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최초 동서양화의 벽을 뛰어넘은 류민자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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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 동서양화의 벽을 뛰어넘은 류민자展
  • 빠리지성
  • 승인 200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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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예술센터에서...한국최초 동서양화의 벽을 뛰어넘은 류민자 작가의 母女展열려

한국에서 가장 폭 넓은 사랑을 받는 중견작가가 빠리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청와대부터 고위급 정치인들, 왠많한 유명 연예인들이라면 대부분 한 작품이상씩 그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작가 류민자 선생에대한 평가는 한국화와 서양화의 벽을 처음으로 깨뜨린 역사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류씨는 한국 현대미술 대가의 한 사람인 서양화가 고 하인두(1930~1989) 화백과함께 1970년 '부부전_동서양화전'을 열며 등단했다. 화제의 전시회이자 장르 간 벽이 높았던 당시의 화단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류민자(61)씨는 그가 평생을 '선생님'이라 불렀던 화가 하인두(1930~89)가 부부의 연을 맺을 무렵 해준 말을 잊지 못한다.
"동양화 서양화가 어디 있나. 그저 '민자' 네 그림을 그리는 거야, 너만의 그림. 예술보다 인생이 더 소중한 거지. 영글고 참된 인생이 가득하면 그림도 그 속에서 스스로 익어 가는 것."
서양화가 고 하인두(1930~1989)씨는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소위 '아카데미즘' 1세대로 60년대 초반 박서보 등과 함께 '악튀엘'회를 창립하며 화단에 모습을 나타낸 작가이다.
고 하인두는 초기 '앵포르멜'(informelㆍ비구상의 한 조류)을 거쳐 독특한 조형의 80년대 '만다라' 연작 등을 통해 한국 현대 미술의 큰 별로 자리잡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저 부부로서의 개인적 인연이 아니라 현대 회화사의 큰 사건이기도 했다. 1970년 두 사람의 부부전(展)은 이색(異色)적이었고 신선했다.
하씨는 서양화가임에도 "민족적 자각과 고유한 조형 어법으로 국제적 보편성을 지향했고"(평론가 김용대), 류씨 역시 "전통적 장르 구분에 의해 기법까지 구속받던 화단에서 장르를 해체"(평론가 조은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류선생이 쓴 책 '혼불-하인두의 삶과 예술'이란 책을 보면 이 부부의 인생역정을 살펴볼 수 있다.
류씨가 중학교 때 첫 만남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씨가 덕성여고 선생님이었고, 류씨는 여고생이었다.
"여학교 선생 노릇 하는데 단발머리 소녀 하나가 눈에 차 온다. 한번쯤 보듬고도 싶지만, 겁쟁이 주제에…. 몇 해 뒤 성숙한 소녀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녀를 끌고 가 혀가 꼬부라지도록 술만 퍼마신다. 손목은 못 잡고 엉뚱하게 예술에 인생에…. 그러나 '선생님 이미 늦었어요.' 몸져눕는다."
그러나 몇 달 후 꿈 속에 나타난 선생님의 모습은 술꾼에다 가난한 그림쟁이. 12살의 나이차.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우여곡절 끝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결혼 초창기 두 사람에게는 다시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
69년 첫 아들을 낳지만 남편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교사 자리까지 빼앗기면서 산 중턱 무허가 판잣집으로 옮겨야만 했다
하씨는 89년 마지막 20회 전시 후 2년 간의 암 투병을 정리하며 세상을 뜬다.
류씨는 남편이 투병중에도 150호 캔버스를 여럿 연결해 놓고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의 입장에서 부러움을 느낀 적도 있다고 회고한다. 류씨는 "선생님만큼 슬픔과 애닮음을 넘치도록 안고 산 사람이 또 계실까"라 자문하며 "맑고 깨끗한 어린아이 같은 영혼으로 구김살 없이 살다가 가셨다"고 '혼불'을 통해 회고한다.
류씨는 '선생님'과의 인연을 45년으로 정리한다. 좀 묘한 산수(算數)다. '22년 1개월의 결혼생활, 중 1부터 결혼 전까지 12년'까지는 좋은데, 떠나 보낸 후 10년까지…. 그것도 끝이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와 함께 할 것이니 누가 나만큼 그를 알고 또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는 남편의 묘가 내다보이는 경기도 양평 청계리 화실에서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캔버스에 아크릴을 쓰고, 한지에 채색을 하는 등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류민자선생은 30여 년 그의 작품세계의 일관된 소재는 불상과 탑, 산, 나무 등 종교와 자연의 세계였다. 반가사유상이나 합장하는 여인의 이미지야말로 그의 그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그는 화선지에서 캔버스로, 담담한 색조의 분채에서 짙고 강렬한 아크릴로 재료를 바꿔왔듯 끊임없이 세상의 모순을 화폭에서 합일시키려는 기법과 내용의 변화를 추구했다. 남편의 죽음 이후 10여년 간의 인고의 시간은 이런 그의 생각을 더욱 성숙하게 했고, 그것이 다시 평정을 가져다줬다.
출품작들 중 인간 군상의 역동적 율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풍년가’‘비천’ ‘피안의 나무’ 등에서 그의 이런 생각이 읽혀진다. 300~500호에서 1,000호 대작 ‘피안’까지 푸른색, 녹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에서는 한국화와 서양화, 불교와 기독교 등의 구분이 사라지고 관조와 여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석가의 모습에서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이 보이고, 현세의 자연은 피안의 풍경 같다.
대자연과 인간을 한 화면 안에 질서와 조화로 어우러지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 풍경 속에서, 온갖 풍상의 삶을 견디어낸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그는 생명에 대한 외경을 장엄한 인간의 군무로 표현하고 있다.

류민자 선생의 가족은 모두가 미술가들로서 예술인 집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부부가 모두 미술인이지만 큰 아들은 독일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있고, 이미 빠리에서도 잘 알려진 친딸인 '하태임'씨도 디종국립미술학교를 거쳐 빠리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홍익대 대학원에 진학중이며, 몇몇 대학에서 강사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사위인 '강영길'씨는 사진을 전공하고 강남 삼성동에서 스튜디오'INES'를 운영하고 있다.

류민자 선생의 전시는 5월 22일(토)까지 빠리시청에서 근접한 국제아트센터(Cit des Arts International)에서 열린다.
바로 옆의 전시관에서는 하태임씨의 전시가 같은 기간에 열려 모녀가 나란히 파리에서 전시를 하게됐다.
한국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살아있는 역사를 접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류민자 - 하태임 개인전
일시 : 5월13일-5월22일,14h-19h
장소 : Cit des Arts International, 18 rue l'H tel de Ville
(M)7.Pont Ma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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