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보았던 달을 띄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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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보았던 달을 띄우고 싶었습니다”
  • 이혜경
  • 승인 200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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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작가 강익중의 '꿈의 달' 일산 호수공원에 설치돼

▲ 일산 호수공원에 설치된 강익중 작품 위사진은 '꿈의 달'에 붙어있는 13만여개의 작품중 일부이다. '꿈의 달'은 WCO 행사기간인 사흘동안 일산호수공원에 떠있다가 작품 보관상의 문제로 사진만 남기고 사라졌다.(위의 pdf를 클릭하면 편집된 신문을 볼수 있다.) 강익중씨의 설치작품 '꿈의 달'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이혜경씨가 본지에 원고를 보내왔다. 이씨는 9월12일 작품이 선을 보이기까지 15미터의 구체를 만들고 그림을 붙여 호수에 띄우는 실무적인 일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작가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중심으로 강씨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다.--편집자 141개국에서 보내온 12만 6천여점의 3인치 어린이들 그림을 15m 대형 벌룬에 붙여 만든 '꿈의 달'이 일산 호수공원에 전시됐다. '3인치의 미학'으로 유명한 재미 설치작가 강익중씨는 "내 어머니,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았던 하나된 조국의 달을 띄우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달이기도 하고 어린이의 꿈이 담긴 미래의 달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9월7일부터 이틀간 자원봉사자 60여명과 함께 어린이 그림을 붙이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자원봉사자 가운데는 연인인 듯한 대학생들도 보였고 말년휴가를 나왔다는 군인도 있었다. 총을 내려놓은 군인의 검게 탄 손에는 어린이의 작은 그림이 조명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에 사용된 어린이 그림들은 지난 2000년부터 세계 각국의 NGO와 학교, 정부기관에 요청해서 강씨가 모은 작품들이다. "어린이의 그림을 받아보면서 사면 3인치의 작은 그림이 마치 작은 창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이 아무리 커도 멀리 떨어져서 밖을 본다면 많은 것을 볼 수 없지만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작은 창에 가까이 서면 어느새 넓은 세계로 안내됩니다. 그곳에는 높은 산에 올라 멀리 본 것들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같이 예지력과 밝음이 있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도 비쳐집니다." ▲ 일산 호수공원의 작품 앞에 선 강익중화백
12만6천 어린이 순수한 꿈이 새겨져

'꿈의 달'에 가장 먼저 붙여진 것은 이라크 어린이의 그림이었다. 이어서 푸른 지구에 평화(peace)라는 글자에 꽃을 그린 미국 어린이의 그림이 붙여졌다. 우즈베키스탄의 12살 소녀는 종이 위에 유모차를 모는 자신을 그리고 그 옆에 이렇게 적었다. "여동생이 여섯이 있어요. 이젠 남동생을 갖고 싶어요." 콩고의 치코라는 어린이는 '아프리카에서 살아남는 방법-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 안하기'라고 적었다. 크로아티아의 전쟁고아가 보낸 그림에는 별 셋과 꽃 세 송이, 그 위로 나비가 날고 있다. 유엔이 자기나라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잊고 있다고 또박또박한 글로 적어 보낸 아프카니스탄 소녀의 그림 그리고 달에 앉아서 별을 바라보는 한국어린이의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전시된 '꿈의 달'의 어린이 그림은 미래의 시간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에게 담겨있는 미래를 현재로 가져올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작가는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꿈의 달'은 한가위나 음력 정월 대보름의 달처럼 축제의 상징물이 되었다. 세계문화오픈(WCO) 2004 기간 중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는 행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세계 어린이들의 꿈이 담긴 3인치 그림 하나하나가 칠천칠백만 민족의 통일의 염원이고 세계평화의 씨앗입니다. 통일은 특정한 계층을 위한 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 높은 담을 쌓아 서로를 보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서로를 너무나 모르는 사람들, 오랜시간 동안 오해와 편견이 깊어진 사람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아 아파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용서를 빌고, 모두가 용서를 하는 그런 통일의 꿈을 소망합니다.”

그는 미술은 문화이며 문화는 곧 '자아'라고 말한다. "문화는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게 해줍니다. 우리 민족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문화는 나아가 땅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산책을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일을 하면서, 땅을 디디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문화는 낚시줄을 던지는 행위

'문화는 힘'을 강조하는 그는 사람들의 문화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화는 낚시줄을 던지는 행위와 같습니다. 과학은 이를 끌어올리는 작용이고, 경제는 잡은 물고기를 자르는 것이고, 정치는 이를 분배하는 거죠. 결국 문화의 '던짐' 없이는 마지막에 분배도 있을 수 없습니다. 백범 선생은 문화는 철학이라는 바늘로 잠자는 우리를 깨우는 행위라고 말씀했습니다. 몸에 들어가 박힌 바늘은 우리민족의 혼을 깊은 동면에서 깨운다는 것이지요. 이미 문화 힘이 정치의 힘임을 그 분은 알고 계셨습니다."

1999년 1km에 달하는 비닐하우스에 남북한 어린이 그림으로 만들어진 '십만의 꿈'을 시작으로 그는 어린이들의 그림을 이용한 독특한 설치전을 진행해 왔다. 2001년에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놀라운세상(Amazed World)' 전시를 가졌다. "꿈의 달에 붙여진 어린이 작품들은 9.11 테러 직후 보내진 그림입니다. 테러에 대한 아이들의 분노는 평화로 표출되었습니다. ”

임진강에 '꿈의 다리' 놓을 계획

'꿈의 달'은 대동강에 띄워질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그는 또한 남북한 경계를 흐르는 임진강에 놓일 '꿈의 다리'도 계획하고 있다. "조국은 하나의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몸 전체의 혈관을 통해 피가 돌듯이 존경과 이해가 바탕이 되는 남과 북의 교류는 계속 되어야 하고 지역 감정으로 상처 난 몸은 이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에는 내일에 대한 이상이 가슴에는 세계를 품는 희망이 손과 발은 이웃을 돕는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뿌리를 알게 되면 나무인 이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속의 나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세계로 나아갑니다.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 평화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곧 세계 평화의 시작입니다. 한반도에서 자란 우리가 바로 세계평화의 씨앗을 가진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픔을 알고 있기에 평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위한 백신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1984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1987년 미국 프랫인스티튜드를 졸업하였다. 그 후 뉴욕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알리는 미술가로 손꼽히고 있다. 미국의 젊은 기대주들을 선발해 전시하는 '라우더'전에 초대되었고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을 열었다. 1997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 독일의 루드비히미술관에서 선정하는 '20세기 미술작가 120명'에 선정되었다. 최근에는 프린스턴도서관에 5천여 작품으로 이뤄진 '해피 월드'라는 벽화를 완성했으며, 미국 켄터키주 스피드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국내에서 지난 10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에 '삼라만상 2004'를 출품중이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도 '평화선언2004'를 통해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혜경 ( 강익중 ‘꿈의 달’ 프로젝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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