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한인 땀과 꿈의 100년] 전신애 美노동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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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한인 땀과 꿈의 100년] 전신애 美노동부 국장
  • 한국일보
  • 승인 2003.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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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에서 소수계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배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한국계 여성으로는 최초로 미 중앙정부 차관보급에 오른 전신애(59) 미 노동부 여성국장은 성공비결을 묻자 모범답안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노동부 내에는 동양계, 특히 여성의 성공이 이제 전혀 새로운 애깃거리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녀 말대로 그녀의 상관인 일레인 차와 노동부 장관은 중국계 여성이다.

1965년 그녀가 이민올 당시만 해도 그녀의 성공을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인 스스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도미(渡美)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도피였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한국의 주류’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오직 동성동본과의 사랑을 위해 봉건적인 조국을 버렸다.

때문에 그녀가 성공하기까지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남편 전경철(60)씨다. “미국에 와서 편안한 가정주부로 머물려는 저의 등을 떠밀어 공부를 시킨 사람이 남편이었어요.”

전씨는 “한국에서는 부인이 더 출세하면 보통 남편들이 배아파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이가 오히려 나의 성공을 더 기뻐해 주었다”며 “우리는 진정한 동반자”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성공이 남편의 외조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끊임없이 미국의 주류사회에 접근하려는 그녀 스스로의 노력이 훨씬 컸다. 그녀는 84년 아시아계 미국인 담당 일리노이 주지사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돼 관직을 시작했다.

이후 89년 일리노이 금융규제국장에 올랐고 92년에는 노동국장에 취임, 흔히 ‘주(州)장관’으로 불리는 직책을 맡아 99년까지 10년 동안 장수했다. 그리고 지난 미국 대선 때는 부시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그것이 계기가 돼 오늘에 이르렀다.

그녀는 지금까지 공직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보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소수계로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비법”이라며 웃었다.

“아버님이 존경한 유일한 미국인은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링컨 책을 사다 주시고, 교훈을 많이 주셨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늘 링컨을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뭐냐고 묻자 “3P를 지키라고 하고 싶다”며 “한국인으로서 미국사회의 주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사에 긍정적이고(Positive), 활동적이며(Proactive) 인내(Persevere)하라는 것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로스앤젤레스=김기철기자
입력시간 2003/02/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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