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할 유산들> 한국병원의 고매하신 사모님-3
상태바
<버려야할 유산들> 한국병원의 고매하신 사모님-3
  • 임용위
  • 승인 2004.11.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들이 의술에 대해서 뭘 아나?"
2002년 9월 2일날, A씨 부부는 생후 21개월 된 아기를 보듬고 한국병원을 찾았다. 자지러질 듯이 울어대는 아기는 '팔이 빠졌다'는 김종택 병원장의 진단과 함께 팔을 끼우고 주사 치료를 마치고 부모와 함께 돌아갔다.
이틀이 지나고 A씨 부부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틀 동안 아기는 더 자지러졌고, 거의 먹지도 않고 울고 보채기만 했던 아기를 황급히 안고 달려온 것이다. 심한 고열에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아기는 근육주사 한 방으로 잠잠해졌다. 다시 재발할 우려가 있다는 김종택씨는 그 날 이후로 나흘동안을 같은 방법으로 근육주사를 투여했다.
'이젠 완쾌된 것 같다'는 최종 진단을 받고 A씨 부부는 안심하고 돌아갔다. 그 후로 며칠 뒤 아기는 전 보다 더 초주검이 될 지경으로까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밤새 온 집안이 떠나갈 듯한 비명소리에 놀란 A씨 부부는 곧바로 다시 한국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한 밤중의 정적을 깨뜨리며 찾아온 한국병원에는 김종택씨가 부재중이었다. 타국으로 세미나 교육차 출장을 갔다는 김씨 아내의 말(이것도 나중엔 거짓으로 밝혀졌다)을 듣고 A씨 부부는 한국병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병준 한의원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새벽의 단잠을 깨우고 A씨 부부의 방문을 맞은 나 한의사는 한의원 치료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빈사싱태에 다다른 아기를 현지 Espanol병원으로 안내했다. 현지병원은 급히 입원신청을 요구했고 곧바로 칼을 들이대는 대 수술을 감행했다. 아기의 병명은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까지 다다른 골수염이었다.
21개월 된 어린 아기에게 수술은 한 차례로 끝마쳐질 성질이 못 됐다. 7만 페소의 1차 수술비를 지불하고도 아기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겠다는 병원에서 급히 2차 수술을 요구하자 A씨 부부는 순간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이 안 섰다. 병원에 소견서를 요구해 받아 놓고 A씨는 다음날 급히 아내만을 딸려서 한국으로 아기를 후송했다.
한국에서 전해온 담당의사(평촌 상지클리닉 이석범 전문의)의 진료결과 역시 '골수염'이었고, Espanol 병원의 초기진단이 '화농성 관절염'으로까지 번져갔다는 소식을 A씨는 듣게 된다.
<중략 designtimesp=28501>
겔러리아 호텔 커피숍에 마주한 A씨와 김종택씨. 그 두 사람을 테이블 한 가운데 두고 20명 가량의 한인들이 모여 앉았다. 한국병원을 정화위에 고발한 A씨가 혼자 신고인 측으로 참석한 것과 달리 피신고인 측의 김종택씨는 그의 아내와 조카, 조카 친구들, 김씨의 친구에 이르기까지 한 소대요원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그 밖의 사람들로 김명기 정화위원장과 여섯 명의 정화위원, 그리고 최영범 한인회장과 원로 동포 한 명이 배석했다.
20명이 모여 앉은자리에 끼어 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더 많았다. 어떻게 알고들 왔는지 단 몇 시간만에 김종택씨에게 치료, 또는 수술을 받았던 한인들을 포함한 십 수명의 동포들이 겔러리아 호텔 앞으로 몰려들었다. 김명기 정화위원장은 A씨 고발 건과 관계없는 사람들은 커피숍 안으로 들이질 않았다. 커피숍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호텔 앞에서 만난 한 여자가 간곡하게 필자에게 들려준 한마디 당부의 말이 의연하게 앉아있는 김종택씨의 표정과 크로즈업 되어 교차된다.
"기자님! 임신중절 수술하다 피해 입힌 사실을 꼭 좀 물어봐 주세요."
<중략 designtimesp=28506>
"여기 있는 사람들이 뭐 의술에 대해 알기나 하나?" 김종택씨의 아내 김씨가 남편에게 던진 말 한마디는 다소 어색한 침묵으로 일관해 온 대화 도입부 순간의 정적을 일거에 깨뜨리는 말이었다. 한국병원을 방문해 첫 대면을 하는 순간부터 아내 김씨는 정화위원들과 필자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상종 못할' 종족으로 치부하려는 그녀의 홀대와 업신여김이 호텔 커피숍에서의 대화 첫머리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당하기가 거칠 것이 없다는 자신감으로 만장의 기선을 제압하는 그녀의 한 마디는 대화를 마친 끝자락에까지 이어졌다. 사실 당시 두 시간이 넘게 걸렸던, 피해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그 자리에서 필자는 병원장 아내 김씨의 당당함 뒤에 감춰진 마각의 철면피까지는 발견 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호위하고 있는 가족들의 힘에 눌리기도 했지만, 차마 지금에 와서도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 하나는, 정화위원들 중에 몇 명이 그녀를 호위하는 세력으로 들어서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가장 큰 화두가 A씨 아기에게 주사한 약품이 근육제냐 마취제냐 하는 문제였다. 통증을 호소하는 아기를 데리고 A씨 부부가 두 번째 한국병원을 찾았을 때 김씨가 아기에게 투여했던 것은 근육주사였다는 주장에 맞서 A씨는 마취주사였다고 강력하게 대응했다. 21개월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마취주사를 투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말이다. 어떤 근거로 마취제 투여 사실을 확신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A씨가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려고 하는 처사는 아닌지 실로 당혹스럽기도 했다. 더더욱 A씨에게 신뢰가 가지 않았던 것은 그 다음에 이어진 A씨의 으름장 같은 말 때문이었다.
"감기 환자에게 몰핀주사나 놓는 네가 돌팔이지, 어디 진짜 의사야?"
이 한마디로 실내 분위기는 우왕좌왕 갈 길을 못 찾고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화의 실마리를 주도해나갈 김명기 위원장은 이미 목청 큰 사람들의 언변에 짓눌려 그 위원장으로서의 명색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몇몇 정화위원들을 포함한 김종택씨를 비호하는 세력들의 기세는 더욱 거세게 등등해지기 시작했다. 온갖 분노와 적개심에 사로잡혀 끝내 침착성을 잃고 흥분된 어조를 굽히지 않는 A씨 혼자만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 대 여섯 명은 이쪽 저쪽 어느 누구의 말도 제대로 판가름할 수 없는 '혼란' 그 자체의 중심에 서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하품까지 해 가며 여유를 부리는 병원장 아내 김씨에게도 균형을 잃고야 마는 허점은 있었다. 누군 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정화위원 누군가가 묻는 질문 하나가 그녀를 비롯한 김 병원장 가족들의 한결같은 단합심에 균열의 틈을 보이게 했다. "병원은 정식 허가를 받고 하셨습니까?"
병원 허가도 받지 않고 의술을 시행한다는 것. 전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필자에게는 '웬 뚱딴지같은 말을 꺼내 분위기를 더 싸늘하게 만드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런 질문을 던진 정회위원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한국병원 대기실 중앙 벽에 보기 좋게 걸려있는 허가증은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계속 designtimesp=28515>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