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들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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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들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
  • 이은희
  • 승인 2004.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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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부당한 박해를 받고 간첩이라는 모함을 받고 동포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그러나 재독교포사회 1세대 구성원 일반은 그러한 시각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것은 재독교포사회를 이루는 1세대 구성원 즉 파독 광부 세대 중 다수가 박정희 시대에 마음 깊이 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끈은 그들이 믿는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부흥시켰고 보릿고개를 넘게 해 주었다’는 믿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간 형성되어온 재독교포사회의 한인회 구성과 재외공관과 깊이 맺은 끈의 일부이기도 하다.

“빨갱이지 무슨 민주화 인사냐? 민주화 인사는 바로 돈을 벌어 아껴 쓰고 꼬박꼬박 한국으로 부친 우리들이다.”라고 아직 소리치는 노인들을 보면 안스럽다. ‘아우토반에 뿌린 눈물’로 광부와 간호사를 감동시킨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점에서는 타향에서 고난을 겪으며 산 이들에게 실오라기같이 남아있는 충의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나라를 대표하는” 공관원들이 ‘친북’ 혹은 ‘이렇게 쓰면 되나?’ 한 두 마디만 흘리면 그런 눈으로 바라볼 정도로 공관원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그때의 ‘충성심’ 혹은 ‘애국심’으로 재독교포사회 1세대 다수가 바라보는 오늘의 한국. 일제 잔재 청산과 과거 정부의 인권침해 청산 의지가 피어나는 국내 정책은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느냐?’하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 불안감의 근저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만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 그건 과거에 대한 향수만은 아닌 듯하다.
누가 조종하는가? ’국정원 직원‘들이 재독교포사회에서 노련하게 흘리는 언어들은 ’멍 들지 않게 때리듯‘ 과거의 망령과 과거의 정서체제를 붙잡는다.

혹은 “그건 다 아는 건데, 왜 들추는 거야.” 하는 반응들. 정작 들추어지고 알려지고 싶지 않은 싫은 부분들이 불행히도 재독교포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공관이 조종한 재독교포 분열사. 재독교포사회 민주화 운동 관련 문헌에 남아 있는 사건. 모 단체가 당시 정치활동을 하던 인사를 미사 중에 끌어내어 테러한 사실, 빨갱이 교회라고 지목된 교회에 나가는 광부 동료들을 ‘공관의 지시로’ 감시하고 테러하며 독일 사민당 청년부에서 개입한 한 발숨 사건 등은 수 십 년이 지나도 공동의 인식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민주화, 통일인사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대 모두가 ‘희생자’다.

격리된 민주화, 통일인사들이 사실 6, 70년대에 안정되지 않고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간호사 광부들이 많던 시절, 간호사 광부들의 권익을 위해 일했다는 사실 또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재외공관이 현 정부가 천명한 의지를 공유하려면, 한글 학교 교사들 앞에서 ‘미국에 배은망덕하여서는 안 된다’는 식의 설교를 하는 고급공무원보다 이 사회에 뿌리 깊은 분열의 상처를 지혜롭게 풀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잘못 끼워진 단추를 새로 끼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정부는 재외공관이 국내의 큰 줄기를 제대로 소화하는지 조직적으로 검토하고 살피어야 할 것이다.

현재 재외공관에서 ‘평통자문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이라든가 그 정부 표창자를 선정하는 과정은 과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정책이 나아가는 기조는 바뀌었으나 재외공관은 여전하다. 재외공관이 환골탈태하기 전에는 재외동포사회의 변화는 국내처럼 쉽사리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제주 43 과잉진압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사과를 하듯 재외공관은 동포사회에 ‘속멍’ 들인 과거를 인정하고 공식사과하여야 할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그들의 명예회복은 모국방문이라든가 국내 입법 차원만이 아니라, 수 십 년을 객으로 산 이 동포사회 내에서 진정 그들이 있어야 할 제자리로 그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이웃을 분열한 자 누구인가? 나서서 공식 사과 하고 새로운 물꼬가 터야 할 것이다.

필자 이은희 독일교포신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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