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시대 한민족의 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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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시대 한민족의 노다지
  • 최연구
  • 승인 200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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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본지 편집위원, 사이언스타임즈 주간)

금광을 흔히 노다지라고 한다. 노다지의 어원에는 우리민족의 비애가 서려 있다. 구한말, 서구열강의 이권 침탈이 본격화 되면서 미국도 광산채굴권을 넘겨받아 금광개발에 나섰다. 미국의 이권 쟁탈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광혜원의 설립자 알렌이었는데, 그는 조선 왕실 사정을 잘 알았기에 이를 이용해 조선의 중요한 이권들을 미국에 넘기는데 앞장섰다. 그 중 하나가 조광권이었다.

당시 평북 운산은 조선 최대의 금광이었는데 알렌은 왕실과의 교분을 이용해 운산금광 채굴권을 미국인 자본가에게 독점적으로 넘겨주었다. 미국인들은 이미 이곳에서 광산을 개발하던 조선인 광산주와 노동자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독점적으로 관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은 조선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 되었다.

미국인 광산 관리인이 조선인 농민을 살해하는 일도 몇차례 있었지만 힘없는 나라였던지라 그래도 그들은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미국인 금광관리자들은 조선인이 광산에 접근하면 금을 훔친다고 생각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이때 'No Touch"라고 외치던 말이 변해 '노다지'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노다지는 이제 우리말로 굳어져 금광을 뜻하는 말이 되었고 국어사전에도 어엿이 표제어로 올라 있다. 서양에서도 한때는 벼락부자를 꿈꾸며 금광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엘도라도를 꿈꾸었고 금을 캐러 다녔다. 엘도라도는 남아메리카 아마존 강가에 있었다고 전해져오는 전설상의 황금마을이다. 황금은 서양에서는 부귀영화와 행운의 절대적인 상징이다.

조국이 가난하던 시절 바다건너 선진국은 어쩌면 엘도라도였다. 한달도 더 걸려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면 적수공권으로도 고생하며 돈을 벌수 있었고, 더 나은 삶을 바라며 유럽으로 떠난 사람들도 많다. 고학을 하며 박사를 따고 연구에 몰두해 석학들과 어깨를 견주는 학자가 된 동포들도 많다. 몇 십 년전 해외로 떠났던 동포들이 지금은 세계 곳곳에 정착해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선진국 주류사회에 편입해 성공한 사람도 있고 거상이 된 동포들도 있다. 엘도라도를 꿈꾸며 떠났던 동포들, 가난과 불운을 등지고 고국을 떠났던 우리의 피붙이들, 이제는 그들이 오히려 한민족의 노다지다. IMF로 조국이 어려울 때 그들은 귀한 외화를 조국으로 송금해 주었고, 우수한 두뇌의 재미과학자들은 한국최고이공계대학인 포항공과대학교 설립의 주역이었다.

특히 재외동포 1세대는 애국심과 민족애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비할 데 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한 세대 전에는 엘도라도를 찾아 해외로 나갔던 그들이 세계화시대에는 한민족의 엘도라도요 노다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6.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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