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민이야기]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가죽 채찍과 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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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민이야기]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가죽 채찍과 방고
  • 이현아(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17.02.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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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③

1902년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한 121명의 첫 하와이 이민자들을 시작으로 1905년 8월 8일 마지막 공식 이민이 끝날 때까지 약 7,415명의 한인들이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이들 대부분은 사탕수수 농장으로 가게 됐고, 1905년 하와이에는 약 65개의 농장에 5,000여 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혼합 농장에서 일본인 포르투갈인 등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생활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생활은 많은 인내가 필요했고, 그곳의 음식마저도 입에 맞지 않았다. 한인들은 숙소 근처에 채소를 심어 한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며 조금씩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후는 온화하야 심한 더위와 추위가 없으므로 각인의 기질에 합당”하다는 하와이 이민 모집 광고(1093년 8월 6일자 고시)의 문구와는 달리 태양이 작열하는 아열대의 뜨거운 햇빛 아래서의 노동은 고단했다. 농장 일은 잡초를 뽑는 일에서부터 수확 때 줄기를 자르는 일, 이파리들을 잘라내고 차곡차곡 쌓아놓는 일, 물 대는 일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가장 어려운 일은 쌓아놓은 사탕수수를 등에 지고 기차나 마차에 싣는 것이었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농장에서의 규칙적인 생활과 제도의 압박감이었다. 농장에서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 30분 기상 사이렌으로 시작됐다. 아침 식사를 하고 집합 장소에 모이면 농장의 관리자인 ‘루나’가 그들을 인솔해 밭으로 가서 6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만일 노동자가 숙소에 남아 있으면 관리자는 가죽채찍을 휘둘러 작업장으로 내몰았으며, 일하는 동안에도 채찍을 들고 말을 타고 다니면서 노동자들을 감시하였다. 6시부터 시작된 노동은 단 30분간의 점심시간을 마치면 오후 4시 30분까지 계속됐다. 하루 10시간 노동이었고, 일요일은 쉬었다.

▲ 가죽채찍과 방고(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한 달간의 일을 마치면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던 방고에 따라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다. ‘방고’는 번호의 일본식 발음이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고유 번호표는 노동자들의 이름을 대신했다. 루나들은 방고를 챙겨 각 노동자마다 일한 시간을 기록하여 임금을 책정했다.

1905년까지 어른 남자의 월급은 한 달에 17달러 정도였고, 여자나 소년들은 하루에 50센트를 받았다. 미국 본토의 노동자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였기에 본토로 떠나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1910년까지 하와이에 온 한인 7,400여 명 중 약 2,000여 명은 미국 본토로 이주했고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정착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본토에 뿌리를 내렸다.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낯선 땅에서의 고단한 생활과 노력은 재미 한인사회 건설의 기반이 되어 220만 재미 한인들의 굳건한 위상과 민족적 자부심의 축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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