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도 가끔 주목받는 국민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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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리도 가끔 주목받는 국민이고 싶다"
  • 연합뉴스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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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 이달 중순부터 스위스에 거주하는 호주인들은 제네바의 자국 대표부에서 귀중한 한표를 행사한다. 다음달 9일 총선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제네바에 거주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11월2일 미 대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은 오는 15일까지 유권자 등록을 마쳐야 한다.

호주의 경우, 재외 국민들은 오는 6일까지 유권자 등록을 마쳐야 한다. 이처럼 일찌감치 등록해야 하는 것은 절차상의 시간적 여유를 감안한 것이다. 호주의 경우, 부재자 명부에 있다고 해도 등록을 마치지 않으면 투표를 할 수 없다.

등록신청서는 우편이나 팩스로 요청할 수 있다. 유권자들을 이를 통해 공관 기표소를 방문할 것인지, 아니면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발송할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돼 있다. 전자투표는 보안, 기술, 재정, 접근성, 형평성을 이유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현지 공관이 본국에서 투표 용지를 받는 것은 대략 17일쯤이며 우편 투표를 희망한 유권자들에게 이를 발송하기 시작한다. 실제 투표는 선거 2주전인 27일부터 시작, 선거 전날까지 이뤄진다. 선거 당일에는 본국과의 시차를 고려해 기표소가 폐쇄된다.

호주의 부재자 투표는 의무적인 것이 아니며 기권했다고 해서 벌금을 내지는 않는다. 다만 국외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다음번 부재자 투표 참가가 제한된다.

전례없이 고조되고 있는 미국인들의 부재자 투표 열기도 유럽 언론에서 관심거리로 대두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인들이 공화.민주 양당의 지부나 공관 등에 유권자 등록과 부재자 투표의 절차를 문의하는 사례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또 등록 절차를 친절히 안내해주는 웹사이트도 네덜란드에 등장해 지금까지 유럽에 거주하는 65만 미국인이 접속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공화.민주 양당의 부재자 투표에 대한 관심도 예전과는 다르다. 민주당 해외조직이 유럽 대도시의 미국 서점에서 투표를 독려하는 행사를 벌이는가 하면 케리 후보의 여동생도 유럽을 순회하며 재외국민들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부재자 투표에 대한 정치권과 재외국민들의 관심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논란 등 여러가지 원인 분석이 있지만 지난 2000년 선거에서 재외 유권자들이 교훈을 얻었다는 분석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난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 개표가 당락의 결정적 관건이었고 당시 숫적으로는 얼마되지 않는 부재자 투표함의 개봉이 대세를 뒤바꿨다는 각성 때문이다. 대권의 임자가 불과 500여표 차이로 결정된 것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소 600만명에서 최대 710만명 정도이며 이 가운데 절반이 투표 자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600만명이고 투표권이 있으면서도 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한국인은 모두 2백60만명. 미국과 호주 재외 국민들이 부재자 투표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심히 착잡할 듯하다.

모일 때마다 한국의 달라진 위상에 기뻐하고 조국의 빗나가는 모습에 걱정하지만 조국의 정치상황을 가름할 중요한 선거에서는 참정권이 없어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방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국의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권리를 포기하는 탓에 투표율이 절반을 조금 넘는다는 사실, 선거연령을 낮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재외 국민들의 안타까움을 더해준다고 교민들은 말한다.

제네바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투표에 관한한 철저히 고립돼 있고 아무런 도움의 손길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인질과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점, 선거기술상의 문제와 국가 재정의 부담, 선거의 공정성 확보 문제, 내국인과의 형평성 등을 구실로 과거 참정권 허용 요청이 번번이 기각된 것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유럽 지역 상사 주재원은 OECD국가 대부분이 재외 국민에 부재자 투표를 도입하고 있고 일부는 전자 투표를 적극 검토하는 단계라면서 지금까지 재외국민이 차별받고 있는 것은 정당들의 당리당략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교민들은 당장 참정권이 부여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해외 파견 공직자, 국내기업의 해외 지사 근무자, 유학생 등 단기 체류자를 대상으로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jsmoon@yna.co.kr

등록일 : 09/0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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