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몇몇 '염치'없는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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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몇몇 '염치'없는 한국인들
  • 임용위
  • 승인 200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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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양보하고 조금 손해보며 살아갔으면
'염치'란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는 '결백하고 정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남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 자신의 눈앞에 닥친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는 '염치없는 짓'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염치없는 사람들이 멕시코 한인들 중에 더러 있다. 최근에 들은 부끄러운 얘기 몇 가지를 옮겨본다.
보스께 인근에 있는 부촌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동네 길을 다시 포장하게 됐는데 공사를 맡은 측에서는 어느 날 아침 9시부터 도로 포장을 하게 됐으니 그 날은 차량 통행을 금한다는 안내문을 여러 차례에 걸쳐 보냈다. 그것도 모자라 공사 당일에는 집집마다 방문해서 혹시 차를 쓸 일이 있으면 지금 차고에서 꺼내 놓으라고 일일이 확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깨끗하게 새로 포장된 길 위에는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타이어 자국은 바로 한국 사람 집의 차고에서부터 시작해 동네 어귀까지 길고도 깊게 패여 있었다. 그 타이어 자국은 몇 년 후 다시 도로 포장을 하게되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동네 사람들 가슴에 새겨진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딸을 둔 엄마가 있다. 그 딸은 학교행사의 피에스타에 가면서 백화점에서 비싼 드레스를 사 입었다. 새 옷을 입고 신나게 파티를 즐긴 딸이 다음날 백화점에 가 서 드레스를 돌려주고는 돈을 되돌려 받았다며 엄마는 딸의 약삭빠름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했다. 물건이 마음에 안 들거나 크기가 맞지 않아 도로 물리는 것과 의도적으로 하룻밤 사용한 후에 환불을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이다. 딸이 그런 짓을 했다면 단단히 야단을 치고 시정해야 할 엄마가 오히려 그 일을 대견해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정도 일은 전혀 나쁜 짓이 아니라고 여기는 아이라면 다른 사회적 규범도 서슴지 않고 무시할 수 있는 양심 불량의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본능 때문인지 한국인들 중에는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새치기에 능한 사람들은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들이 요령이 있게 세상을 잘 살아간다고 자부할 것이다. 비아나 시네폴리스에서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서 극장 입구에서부터 매표구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옷을 잘 차려입은 젊은 한국 여자가 줄이 조금 느슨해진 곳에 갑자기 끼여드는 것이었다. 바로 뒤에 서 있던 사람은 뭐라고 얘기는 못하고 그저 어깨를 으쓱 올렸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다. 같은 행렬에 있던 한 동포는 공연히 얼굴이 화끈거려 제발 그녀가 한국말을 하지 않기만 바랬는데,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러댔다. 엄마의 새치기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줄서기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와 같은 배열의 좌석에 앉아 3시간이 넘는 영화를 함께 관람하면서 동포는 이런 생각을 했다. '더 좋은 좌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새치기를 해야만 했을까?'
예전에 소깔로 대통령궁 건물에 있는 국립 문화박물관에서 목격한 일이다. 한국 문화관 안에는 '이곳에서는 조용히 해 주시고 사진 촬영을 금해 주세요'라는 한글로 표기된 안내문이 붙어있다. 하필이면 한국문화관에만 한국어로 그런 글이 적혀있어야 했는지 껄끄러운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마 문화관 안에서 가장 시끄럽고, 사람들이 사진촬영을 하곤 했던 곳이 바로 그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내(경고)문을 써놓은 직원들에게 한국인은 문화관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로 비춰지진 않았을까?
우리의 옛 어른들은 "무엇이든지 조금쯤 모자라는 듯한 게 좋다"고 늘 말씀하셨다. 조금 양보하고 조금 손해보는 듯 하며 살아갈 때에 훨씬 더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이 될 수 있다. 염치를 아는 자세,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이익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우리들의 잘못된 행동 거지가 '염치없는 인간'으로 여겨지기 이전에 '염치없는 한국인'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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