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효자동 이발사와 러시아의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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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효자동 이발사와 러시아의 한인들
  • 김진이
  • 승인 2004.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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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개봉이후 예매 순위 1위로 인기를 얻고 있다. 두부 한모 두모할 때 ‘성한모(송강호)’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가진 평범, 소심한 주인공의 가슴아픈 가족사 이야기다. 우연한 기회에 대통령 이발사가 되고 그의 바보스러울만한 충성심이 아들을 앉은뱅이로 만든다. 우연을 가장한 몇 번의 필연이 성한모와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역사란 그런 것인가.

5월 6일 재외동포 재단 초청으로 고국땅을 밟게 된 러시아의 유동공포 25명의 삶이 그랬다. 함경북도 출신의 조부 때 러시아로 건너온 김콘스탄틴(76) 할아버지는 1937년 우즈베키스탄으로 추방됐다. 소들과 함께 소우리 하나에 4식구씩 수송됐다. 수송 도중 죽은 사람들은 매트로 말아서 버려졌고 그들은 45년까지 우즈베키스탄을 나가지 못했다. 지방경찰서장이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강제 수감되고 아무 설명도 없이 무조건 강제이주 차를 타게 됐던 김엘리자베타(76) 할머니의 삶은 고단하고 어려웠다. 강제이주만 없었다면 단란한 가정에서 학교도 다니며 행복했을 김할머니는 겨우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다닐 수 있었다.

1937년 스탈린은 일본의 스파이를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한인 17만여명을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한인들은 가축과 화물을 운반하는 기차로 한달 이상이 걸리는 기간동안 마구잡이로 옮겨졌다. 집단농장과 이주 지역에 갇힌 한인들에게는 모욕과 감시, 편견이 더욱 고통을 가중시켰다. 그렇게 러시아 한인들의 삶은 강제이주와 소수 민족 말살정책으로 송두리째 망가져 버렸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미군과 영국군의 가혹, 학대 행위 소식은 듣는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미군에 의해 사살당했다는 이라크 소녀의 갸날픈 얼굴이 잔상으로 남아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이라크인들 뿐이랴. 대학 등록금을 벌기위해 자원 입대한 21살 소녀가 포로 학대의‘주범’으로 ‘악녀’로 둔갑한 현실은 또 무엇일까.

역사 앞에 무기력하기만 했던 개인들의 모습은 애써 외면하고만 싶다. 그러나 역사의 대의와 명분 뒤로 숨어버린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는 감추고 싶지 않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손을 씻은 후 ‘나는 죄가 없다’고 외쳤던 본디오 빌라도의 죄있음을 역사가 알고 있듯이 선한 우리 이웃들의 삶을 마구 흔들고 뿌리뽑아 던진 이들에게 영원히 공소시효를 인정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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