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탁 여사 일생 추적, 남프랑스 교민의 협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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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탁 여사 일생 추적, 남프랑스 교민의 협조 기대합니다”
  • 김지태 기자
  • 승인 2016.03.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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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
남양주종합영화촬영소 입구 맞은 편 양수리 강변에 ‘왈츠와 닥터만’ 레스토랑과 커피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수도권의 명소로 통하는 곳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 클래식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얼마 전 500회를 기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레스토랑과 커피박물관을 운영하는 박종만 관장은 조선 황실전례관을 지냈던 손탁(Marie Antoinette Sontag, 1838-1922) 여사의 조선 이후 행적을 쫓고 있는데 프랑스 남부에 살고 있는 동포들 중 관심있는 분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왜 손탁이고 왜 프랑스 남부일까? 그 사연을 들어보기로 한다. 
 
▲ 손탁 여사와 손탁호텔 그리고 커피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만 관장
 
박종만 관장은 한국의 커피와 다방 역사를 탐구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최근 그의 관심은 손탁 여사에게 꽂혀 있다. 커피의 역사를 쫒다가 손탁호텔과 손탁 여사의 이야기를 따라간 것인데 탐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조선을 떠난 이후 손탁 여사의 여생에까지 관심이 이어진 것이다. 
 
“고종이 아관파천 때 커피를 처음 접했다는 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관파천 이전부터 손탁 여사와 왕실이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기록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어요. 손탁 여사가 조선을 떠난 이후의 행적도 미스터리이지만 조선에서 황실전례관으로 있을 때의 기록도 다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 관장은 틈만 나면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을 찾는다. 
“한성순보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커피와 손탁 여사에 관련한 모든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뒤지겠다는 생각으로 새로 산 돋보기로 마이크로필름을 돌려 보고 있어요. 특히 손탁 여사에 관한 부분은 아예 신발끈을 고쳐 맬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박 관장은 국문학을 전공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성순보를 보는 것 자체가 만만한 작업이 아닌데 굉장히 흥미롭고 활력을 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고 문헌을 뒤지는 일 뿐만 아니라 손탁 여사와 관련된 정보가 있으면 해외출장도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지난해 9월 우연히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 김영자 박사 기사를 접했어요. 손탁 여사가 조선을 잠시 떠난 1905년에서 1906년 동안 후임으로 조선에 왔던 엠마 크뢰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책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를 번역하던 김 교수는 손탁 여사가 프랑스 칸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박 관장은 김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스케줄을 정한 후 독일로 날아갔다. 박 관장은 김 교수로부터 독일 질비아 브레젤 박사의 논문에 있는 손탁 여사 기록을 보고 칸 현지답사를 통해 손탁 여사의 마지막 생애를 알게 됐다고 전해 들었다. ‘손탁 여사가 1922년 7월 7일 칸에 있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가 팩트의 전부였다. 김 교수는 묘비만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손탁 여사가 조선을 떠나 러시아에 갔다가 러시아혁명 와중에 목숨을 잃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확실한 낭설이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칸에 묘비가 있다는 사실 외에 밝혀진 게 없자 박 관장은 다소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묘지에 가서 헌화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박 관장은 다시 프랑스 행 비행기를 탔다. 
 
“칸에 있는 기록보관소에 가서 손탁 여사 때문에 왔다고 하니까 나 이전에 두 사람이 왔었다고 하며 더 이상 찾을 게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더 찾아보자고 담당자와 함께 자료들을 찾았는데 정말 없었어요. 그런데 문 닫을 즈음 정말 사진 한 장을 찾았어요. 막 떠나려던 찰라였는데 정말 극적이라고 할 수 있죠.”
 
▲ 손탁 여사가 생애 마지막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칸의 아네모네 맨션(사진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그 사진이 손탁 여사가 생애 마지막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칸의 아네모네(Ville Les Anemones) 맨션이다. 박 관장은 아네모네 맨션이 있던 정확한 주소를 찾았고 맨션의 설계도도 발견하는 수확을 거두었다. 그밖에 재미있는 자료들을 많이 발굴했는데 아직 언론에 공개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단, 프랑스 칸 현지에 손탁 여사와 관련된 자료와 정보들이 상당수 더 있을 것이라고 박 관장은 말한다. 
“손탁 여사가 1909년 조선을 떠날 때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자료가 있을텐데 아마도 집안을 캐는 수 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손탁 여사의 후손들 및 관계된 인물들도 칸 일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탁 여사는 미혼이지만 조선에서 떠날 때 조선인 양자를 데리고 갔다. 그 양자의 후손들이 칸 일대에 현재도 살고 있다고 박 관장은 추정한다. 
“손탁 여사가 별세한 해가 1922년이니까 그 이후부터의 후손들을 찾고 있습니다. 현재 어느정도의 가계도는 나와 있지만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라서 공개할 단계는 아닙니다. 아직 칸 현지에도 몇 번 다녀와야 할 필요도 있고요.”
 
박 관장은 발품을 파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먼 유럽을 수시로 왔다갔다할 입장은 못 돼서 아쉬운 면이 많다. 그래서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재외동포 중 손탁 여사에게 관심이 있는 분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번 갔다 오면 아차, 하고 아쉬울 때가 많아요. 현지인 통역사를 데리고 갈 때 언어의 한계도 있고요. 그래서 칸 인근에 사는 교민들 중 함께 협력해서 조사를 진행할 분을 찾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교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110여년 전 조선황실전례관으로 있던 손탁 여사가 칸으로 이주하고 양자의 후손이 프랑스에 정착을 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일,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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