底화가 노은님씨 ‘갤러리 현대’서 개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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底화가 노은님씨 ‘갤러리 현대’서 개인展
  • 조선일보
  • 승인 2004.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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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4-05-04 A23 [문화]    기자/기고자 : 정재연  

  
지난 30일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갤러리 현대. 중년 아주머니가 한 명이 쓱 들어와 그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보통 갤러리에서 마주치는 여성들보다 훨씬 소박하고 서글서글한 인상. 바로 갤러리를 가득 채운 그림을 그린 화가다. “학교 강의 잠깐 농땡이 치고 나왔어요…. ” 연방 방글방글한 미소를 지으며 노은님(함부르크 조형예술대 교수)씨가 나직하고 느릿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독일로 건너간 지 34년. 전주에서 태어난 노씨는 화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젊은 혈기에, 9남매 북적이던 집을 나와 파독 간호 보조원을 자원했다. 독일말 한마디 모르는 채 독일 땅에 내린 때가 1970년. “6개월 있으니까 귀가 트이고 1년 있으니까 입이 뚫렸다”는 노씨는 병원 퇴근 후 그림을 그리며 답답함과 향수를 달랬다. “맘대로 그린 유치한 그림이라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 어느 날 감기 때문에 결근했는데 간호부장이 찾아왔다가 방 안에 꽉찬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고 ‘그냥 두기 아깝다’며 병원 한쪽에서 전시회를 열어줬다.

그 기사가 독일 신문에 나면서 주위 성화에 등 떠밀려 함부르크 미대에 진학했다. 담쟁이 이파리, 새 한마리…. 종이에 그냥 죽죽 그린 그림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백남준, 요셉 보이스 등 세기의 거장들과 함께 ‘평화를 위한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백남준씨가 한국 화랑 주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독일에 노은님이라고 그림 잘 그리는 여자가 있다’고 소문냈고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은님이라는 정다운 이름은 그의 작품과 잘 어울린다. “딱딱한 것은 싫어요. 생명을 가진 것은 모두 부드럽습니다. ” 물고기·새·꽃 등을 즐겨 그리는 노씨는 물·불·공기·흙을 화면에 펼치며 생명의 조화를 이야기한다. 그림의 첫인상은 ‘어린애가 그렸나’, 또는 ‘저렇게는 나도 그리겠다’. 그런 반응에 대해 노씨의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저녁 노은님이 스테인리스 냉면 그릇에 샐러드를 차려냈는데 그게 그렇게 자연스럽고 기발해 보였다. 남들이 하면 촌스러운데…. ”

1일 개막한 전시회 벽에 걸린 물고기 작품들은 그림이나 제목이나 말 그대로 ‘맘대로’다. ‘색동 물고기’ ‘하얀 물고기’ ‘밤색 물고기’ ‘긴 물고기’ ‘잠수 물고기’…. 어떤 형식이나 이론에도 매이지 않으면서 ‘미술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통째로 비우지 않고서는 펼칠 수 없는 노은님씨의 자유로운 그림 전시는 16일까지 열린다. (02)734-6111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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