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 할 도시 –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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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 할 도시 – 전주
  • 이병우 중국 중부지역 경제문화 연구소장(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2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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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근무하는 청사 뒤편에는 단풍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다. 근무 시간에 가끔 2층 사무실 난간에 설치된 휴게실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아래층이 보이고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10월 하순이다. 그야말로 단풍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아래층의 단풍나무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나뭇잎들이 빨간색으로 물들어 가는 중이다. 아름답고 예쁘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자기가 입고 있는 나뭇잎의 색깔을 변화시키는 중이다. 가을 햇빛은 따사롭고 온화하다. 노란 국화를 성숙한 누님의 이미지로 만들기도 하고 길가의 코스모스를 마음껏 웃게 한다. 가을 햇살만이 할 수 있는 천지자연의 조화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이틀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한 주간의 시간도 화살처럼 빨리 흘러간다. 그리고 단풍나무의 변화도 속도를 같이 한다. 세월과 변화의 등식은 하늘과 땅의 원리이고 변함없는 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단풍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마음에 문득 와 닿는 사실을 발견 해 본다. 다름 아닌 단풍의 절정과 미완성의 차이다. 단풍이 절정에 이른 나무는 더 이상 아름답지 못하다. 몇 군데 잎사귀가 떨어진 가지는 앙상하고 추운 느낌을 준다. 반면에 아직 단풍이 조금씩 군데군데 물든 나무는 참으로 아름답다.
 
  완성과 미완성이 조합을 이룬 모습은 무슨 음률의 화음 같은 감성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녹색의 푸른 잎이 빨강의 색감을 덧입으면서 서 있는 모습은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깊은 질감을 나타낸다. 그윽한 국화의 향기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만 같다. 미완성이 주는 아름다움을 나는 교향곡에서 느끼지 못하다가 단풍나무를 보면서 깨닫는다. 자연이 주는 묘한 영감은 이토록 우연한 감성을 선사한다. 왜 나는 미완성된 단풍의 모습에서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아직 완전히 물들지 않은 단풍나무에서 더 큰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노자(老子)의 철학이 내게 주고 있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노자는 약함의 미학을 말했다. 강한 자는 패망하고 약한 자가 반드시 이긴다고 했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다. 이미 완성된 것은 죽어 감을 의미한다. 패하면 흥하고 흥하면 패하는 것이 이치(理致)다. 그래서 노자는 마침내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한다. 최고의 선은 흘러가는 물과 같다는 의미다. 흐르는 물은 굽이진 모퉁이와 모난 바위마저 포용하며 흘러간다. 약하지만 강한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간다. 약하다는 것은 그냥 힘이 없고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약해보이지만 강함을 제압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제압은 강압이 아니라 부드러움이다. 아름다운 힘이고 부드러운 힘이다.
 
  알다시피 전주(全州)는 아직 모든 산업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완성의 땅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디지털 문명과 산업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곳이다. 맞는 말이다. 도시의 화려한 모습 보다는 산 밑에서 옛날부터 조금씩 형성된 촌락 같은 도시 풍경이다. 단풍나무의 단풍이 완전히 익은 채로 서있는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전주는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서울과 부산과 대전에 비하면 약하고 우울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주야말로 강한 것을 듬뿍 가슴에 품고 있는 동네다. 완전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고 약하고 촌스럽기에 더 인간적이다.

  '노자'는 동(動)보다는 정(靜)을, 만(滿)보다는 허(虛)를, 진(進)보다는 귀(歸)를, 교(巧)보다는 졸(拙)을, 웅(雄)보다는 자(雌)를 더 높은 가치로 보았다. 그러나 약함이 마침내 강함을 이긴다고 했다. 전주는 현대 과학이 자기보다 약한 존재로 인식하는 자연의 숨결이 아직 남아있다. 사람의 냄새가 가식(假飾)을 품지 않고 남아 있기도 하다. 동네 이름에 돌꼭지가 있고 불노리가 있는 동네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완성된 도시는 이런 이름이 없다. 이미 다 이룬 것은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허망한 것을 잡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추하다. 앙상한 가지만도 못한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욕망은 파멸을 낳고 무지스런 파탄으로 우리를 이끈다. 욕심의 도시는 화려하다. 고가도로가 거미줄 같고 커다란 빌딩 숲이 화려하게 빛나지만 문학의 냄새도 없고 예술의 향기도 없는 술 집 마담의 짙은 화장 같기만 하다. 반면에 전주는 예술이 숨을 쉬는 곳이다. 붓 향기가 나고 맛있는 한식(韓食)이 사람의 삶을 행복으로 메워준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얼마나 예쁘고 인간적인 도시인가? 내려 온 사람은 올라갈 일만 남았고 열악한 곳은 더 열악한 곳이 되질 않는다. 이제 거듭나는 발전과 성장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 전주다. 노자의 사상이고 우주 만물의 섭리다. 음은 양이 되고 양은 음이 되는 것이다.
 
  다만 전주의 아름다운 도시는 다른 도시가 밟고 간 전철을 밟을 필요는 없다. 인간적인 도시는 인간의 숨결을 원한다. 한식의 전통이 갑자기 돈까스나 스테이크로 바뀌는 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다. 디지털이 문명의 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서 있는 21세기는 융합의 세기다. 과학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두뇌가 융합해야 한다. 그런 문명이 진정한 새로운 문명이다. 인간적이지 못한 디지털과 사람 냄새가 안 나는 세련됨은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는 융합의 바탕이 제대로 형성된 곳이다. 백제와 조선을 거치면서 천 년을 다져온 자연과 사람의 틀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 미래에 가장 융합이 잘 될 것으로 보이는 도시다. 찬란한 문화가 아직도 숨 쉬는 곳에서 부디 전주의 민초들이 새로운 융합 문명의 도시를 만들어 주길 기대하고 바란다. 그러리라 믿는다.

  [전북 지방중소기업청 수출 전문위원 이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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