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떤 가이드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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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떤 가이드가 될 것인가?
  • 최란 프랑스 가이드
  • 승인 2016.02.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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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지식 전달보다는 여행객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해외로 여행을 가면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거나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때 가이드는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이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통역을 해 주는 사람 혹은 팁이나 바라는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는가? 프랑스에서 가이드로 일하면서 어떤 가이드가 되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최란 씨의 글을 소개한다. 가이드가 즐겁고 유익한 여행의 동반자이자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편집자

 
 
최근 들어서 많이 생각하는 것이 있다. 어떤 가이드가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가이드로 남을 것인가?
 
 오래 전부터 여행가이드로 일해 보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프랑스로 오기 전 한국에 있을 때부터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대상으로 역사 유적지를 돌며 가이드 해왔고, 그 일을 통해서 얻는 기쁨이 상당했다. 언젠가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가서 가이드로서 당당히 일해 보겠다는 꿈을 접지 않고 몇 년에 걸쳐 준비해왔다. 덕분에 이곳 프랑스에서 지난 일년 동안 가이드로 근무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이드가 되기 전에도 가이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늘 생각해왔다. 좋은 가이드를 만남으로써 손님들의 여행이 더욱 알차고, 유익해지고, 즐거움으로 가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실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여행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소통하려고 노력했고, 그들에게 마음을 다해서 친구처럼, 언니처럼, 동생처럼 딸처럼 다가갔다. 감동을 줄 수 있는 따뜻한 가이드, 사람 냄새 나는 가이드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인성적 측면 외에도 가이드가 갖추어야 할 자질과 소양은 무엇인가, 언제나 고민해왔다.
초창기에는 지식 전달을 잘 하는 가이드가 좋은 가이드라고 생각했다. 해박한 지식을 조리있게 잘 전달하는 가이드가 되고 싶었기에, 책도 많이 보고, 밤잠을 줄여가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등 공부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즈음에는 재미있는 가이드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흥밋거리, 유희거리, 가십거리 등을 찾아 읽어보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무한도전을 드립을 공부한답시고 진지하게 앉아 시청하기도 했다. 재미와 흥미로 무장한 투어를 손님들은 좋아했고, 함께 여행하며 웃고 떠들었다. 물론 유쾌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뭔가 가슴속에 남는 아쉬움들이 있었다.
 
 이제야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최근 들어서 많이 드는 생각은, 손님들에게 스스로 정답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훨씬 더 가치 있고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반복해서 하고 있어서였을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2016년 2월 2일. 팀장님의 투어를 참관 나가서 그분의 투어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동안은 그분의 투어내용이 항상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요즘 하고 있는 고민 때문이었는지, 이번에는 진지하게 들어볼 수 있었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일례를 들어보겠다. 19세기 프랑스 출신으로 ‘에릭 사티’라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나는 투어를 진행할 때 손님들에게 언제나 에릭 사티라는 인물과, 그가 사랑했던 여인 수잔 발라동 이라는 둘의 관계, 사랑이야기에만 치중해서 그 인물을 소개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와, 그로 인한 에피소드들을 전해드리면 물론 손님들은 흥미를 느꼈고 재미있어 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에릭 사티라는 피아니스트가 변화와 개혁의 바람으로 물결치는 19세기 프랑스의 시대상 속에서 얼마나 독보적이고 진보적인 길을 걸어갔는지, 그가 홀로 걸어가야만 했던 길이 얼마나 대단한 길이었는지 알 턱이 없다.
 
 하지만 팀장님의 투어는 내가 손님들에게 가십거리로 들려드리는 사랑이야기가 아닌, 에릭 사티라는 인물에 대한 본론,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무로 치자면 뿌리에 해당하는 내용들이었다. 설명을 통해 손님들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깨닫고, 궁금해 하고, 더 알고 싶어하는 반응이었고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에릭 사티라는 인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1년 만에 다시 한번 깨닫고, 재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후에 도착하는 장소들에서도, 팀장님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설명을 이어가셨다. 내가 원하는 투어의 모습이었다.
 
 이 세상에 정답은 없다. 좋은 투어라는 것. 이것을 어떻게 한 단어로 정의해서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내 투어가 단순한 흥밋거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진행하고 싶은 투어는 명품투어다. 그것은 내 스스로가 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서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원색적인 접근 방식도 아니고, 이미 정답을 내려놓고 단정지어서 설명하는 편향적인 설명도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투어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투어를 진행하면서, 손님들께 설명을 드릴 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인물, 사물, 대상에 대해서 꼬리표를 달아놓고 이것은 이렇다, 저것은 저렇다 라고만 설명했던 것 같다. 이제는 탈근대를 하고, 색안경도 벗어던지고, 나의 정답이 손님들에겐 정답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 정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투어를 진행할 수 있도록 탄탄한 제반지식을 쌓고, 좀 더 넓은 시야로 대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가이드로 근무하면서, 서양사에 대해 많이 접하고, 공부하면서 최근엔 반성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의 뿌리에 해당하는 한국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가?
 
 그래서 올해는 한국사 시험을 보기 위해 최근 들어 한국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러던 중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사실은 여진족이다, 중국계이다 등등의 가설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가설일 뿐이다. 흥미거리에만 치중했던 과거의 나는 이런 류의 자극적인 내용을 보면, 옳타거니 하고 위 내용에 대한 반박거리는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 손님들께 안내하는 위험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넓은 시야로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가치있고, 의미있고,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투어를 진행하는, 그런 최란 가이드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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