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풍류정신문화의 조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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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 풍류정신문화의 조화…①
  • 나채근 영문학박사
  • 승인 2017.01.0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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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 문화
▲ 나채근 영문학박사(영남대학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인류학 분야의 명저인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는 세계 고대 부족 국가들의 무교(巫敎)적 특성이 소상히 소개되고 있다. 성소를 지키는 주술가는 전임 사제를 죽이고 다음 사제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제사장이고 왕이었다. 주술가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야 했고, 항상 더 힘 센 사제에 의해 거세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었다.

이는 당시의 원시사회가 노쇠와 질병을 거부하고 식물의 번성을 통한 다산과 생명의 유지를 염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남부 유럽, 북부 이탈리아, 중세의 남부 러시아, 아랍, 아프리카, 고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가 발견된다. 

근대 서구 여러 나라들은 과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로, 초자연에 순응하는 주술의 세계나 인간의 생명이 수목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인 수목 숭배를 미신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주술사의 건강 유지를 통해 농작물의 풍요와 사회적 안녕을 희구했던 그들의 보편적인 샤머니즘적 문화 현상은 세계 도처에 자리하며 인류가 지니는 공통적 사고방식과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샤머니즘 문화는 한국의 고대 제천의식에서도 나타난다. 인간이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한국 무교의 무(巫)는 소통을 통해 삶과 죽음, 이성과 감성, 물질과 정신, 신명과 한의 대립 구조를 연결시키고 조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무는 무교로서의 종교의 역할인 동시에 인간의 삶과 의식을 형성하는 문화의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풍류정신문화가 지니는 조화의 의미를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풍류의 조화는 무(巫)의 의미처럼 응어리진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어 삶에서의 인식적 융합을 시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풀어내는 풀이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풀어내지 않고 삭히는 ‘시김새’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실제로 풀이와 시김새는 무속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시나위, 산조, 판소리, 살풀이 등 한국음악과 무용에 여전히 잔재하면서 삶과 죽음, 슬픔과 기쁨, 한과 신명의 영역을 허물고 해소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무속과 관련하여 이러한 해소의 역할을 담당하는 대표적 예로서 굿이 있다. 무속의 사고와 인식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굿은 혼돈된 존재의 양태인 카오스와, 정돈되고 지속적인 코스모스를 연결시킨다. 즉 굿은 원래 하나였던 한과 신명, 고뇌와 기쁨, 삶과 죽음에 대한 이원론적인 인식을 하나라는 일원론적 인식으로 통합시켜 중생들에게 안정과 영원적 믿음을 부여하는 제의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층화되고 구조화된 질서를 지닌 코스모스가 되면 이윽고 탈층화를 위한 탈주의 선을 그리며 카오스로 되돌아가는 카오스모스(chaosmos)의 순환 속에 인간 삶의 부침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믿음이 무속의 정신 속에 내재해있는 것이다.  

무속에서 이승과 저승의 공간은 열려있다. 망자는 사립문을 나서면 저승이고 모퉁이를 돌면 저승인 바로 그 저승으로 잠시 돌아가는 것뿐이다. 저승은 단지 인식되거나 기호화된 의미에 불과하고 실재하는 또 하나의 공간은 아니다. 그것은 언표 상 구분될 뿐이지 우리가 사는 이 시공간에 차원과 강도를 달리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승과 저승을 현재의 삶 속에 포함시켜 하나로 보는 인식 방법은 고대 제천의식에서 인간과 신과 자연을 하나로 보는 인식 방법과 동일한 것으로 풍류정신의 조화의 속성으로 지속되고 있다. 종교적인 절대자가 아니라 자연안의 신을 의미하는 범신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과거의 유·불·선과 현대의 기독교를 수용하여 공존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적 현상 역시 풍류정신의 조화적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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