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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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신문화
  • 빠리지성
  • 승인 200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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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인사회의 중심이 파리 남단으로 이동하기 전 대부분의 빠리교민들이 알포르빌의 '낙원식당'에 대해 갖는 추억이 한가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낙원식당은 원래 족발로 유명했다. 많은 식당들이 족발을 하고 있지만 낙원의 그 맛만은 흉내를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퇴근이 늦거나 혹은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난 후 귀가가 너무 늦었다 싶을 때 꼭 해야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낙원식당에 들러 아내에게 줄 족발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낙원의 '족발'은 그 향과 맛이 너무 독특해 피로를 일거에 해소한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까지 잠못자고 기다려서 짜증이 나있는 아내에게 미안함을 달래주기에는 적격이었다. "여보, 족발이야", 이 한마디 말이 아내의 모든 태도를 바꾸게 한다.
부부는 그날 저녁 즐겁게 족발을 뜯으며 달콤한 밤을 보낸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이 법칙이 유효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쯤은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다.
삶의 중심이 바뀌다보니 나 역시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맛이다. 조만간 한번 들러야겠다.

지금은 이 '여보족발세대'들이 한인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제는 원로의 문턱에 접어들고 있다.

빠리한인사회에서 자녀들이 시집장가를 갈 때 관습적으로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어느 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인사회의 문화가 바뀔 전망이다.

지난 달 빠리한인사회를 중심으로 활동해오신 정하민 화백의 외동딸의 혼례가 있었다. 청첩장을 받은 나는 처음으로 신문에 실어봤다. 그 날 결혼식장에 모인 하객이 500여명을 초과하였다. 이것은 한인사회가 어떠한 행사를 하더라도 모이기 힘든 인원이었다. 그러나 우리 한인들이 다른 것은 다 못하더라도 우리의 친구, 우리의 어른을 모시는 일에는 너도나도 앞장서야 한다는 보여준 단적인 사례이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별다른 구심점이 없이 방황하는 한인사회가 '경조사 문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구심점을 형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우리 문화의 대표적인 성향은 특히 경조사때 큰 힘을 발휘하고 이 행사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원들은 '십시일반'한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은 '열 사람이 밥을 한 술씩만 보태어도 한 사람이 먹을 밥은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쯤은 구제하기 쉽다는 말이다.

<어제가 없이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이 내일이 있을 수 없다.> 인간사의 연결고리를 이만큼 짧게 표현한 말도 없다.

우리는 우리 한인사회가 갖는 독특한 하나의 문화를 가졌고 이러한 터전위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들이나 원로들에 대한 예를 표해야 할 의무와 후배를 양성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낙원식당은 우리가 가진 소중한 삶과 추억이 있고 우리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향수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곳이며, 빠리한인 최초의 호텔레스토랑이다.

낙원식당 성만영 사장의 장녀인 정현양이 오는 5월 22일 혼례를 치르고 낙원식당에서 피로연을 갖는다.

'여보족발'세대들은 대부분 참석하겠지만, 신세대들도 참석하여 선후배간 상견례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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