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 박사 내한 13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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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박사 내한 13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
  • 김민혜 기자
  • 승인 2016.12.1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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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의 내한 초기 활동과 한국 독립운동’
▲ 헐버트 박사 내한 13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 ‘헐버트의 내한 초기 활동과 한국 독립운동’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는 12월 19일, 서울 YMCA 대강당에서 헐버트 내한 13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헐버트의 내한초기 활동과 한국 독립운동’을 개최했다.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학교 교사이자, 대한민국에서 건국공로 훈장(1950)과 금관문화훈장(2014)을 받은 겨레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자이며 한글학자, 언론인, 역사학자, 선교사로서 큰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대한제국의 주권 수호를 위해 미국정부를 비판하고, 일본과 맞서 싸운 인물이기도 하다. 

▲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동진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내한 초기에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선교사로서 조선의 문명 진화와 한국학 개척에 기여한 헐버트 박사의 업적에 대해 설명하며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헐버트 박사의 내한 초기 교육, 언론 및 한글과 한국학 개척 활동을 알아보고, 이러한 활동이 한국 독립운동에 끼친 영향을 조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축사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공동가치로 공유할 뿐만아니라 호머 헐버트 박사와 같은 강력한 인적 관계를 공유함으로 공고해졌다. 헐버트 박사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한글 확장에 기여했을 뿐만아니라 미국유학생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미국인들이 한국의 역사, 음식, 문화에 관심을 갖게 했고 한국과 미국의 '인적 관계'를 지속적인 것이 되도록 영향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리퍼트(Mark W. Lippert) 주한미국대사에 이어 윤종오 서울 남부보훈지청장, 이석하 서울 YMCA회장 직무대행이 축사를 한 후, 11시 30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발표와 토론이 시작됐다. 

호머 헐버트 박사의 '대한제국멸망사'를 1976년 번역 출판했던, 신복룡 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가 ‘헐버트 박사를 추모하는 한 인문학자의 시선-어느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펼쳤다. 그는 호머 헐버트를 "목사, 언어학자, 역사가, 외교관, 민속학자, 박애주의자"라고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23세 청년으로 한국에 와서 이렇듯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며 살았던 헐버트를 설명한 신 교수는 1999년 양화진 묘소에 세운 묘비명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의 삶을 압축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빅토리아 풍의 신사, 헐버트 박사 이곳에 잠들다." 

신 교수는 “헐버트 박사의 많은 유산은 그의 독립운동에 가려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제 우리는 그의 문화사적 연구를 천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거를 잊는 민족은 역사를 되풀이한다. 지난 날의 욕스럽고 슬픈 역사를 후손들에게 되돌려주지 않기 위해 이제는 우리들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복룡 교수의 기조강연.

이어 일본 상지대학교 사학과 나가타 아키후미 교수가 ‘한 말기 헌버트의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일본의 반응과 대응:미국의 친일반한 언론인 케난(George Kennan)과도 대결하는 헐버트’를 주제로 발표했다.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화 하려는 과정을 가로막고 선 사람 중 하나가 헐버트 박사였다는 점을 논하며 헐버트가 한국을 위해 가진 열정이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정말 두려운 존재이며, 한국인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김동진 회장은 두 번째 주제인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헐버트의 활약’에 대해 발표했다. 헐버트와 언더우드, 에비슨 3인은 명성황후 시해 직후 고종 곁에서 그의 안위를 지켰다. 김 회장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뒤 헐버트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고종을 도와 활약한 것은 인도주의에 입각한 숭고한 한국 사랑”이었다며 정치적 사건에 대한 연루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최보영 연구원은 3번째 주제 ‘헐버트의 육영공원 활동과 한국 독립운동가’에 대해 발표했다. 헐버트 박사는 1886년, 조선 조정이 근대 최초로 설립한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로 내한했다. 그는 미국식 학제를 도입하고 교재를 직접 편찬해가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최 연구원은 “헐버트 박사의 영향을 받은 육영공원 출신 학생들의 경력과 활동을 분석해보면, 많은 이들이 정부 요직에 진출했으며 미국과 유럽 지역의 외교 공관에서 활약했음을 알 수 있다”며 “헐버트의 교육활동과 한국 인식이 후일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 리퍼트 주한미국대사의 축사.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박용규 교수는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헐버트의 <사민필지>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제목으로 다음 주제에 대한 발표를 이어나갔다. <사민필지>는 헐버트 박사가 1891년에 출간한 세계지리 교과서다. 헐버트 박사는 조선의 학생과 민간인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의 근대화를 달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펴냈다. 박 교수는 “<사민필지>는 해방 이후 한글 전용의 정규 교과서 편찬에 영향을 끼쳤으며, 독립신문의 한글전용 표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민주국가에서는 문자생활에서 전 국민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이 된 것이다.

대덕대학교 황우선 교수는 ‘글로벌 시민정신의 선구자 헐버트의 언론활동과 한국 독립운동’을 논했다. 황 교수는 “헐버트 박사는 조선 최초의 언론 외교관이었다”고 주장하며 해외 여러 언론매체의 한국 특파원으로서 저널리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친 것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헐버트 박사가 독립신문의 창간 및 발행의 인프라를 제공했다는 점도 언급하며 “독립 의식 함양에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센트럴미시건대학교 호프 엘리자베스 메이 교수가 ‘헐버트 한국 독립운동의 기본 사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헐버트 박사는 정치적 믿음과 인성에 대한 기독교 이론이라는 특별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꽃피웠다”며 “지금 우리 모두는 헐버트가 일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과 똑같은 문명화의 힘의 상속자다. 따라서 우리는 용서가 헐버트 사상의 중요한 요소였으며, 또한 인성에 대한 기독교 이론에서 기인한 정치적 공동체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태진 교수(왼쪽 4번째)의 사회로 진행된 종합 토론

여러 주제발표가 끝난 후에는 이태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전주교육대학교 박승배 교수, 인하대 김슬옹 초빙교수, 독립운동사연구소 홍선표 학술팀장, 동국대학교 한철호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해 종합토론을 이어나갔다. 토론을 마치면서 이태진 교수는 "오늘 연부역강한 학자들의 다양한 토론에서 현대사에 새롭게 추가해야할 다양한 자료들이 많이 드러났다. 오늘 학술회의를 통해 호머 헐버트에 대한 연구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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