔 커피숍으로 모이는 동안에 김 위원장은 조회를 의뢰했던 것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종이 쪽지에 불과한 가짜 서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김종택씨에게 그 일 한가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가짜 서류'는 멕시코에 정착해 살기 위한 한가지 수단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던 당시의 한인사회였고, 그나마 '그렇게 해서라도 어려운 이민생활을 부대끼며 살아나가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굳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한인식당에서 밥을 사먹으면서 일일이 그 식당의 주방장이 조리자격증이 있는가를 물어보고 사먹을 수는 없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다만, 사람의 신체를 다루는 의료업이기에 의사자격을 확실히 갖춘 신분만 보장된 사람이라면 같은 한국인 의사에게 한국말로 진료를 받고 시술을 받는다는 것 하나만도 감지덕지 고마워해야 할 한인사회였다.
"의사 면허는 있습니까?" 아니 이건 웬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물을 걸 물어야지...
김명기 정화위원장은 정회위원들의 갈라진 편가르기 틈새에서도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차분히 진행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의 빈틈없는 표정과 자세는 커피숍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우왕좌왕 설치는 모습을, 반은 허용하면서도, 그 중간역할자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고 소신을 다해 제대로 할 일을 전개해 나갔다.
이 엄청난 사건의 결과부터 먼저 피력하자면, 김종택이라는 한 사람의 전체 한인동포들을 대상으로 벌인 사기행각은 결국 정화위원을 해체시키고 필자를 한인매일에서 쫓겨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끝까지 맡은 바 일을 완수했고 나 역시 허구한 날을 신문사 직원 모두와 적이 되어 사실보도를 개재하는데 털끝만큼도 양보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당시 시류의 흐름에 안주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A씨 고발사건을 처리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우리는 가짜 의사에게 생명을 맡기고 고마워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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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번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방 국립 의대(77학번) 가정의학과 출신이고, 졸업 후 K시에서 2년 넘게 가정의학 전문의를 거쳐 국제 의료봉사단체에서 5년 넘게 봉사한 자격과 경력이 인정되어 멕시코까지 흘러 들어왔다는 게 김종택씨의 일목요연한 본인 소개였다. 가정의학과는 따로 정해진 진료과목이 없고 전체의 병과를 소화할 수 있는, 한국의학협회에서 공인 받은, 몇 안 되는 의사들 중의 한사람이라고 그는 자신 있게 스스로를 설명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뭐 의술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라고 김씨 부인이 거듭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김종택씨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 기계충부터 시작해 발가락 무좀에 이르기까지, 임산부 애 떼는 일도 수 차례, 거기다가 포경수술은 물론이고 성병 치료에 암 진단까지 거뜬히(?) 해 내는 의사가 왜 돈 많이 벌고 명예도 보장되는 한국에 있지 않고 말썽 많은 멕시코 땅까지 찾아와 고발진술의 사실여부를 묻는 담판 자리에 참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그것이 좀 어리둥절하기만 했던 당시의 필자였다.
'근육제였다고 말하는 아기의 주사는 분명히 마취제였다'는 A씨는 Espanol 병원의 담당의사 소견서까지 제시하며 당당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에서 아기의 세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는 담당의사에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고 A씨는 말하고 있으나 금요일 밤의 멕시코 저편 고국은 토요일 한낮이라 그 자리에서 확인할 방도가 없었고, Espanol 병원의 소견서 역시 확실한 진위여부를 검증할만한 단서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지루한 서 너시간의 담판은 다음날로 미루어졌다. 아무것도 A씨의 고발건에 대하여 밝혀진 건 없었다. 가짜 허가증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는 없었고, 당당했지만 결국은 명예가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었던 김종택씨나, 시간이 갈수록 침착함을 잃고 분노의 치를 떠는 A씨나 두 사람 모두 두 다리 뻗고 잠을 청할 수는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 안고서, 20여명의 한인동포들은 커피숍을 흩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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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나는 다음날의 기사를 정리하기에 앞서 인터넷 창부터 열었다. A씨 아기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담당의사(평촌 상지클리닉 이석범 전문의)에게 메일을 보내 아기의 상태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를 당부하는 글을 띄웠고, 김종택씨가 다녔다는 K시 국립대 의과대학으로 들어가는 사이트로 마우스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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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매일로 출근길에 오른 필자는 커피숍을 빠져나왔던 전 날의 상황과는 아주 딴판으로 변해있었다. A씨가 보여줬던 것 이상으로 김종택씨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필자의 전신을 장악하고 만, 꼬박 밤을 새운 컴퓨터 앞에서의 확인된 사실들이 분노 이상의 '공포감'으로 치를 떨게 했다.
당시의 '공포감'이 만인의 동포들이 함께 놀랠 공포감이었다고 착각했던 필자의 어수룩함 때문이었을까, 김종택씨의 거짓과 위선이 한꺼번에 드러나면서도 그를 호위하고 감싸려는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았던 한인사회에서 나는 수도 없이 받아야만 했던 협박과 공갈 속에서 더 큰 공포감에 몸을 사려야만 했다.
<계속 designtimesp=28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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