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메가-FTA 열풍과 4차 산업혁명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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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메가-FTA 열풍과 4차 산업혁명 (상)
  • 엄인호 경제학자
  • 승인 2016.03.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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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인호 경제학자
최근 글로벌시장에선 전례 없는 메가-자유무역협정(다자 간 FTA)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메가-FTA(자유무역협정)의 하나인 아세안 경제공동체(AEC, 10개국 참여)는 지난 2015년 말에 이미 출범했고,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12개국 참여)은 지난해 10월 5일 타결, 2017년 초에 발효될 예정이다. 그 외에도, 현재 여러 개의 메가-FTA 협상이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화 된 이후, FTA는 글로벌시장에서 경제영토를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FTA 회원국은 관세의 하락으로 교역 상대국에서 교역창출과 교역전환 효과에 의해 교역량이 확대되는 동시에 비회원국들은 교역전환 효과에 의해 교역상대국에서 서서히 시장을 잃게 된다.

다자 간 FTA는 양자 간 FTA에 비해 거대 경제권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가 한꺼번에 참여함으로써 교역창출과 전환효과가 모든 회원국들에게서 동시에 발생한다. 양자 간 교역을 넘어 상품과 서비스생산 그리고 소비가 수많은 국가에서 중첩된다. 무역경쟁국들은 앞을 다투어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을 세계 여러 곳에 구축하여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최저의 가격으로 공급하는 막강한 경쟁력을 추구한다.  

현재 협상 중이거나 발효되지 않은 메가-FTA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한중일 FTA 등이다. 

I.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은 12개국 (미국, 일본, 호주, 베트남, 말레이시아, 캐나다 등)으로 구성됐는데 한국은 빠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경제의 통합을 목표로 공산품, 농업 제품을 포함 모든 품목의 관세를 철폐, 비관세 교역 장벽 제거, 투자서비스 규칙, 환경보호, 국유 기업우대 조치 축소 및 폐지,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노동 규제, 금융, 의료서비스, 등 31개 분야에 걸쳐 역내무역자유화 추진 조항이 담겨있다.

TPP는 2016년 말까지 각국 의회의 비준절차를 거쳐 발효되는데, 모든 회원 국가가 비준하지 않더라도 2년 뒤 가입국 전체 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6개국이 비준하면 발효된다. TPP 12개국의 국내 총생산 (GDP)을 합하면 전 세계 GDP의 37.1%에 달한다. 교역규모는 세계 총 교역량의 1/4을 차지한다.

Ⅱ.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은 2016년 말 타결을 목표로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합해 16개국이다. 중국은 TPP의 대항마로서 RCEP를 추진하고 있다. RCEP의 주요 참여 국가인 중국, 일본, 인도 간에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어 실제로 타결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RCEP의 규모는 중국과 인도의 참여로 규모 면에서 TPP에 뒤지지 않는다. RCEP 16개국의 GDP비중은 TPP에 밑돌지만 교역 비중만 계산하면 TPP보다 더 크다. 

Ⅲ.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는 APEC에 참여한 21개국의 FTA 건설계획으로써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참가국은 중국, 일본, 미국, 한국, 캐나다 등 총 21개국이다. 글로벌 경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함께 참여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 보다 세계경제의 발전과 평화를 위해 상호 협력한다면 세계의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참여국 중 개도국이 많아서 단기간에 협정이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타결된다면 TPP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 다자 간 FTA가 될 것이다. 21개 회원국들은 전 세계 GDP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교역량도 전 세계의 약 절반에 이른다. FTAAP가 타결되면 APEC 21개국 사이에 발효되어 있는 90여 개에 이르는 양자 혹은 복수국가 간의 FTA로 인한 복잡하고 나라마다 다른 원산지규정을 통일할 수 있을 전망이다.

IV.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세계경제규모 1위인 유럽연합(EU, 28개국)과 2위인 미국 간 FTA로써 2013년부터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TTIP 참가국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 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35조9100억 달러로, 27조 달러인 TPP경제보다 더 크다. 소비자 8억 명을 하나로 묶는 거대시장이 창출된다. TPP 타결 후, 일본은 유럽연합과의 양자 간-FTA를 협상하고 있으며, 미국은 EU와 TTIP 협정 초안을 확정해 문안 수정작업을 하고 있다.

TTIP는 단순히 양자 간 FTA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라운드와 맞먹는 거대 경제블록이다. 더욱이 멕시코와 캐나다가 이미 EU와 FTA를 체결한 점을 감안하면, TTIP는 세계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북미 경제권(NAFTA), EU경제권의 시장 통합을 의미한다. 미국의 이처럼 빠른 움직임은 중국의 주도하에 출범한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한 유럽,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연결하는 중국식 제국주의 욕망 ‘일대일로’ 전략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포석이다. 미-중 경제패권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시그널이다.

V.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은 2011년에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한-중-일 3국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5을, 교역량의 1/6을 차지하는 세계3대 경제권이다. 3국은 상품, 서비스, 투자, 통관, 원산지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진행했으나 상품 분야별로 견해차가 크기 때문에 금년 내에 타결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3국간 산업구조상 경쟁 분야가 많고 경제, 정치, 역사의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얽혀있어 타결이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글로벌 경제영토 확대 경쟁 열풍 속에서, 한국은 지난 10여 년간에 걸쳐 양자 간 FTA 총 15개(작년 말 기준, 51개국 포함)를 개별적으로 체결했다. 한국과 FTA 체결국의 GDP 합계가 전 세계 GDP 비중의 약 73.5%에 달하는 거대한 경제영토를 확보한 것은 상당한 업적이다. 양자 간 FTA로 세계10대 교역국 중 유럽연합, 미국, 중국, 등 글로벌 3대 경제권 모두와 체결한 유일한 국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TPP 참여 기회를 놓쳐, 12개 TPP 회원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는 한국이 양자 간 FTA를 맺어 일본에 비해 시장선점 효과가 있었으나, TPP가 발효되면 10개국에서의 경제영토 선점효과가 서서히 희석될 위험에 당면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메가-FTA와 필연적으로 맞물리게 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 기술 실업의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엄인호(전 캐나다 연방정부 국제무역위원회 수석경제학자, 전 오타와 상록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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