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민이야기] 하와이 사진신부 김도라의 중매편지
상태바
[오래된 이민이야기] 하와이 사진신부 김도라의 중매편지
  • 신은미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
  • 승인 2017.02.07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②

1902년부터 1905년까지 7천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났다. 이들 중에는 이미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있었지만 독신의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민 이후 5년~10년이 지나자 혼기를 훌쩍 넘긴 노총각들의 결혼 문제는 초기 이민자들의 정착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 당시 남성의 수가 여성보다 10배나 더 많아 배우자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사진 결혼이었다.

1909년부터 1924년 사이에 950여 명의 한인 여성들이 하와이에 도착하였고 이들 중에는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 한 장 들고 신랑을 찾아 떠난 '사진 신부'도 있었고, 결혼한 상태에서 하와이로 떠난 남편을 찾아 온 여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 신부를 포함하여 이들 여성들의 하와이 정착으로 본격적인 초기 한인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강인하고 적극적인 삶을 꾸려나갔다.

▲ 김승율 중매 편지. (사진 한국이민사박물관)

1892년생인 김도라는 1911년 하와이로 이민을 왔다. 그녀가 손에 쥐고 온 것은 중매 편지 한 통이었다. 편지를 쓴 사람은 김흥순으로 신부될 사람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사촌동생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보통의 사진 신부들은 남편 될 사람의 사진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김도라는 최소한 서로의 집안을 알고 온 것으로 생각된다.

편지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직접 거론되지는 않지만 이 편지를 기증한 김호선은 편지에 등장하는 두 사람을 자신의 부모인 김승률과 김도라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함경도 원산 출신의 김도라는 이 편지를 들고 하와이로 와서 역시 함경도 안변 출신의 김승율과 만났고 두 사람은 1911년 11월 1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있는 이민국에서 결혼했다고 한다.

김호선 기증 자료에는 편지 외에도 친필 결혼기록, 가족사진 등과 국민회, 동지회 등에서 활동한 증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9남매를 낳고 기르면서도 항일운동 후원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대한부인구제회 등에 가입하였던 김도라의 삶을 통해 초기 이민사회에서 내조자의 역할뿐 아니라 한인 사회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주체로서 당당히 활동하였던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 대한부인구제회 증서.(사진 한국이민사박물관)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