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중 무역 분쟁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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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중 무역 분쟁을 바라보며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18.11.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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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중국인들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일단은 즉각적인 반응을 숨기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중국 사회에서 누군가가 혼자서 책임지고 혼자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다. 집단이 움직이며 여러 갈래의 의견을 모으고 토론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상대의 의중을 떠보며 전략을 수정하고 다듬으면서 결론을 낸다. 이 결론은 마침내 최고 지도자의 입을 통해서 중국어 특유의 애매모호하지만 그 진의가 속으로 감추어진 표현으로 발표된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트럼프와 전화 통화에서 그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미 경제무역의 본질은 호혜공영”이라며 “한동안 중미 양측이 경제무역 분야에서 일련의 갈등에 놓였는데 이는 양국 관련 산업과 전 세계 무역에 모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며 이는 중국이 원치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혜공영”이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원치 않는다.”는 말로 맺고 있다. 쉽게 말해서 “중국은 공생의 정신으로 지금까지 왔는데 오늘날 미국과 갈등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세계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의 무역 분쟁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다.

싸우는 사람이 더 이상 싸움을 원치 않는다면 상대에게 뭔가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 전쟁의 기본 원리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미중 무역전쟁에서 한발 후퇴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내린 중국의 최종 결론일 것이다. 약 6개월에 걸친 중국 내부의 심사숙고한 토론의 결말이 한 발 후퇴로 끝이 났다. 그 이면에는 엄청난 반발과 설득과 비난과 책임의 유무를 놓고 벌인 난상의 토론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1차 패전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중한 중국이 왜 그렇게 성급하게 미국이 걸어온 싸움을 무모하게 받았을까?

어떤 때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무모한 것이 중국인의 속성 중 하나다. 상대를 몰라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더 낫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우선은 덤벼본다. 제갈량(諸葛亮)의 실패한 북벌(北伐)도 현명함 보다는 무모함에 가깝다는 것이 후세의 평가다. 아무리 날고 기는 제갈량이라 해도 이미 대세가 기운 마당을 뒤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중화문명이라는 지나친 자부심과 상대를 우습게 보는 오만함이 국제무대에서 그대로 통한다고 생각했다면 그 또한 중국의 무모함이다.

중국인이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질이 체면중시다. 중국인은 체면이 손상되는 일에 목숨을 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지도자는 체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미국이 시진핑 주석의 가장 아픈 곳을 아주 시의 적절하게 찌른 셈이 된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미국이 인간관계와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의 약점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의 무모함마저도 계산했을 수 있다. 중국이 쉽게 물러서지 않고 무모하게 덤빌 거라는 계산을 해놓고 트럼프는 계속해서 중국을 압박하며 그들의 체면을 망가트리고 말았다.

마치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연환계(連環計)로 묶어버린 전술처럼 미국은 시진핑 주석의 절대 권력을 만든 중국의 참모 집단을 체면이라는 사슬로 엮여놓고 연일 맹공을 퍼부었다. 체면을 버리자니 최고 지도자의 면이 안서고, 버티자니 경제가 엉망이 되는 형국을 미국이 노렸을 수 있다. 이제 미중 양국의 싸움은 정과 반의 단계를 넘어 합의 경지로 갈 공산이 크다. 한쪽이 물러서면 다른 한쪽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 미국의 오랜 외교전술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앞으로 어떤 전술을 들고 국제무대로 나올 것인가? 미국을 향한 중국의 전략은 무엇일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데는 중국인을 따라올 자가 없다. 회오리바람이 거칠게 불고 비바람이 온몸을 적셔도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당장은 무릎을 꿇더라도 반드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중국인의 습성이다. 은혜를 갚는 것은 대를 물려서 해도 좋은 일이지만 아비의 원수를 갚는 일 또한 3대가 가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중국은 늘 그렇듯이 국제무대에서 어설프다. 중국 자체의 능력과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국제 외교에 대한 경험의 부재 때문이다. 중국이 이번에도 전술에서는 미국에게 졌다. 중국의 이번 패전의 경험은 중국 내부 권력층에게 의미하는 바가 아주 클 것이다. 세상이 왜 서방의 일방적인 잣대로 중국을 바라보고 평가하느냐는 항변도 한계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힘만으로는 안 되는 전술과 전략 그리고 상대를 아우르며 실익을 취하는 국제 외교의 경험은 중국이 인정하고 배워야 하는 대목이다. 내 체면이 중하면 남의 자존심도 중한 법이다.

중국은 이제 다시 도광양회(韜光養晦)의 모드로 들어갈 것이다. 중국 개혁 개방의 설계자인 등소평의 아들마저 “중국은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날리며 3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길로 물러나는 중이다. 그러나 이번의 도광양회는 그 의미가 30년 전과는 다를 것이다. 필자의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반도 땅에는 지금 무수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이 변화의 방향이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지혜롭게 현재의 위기와 변화를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중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고민이 갈수록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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