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상진 프리유니 뉴칼리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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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은상진 프리유니 뉴칼리지 이사
  • 서정필 기자
  • 승인 2019.01.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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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호주에서의 도전 선택, 19대 이어 20대에서도 월드옥타 차세대부위원장 맡아

▲은상진 프리유니 뉴칼리지 이사

서울 소재 공과대학  졸업 후 취업, 회사 생활하며 서울대학교 기술대학원 진학.

은상진 프리유니 뉴칼리지 이사의 20대 후반까지의 인생 여정은 차근차근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중년의 삶을 준비해 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우리나이로 스물아홉이던 은 이사는 학업, 직장 그리고 그동안 쌓은 전공 분야에서의 커리어까지 다 버리고 호주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15년, 40대 중반이 된 은 이사는 지난 10월 전 세계 한상대표로 제17차 세계한상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드림키 세리머니 무대에 올랐다.

공학을 전공한 평범한 직장인에서 호주를 대표하는 한상으로 성장한 뒤 20대 월드옥타 대양주 대표 부위원장도 맡은 은 이사의 이야기다.


▲ 제17차 세계한상대회’가 10월 23일 오후 인천광역시 송도컨벤시아에서 개막했다. 개회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각 지역 대표 한상, 차세대들이 드림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은상진 프리유니 뉴칼리지 이사 (사진 재외동포재단)

Q. 은상진 이사님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은상진 이사(이하 은) : 1976년 대구에서 태어났고요.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넷 됐습니다. 가족관계는 형님과 누님 한 분씩 계시고요. 아내 그리고 아들 하나 딸 둘 두고 있습니다. 2004년에 호주로 떠나 햇수로 16년째 살고 있습니다.

이민법무사 사무소, 사진 작업실, 한식·일식·태국음식점 사업을 했었고요. 지금은 입시학원 프리유니 뉴칼리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호주 가기 전에는 대학에서 전자전기제어공학을 전공하고, 회사 생활하면서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에서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 지난해 10월 창원에서 열린 세계한인무역협회 제23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 (사진 은상진 프리유니 뉴칼리지 이사)

Q. 프리유니 뉴칼리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은 : 호주 현지의 특목중·고라 할 수 있는 셀렉티브 스쿨(Selective School) 입시를 준비하는 6학년과 12학년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입시학원입니다. 시드니, 멜버른, 아델레이드, 브리즈번 지역 24개 분원에 총 5,000여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Q. 호주와 한국의 교육제도는 어떻게 다르고 호주 입시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은 : 호주는 주마다 교육제도가 다른데요. 그래도 대부분의 주가 초등 6년 고등 6년 학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한국과 달리 학벌보다는 실질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대학으로 진학하는 인원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를 보내려고 하는 경쟁이 있습니다. 물론 대학입시가 없는 건 아니고요. 대학은 입학보다는 졸업이 훨씬 힘들고, 직업학교 시설과 교육 내용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한국처럼 중학교랑 고등학교가 나눠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입학하면 6년을 공부해야 하니 학생들 스스로도 좋은 고등학교를 가려는 노력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 지난해 11월 1일과 2일 양일 간 열린 세계한인무역협회 제19대 차세대위원회 워크숍(사진 은상진 프리유니 뉴칼리지 이사)

Q. 언뜻 보면 서울 생활을 계속했어도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으며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호주로 떠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은 : 이끌림, 이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 다닐 때 방학만 되면 모아둔 돈으로 해외로 떠났는데, 그 때 생각해보니 오세아니아 대륙만 못 갔더라고요. 그 때가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이었는데 서른이 되기 전에 꼭 그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떠났습니다.

당연히 가족들도 말렸고 주위 지인들도 다 말렸지요. 아마 계산을 했다면 떠나지 않았겠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한국에서 일하던 첨단기술 분야는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그것들을 따라잡으려면 매일 공부를 해야 했는데 원래 제 천성과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었지만 제 나름대로는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서른 되기 전에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떠난 겁니다.
 
▲ 지난 2012년 9월 프리유니 뉴칼리지가 주최한 호주 특목고 입시 모의고사 ASAT(Australian Selective Achievement Test). 이날 응시생만도 1,000여 명에 달했으며 7년이 지난 지금은 2,000명이 넘는다고 은 이사는 설명한다. (사진 은상진 프리유니 뉴칼리지 이사)

Q. 그 때까지 쌓은 경력을 살린다거나 아니면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갖고 떠나신 것이 아니군요.

은 : 예 맞습니다. 호주 도착해서 그 때까지 해 온 공부와는 전혀 무관한 관광·호텔 전문대학인 ACTH(Austalian College of Travel & Hospitality)에 들어가 요식경영학을 다시 공부했고, 그러면서 호주와 아시아 요리사, 제빵사 자격증 따고 이민법무사 자격도 땄습니다.

Q. 해외에서 사업을 해 오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은 : 도전했던 사업 분야들을 하나 둘 접으면서 역시 인력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인력을 잘 관리해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많이 공부하며 배워가고 있습니다. 

Q. 월드옥타 차세대위원회 대양주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된 이유는?

은 : 이번에 19대에 이어 20대에서도 차세대 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하게 됐는데요. 연속성을 지켜 가야 한다는 대한 책임이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차세대 출신 선배로써, 또 다른 10년을 위해, 과거 10년을 정리해서 더 나은 차세대 위원회를 만들 수 있도록 장승일 차세대담당부회장님, 홍해 위원장님 그리고 다른 부위원장님들과 함께 협력해서 20대 슬로건처럼 ‘함께하는 옥타 차세대, 힘있는 옥타 차세대, 자랑스런 옥타 차세대’의 기반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Q. 10월에 송도에서 열린 한상대회 개막식에서 드림키 세리머니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했는데, 그 때 소감은 어땠나요?

은 : 아 예. 지난 가을 열린 여러 한인 동포 관련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고, 무대에 올라간다는 소식은  한상대회 몇 일전에 받았습니다.

재외동포재단에서 추진하는 청년인턴사업에서 저희 회사가 가장 많은 인턴을 채용해서 제가 대표로 올라가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Q.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좀 듣고 싶습니다.

은 :  어떤 구체적인 계획보다, 일단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또 새로운 기회가 오면 또 거기에 최선을 다하고 살고 싶습니다.

Q.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 : 예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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