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18. 아름다운 한복, 자랑스러운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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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18. 아름다운 한복, 자랑스러운 태극기
  • 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 승인 2015.10.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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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맨해튼의 ‘주말’ 교통 상황은 아무도 짐작을 못한다. 아무 생각 없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가는 여기 저기 막아놓은 바리게이트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주말엔 여러 민족의 축제와 퍼레이드, 벼룩시장 등이 열리기 때문이다. 나는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하므로 교통체증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건만 한번은 ‘뉴욕 마라톤 대회’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길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미로 탐색하듯 돌고 돌아 간신히 수업 직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땐 정말 차를 팽개치고 전철을 타고 가고 싶을 정도로 애가 탔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런 것도 추억이 되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일로 갑작스런 교통 체증이 장난이 아니건만 이를 묵묵히 인정해주는 시민의식 또한 맨해튼의 보물이 아닐까 싶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을 전후로 한 토요일은 “한국의 날(Korean Day)”로 맨해튼 42가에서 23가까지 행진을 하는 ‘코리안 퍼레이드’ 행사를 치른다. 12시가 가까워 오면 뮤지컬 극장이 즐비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형형색색의 한복과 자랑스러운 태극기로 출렁이기 시작한다. 준비된 꽃차에 올라타거나 도보로 맨해튼 거리를 누비며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지만 유구한 전통과 아름다운 문화가 숨 쉬는 한국을 소개한다. 거리에 구경 나온 시민들은 자원봉사자가 나누어준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의 행진을 환영하고 한복 입은 사람들, 농악대, 부채춤 등 한국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느라 분주하다. 이날은 우리 학교 학생들도 2교시까지만 수업을 하고 매년 ‘코리안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한복을 입고 그 어느 때보다 신나고 흥분된 마음으로 학교버스에 오른다. 모두 함께 학교버스를 타면 아이들은 놀이터에 온 것 보다 더 신나 한다. 재잘재잘…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새소리처럼 싱그럽게 느껴지고 한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이번에 새로 입학한 아비가일 가족의 한복이 유난히 돋보인다. 장신구, 고무신까지 갖춰 입은 옷매무새가 예사롭지 않다. 아빠가 미국인인 아비가일가족 모두가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갖춘 것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한복이 너무 예쁘네요. 언제 이렇게 준비하셨어요?”  
  “작년이 아비가일 동생 돌이었거든요. 그 때 준비했어요.” 
  “돌잔치를 한국에서 하셨나 봐요…” 
  “아니에요. 미국에서 했어요. 한국 문화처럼 생일잔치를 해 주고 싶었는데 아비가일 아빠가 찬성했어요.   물론 아비가일 아빠도 한복을 입었고요… 손님들도 모두 한복이 예쁘다고 감탄했어요.” 

  아빠 나라인 미국에서 엄마의 모국인 한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행한 첫 생일잔치… 예전, 유태인인 재동이 아빠가 장인어른 제사에 참여한 것이 생각나며, 타민족의 문화를 조화롭게 수용해 주는 아비가일 아버지의 마음에 감사하게 되고, 한복을 주(主)의상으로 추진시킨 아비가일 엄마 또한 자랑스럽다.

  학교에서 배운 ‘한국 동요’를 부르다 보면 목적지인 42가 ‘Broadway’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됨을 느낀다. 4, 5살짜리 꼬마들 30여명을 시작으로 각양각색의 한복을 입은 행렬은 마치 꽃의 행렬 같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진풍경인 것이다. 손에 손을 잡고 행사 장소에 이르면 아이들이 탈 꽃차가 기다리고 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꽃차에 오른 아이들.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치 승전보를 알리는 군인들처럼 힘차게 태극기를 흔든다. 아이들로 가득 채워진 꽃차는 우리뿐이기에 더욱 주목된다. 취재 경쟁도 치열하다. 방송국의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갈듯 싶으면 아이들은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환하게 웃으며 태극기를 더욱 세게 흔든다. 

  “선생님, 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죠?” 

  40분 정도 지나면 꽃차는 종착지인 23가에 도착한다. 모두 아쉬워하며 꽃차에서 내리고 엄마아빠 손을 잡고 각자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보지 않아도 다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로드웨이(Broadway)와 5번가 사이, 32가의 ‘코리언 웨이(Korean Way)’로 향한다. 오후 2시부터 한국 공연이 펼쳐지고, 한국 장터가 열리기 때문이다.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고, 김밥, 떡볶이, 순대, 빈대떡 등 한국 음식이 즐비한 곳에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간다. 엉덩이 걸치고 앉아 야외시장의 음식을 먹노라면 맨해튼 하늘아래 고국의 향수가 피어오른다. 

  ‘조국의 옛 맛, 옛 멋…’ 

  아이들을 핑계로 나온 걸음이지만 부모님들이 더 흥분한 눈치다. 당신들이 그리던 모국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는 날임과 동시에 아이들에게도 한국의 문화를 맘껏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날이기에 더욱 더. 어쨌든 이날은 어른이든 아이든 한국의 멋과 맛을 듬뿍 즐기는 날이다. 

  행사를 즐기고 집으로 가는데 저기서 한복을 입은 우리학교 아이들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볼 일이 있어 다른 곳에 들렀다 오느라 늦었단다. 어머님들은 점심은 행사장에 와서 한국 음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배가 고파 미국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며 아쉬워한다. 대신 식당에서 미국인들이 한복을 보고 “Beautiful”을 연발하며 칭찬을 해주는 바람에 아이들이 다들 신이 났다고 전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어느 때보다 힘찬 어조로 자랑하듯 말한다. 

  “교장 선생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여러 사람들이 저희들이 예쁘다고 하면서 말을 걸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어요. 이것은 ‘한국의 옷’이고 ‘한복’이라고 한다고요. 그리고 제가 이 태극기도 설명해 주었어요. 이건 ‘한국의 국기’라고 말이에요.” 

  태극기까지 흔들며 말을 하는 아이들의 자신감과 긍지, 감격 같은 기쁨이 나에게 온전히 전해지며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한국의 날!” 

  한국의 문화를 맘껏 즐기는 우리의 축제임과 동시에 한국의 문화를 널리 전파하려는 행사이기도 하다. 이 뜻 깊은 행사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한국의 문화를 즐김은 물론, 그들의 마음에 ‘모국으로서의 한국’이 자랑스럽게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당당히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인으로서의 몫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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