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13. "사랑, 그 이상의 좋은 교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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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13. "사랑, 그 이상의 좋은 교육은 없다"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8.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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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맨해튼의 특성만큼 우리 학교엔 국제결혼을 한 부부가 많다. 대부분 엄마가 한국인이고 아빠는 외국인이다. 백인 아빠가 가장 많고, 중국, 동남아시아, 아랍 쪽 등 다양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외국인 남자를 만나는 것은 그리 낯설지가 않다. 그런데 04년 가을 학기, 처음으로 백인 엄마가 학부모로 등장하였다. 즉 아빠가 한국인, 엄마가 미국인인 가정이다. 아들(매튜) 하나, 딸(애나벨) 하나였는데 이 아이들은 엄마를 더 닮아 겉으로 봐서는 미국인이다.
 
  언제 보아도 군인의 자세일 정도로 반듯한 8살의 매튜,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을 볼 수 없을 정도의 미소 천사인 6살 애나벨. 둘은 친구들 사이에서 금방 인기가 높아졌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한국어 수업은 물론 자유롭게 움직이는 무용, 음악, 태권도 시간에도 얼마나 침착하고 자세가 바른지 군계일학처럼 그 돋보임이 빛났다. 선생님들 모두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매튜와 애나벨의 반듯함에 칭찬과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엄마가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는지 궁금해 할 정도였다. ​
 
  매튜 어머니는 미국 초등학교 교사이다. 미인인데다가 온화한 인상, 환한 미소가 주는 편안함이 처음 보는 사람도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한국인 엄마가 아닌, 미국인 엄마라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럽고 긴장되었는데 늘 밝은 미소로, 학교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보며 먼저 친근하게 다가오니 고맙기까지 하였다. 미국 학교 교사라는 말에 내심 긴장했건만 학교를 돌아보며 연신 ‘Wonderful!’을 외쳐 준 그녀! 그녀는 매주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격려하며, 복도에서 교실을 엿보기도 하고 간식시간에는 아이들 옆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학교에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 주었다. 어느새 나는 학부모 중에서 그녀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매주 토요일, 그녀 특유의 부드러운 상냥함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었다. 남편과 연애하던 이야기까지.
 
  “남편과 결혼하고 한국에 2년 살았는데 남편 고향에서 원어민 영어교사를 했었어요... 한국사람들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좋았지만 그것이 어떨 때는 불편했어요. 제 개인이 너무 없어져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댁’이었어요. 그분들의 사랑은 알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간섭하셔서...”
 
  생생하던 그녀의 말투가 시댁 이야기가 나오자 시들해 진다. ‘시댁’... 한국며느리에게도 시댁과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인데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인으로서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이 간다. 나는 한국의 유교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를 예로 들며 그녀가 한국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그런 이해는 앞으로 더욱 자주 만나고 함께해야 할 한국인, 한국학교를 이해하는 데도 필요할 테니까. ​
 
  학기 중간에 공개수업을 한다. 애나벨 엄마와 아빠는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와 하루 종일 모든 수업을 참관했다. 우리 학교 교사진은 모두 사범대 출신으로 수업에 대한 열의와 전문성이 뛰어났기에 학부모의 신뢰가 높았고, 학교에서도 자부심이 컸다. 특히 애나벨이 배우는 유치반 교사는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유아교육 전문교사로서, 그 어느 때보다 알차고 재미있는 수업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애나벨 엄마는 나와 얘기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수업 참관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다음 주에 교실을 직접 경험한 소감을 물어볼 생각을 하며, 재미에 유익을 더한 최고의 교사가 하는 수업을 참관하였으니 애나벨 엄마가 학교를 더 좋아하게 되리라 은근히 기대를 했다.
 
  그런데 애나벨과 매튜가 그 다음 주에 학교에 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으나 응답기만 돌아가서 이번 주에는 꼭 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에도 애나벨과 매튜는 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음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전화를 하였다. 몇 번을 전화하여 드디어 애나벨 엄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애나벨에게 한국학교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렇게 심각하진 않지만 계속 학교를 다니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요. 긍정적인 이미지로 학교를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안 보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안 좋은 것 같습니까?”
 
  “애나벨이 교실에서 자신감을 잃는 것 같아요. 한국인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한국어 실력이 낮다 보니 선생님한테 칭찬도 못 받고, 발표도 못하고...”
 
  “애나벨은 지금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학교도 좋아하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요... 선생님들은 또 애나벨을 얼마나 예뻐하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실력도 늘고, 더욱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
 
  “물론 애나벨은 학교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계속 다니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엄마로서, 교사로서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애나벨이 학교를 계속 다녀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생각되기에 안 보내고 싶습니다.”
 
  애나벨 엄마가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얘기하고, 그녀를 설득하기에는 내 영어 실력도 부족하고 생각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후 말하기 편한 애나벨 아빠와 다시 통화를 하였다.
 
  “미국 교육은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는 교육이잖아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신감’이고요. 그런데 애나벨은 다른 친구들보다 한국어를 못하다 보니 발표를 못하고, 그러면 선생님이 주는 스티커도 못 받고, 선생님과 하이파이브도 못하고... 아이들이 스티커를 받고 좋아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신나할 때 뒤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애나벨을 보며 마음이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스티커, 하이파이브... 그런 것들이 도구가 되어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 자체가 애나벨 엄마는 이해가 되지 않나 봐요. 저는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거부감이 덜한데 애나벨 엄마는 그런 교육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문화의 한계 같아요. 저는 애나벨이 원하니까 계속 보내고 싶지만 애나벨 엄마를 이길 수 없네요. 엄마이자 교사이니까요...”
 
  “스티커”, 교사회의에서 항상 논의되던 내용이었다. 잘하는 학생에게는 스티커를 주고, 그것이 많아지면 학기말에 상품이나 적절한 보상을 주는 것. 당장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발표를 많이 하게 하는 현실적인 장점이 있지만, 경쟁심을 유발하고 비교육적이라는 ‘원칙’과의 계속된 토론... 학교 차원에선 쓰지 않는 것으로 정했지만, 현장에서 천방지축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 교실수업에서 스티커만큼 당장의 효과를 보는 것이 없습니다. 저희도 그 단점을 모르는 것이 아니니까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사용할게요. 골고루 돌아가며 받도록 융통성을 부려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방법 자체가 교육적이지 못하니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매번 부정과 긍정의 토론이 오갔고, 초급반 이상에서는 쓰지 않았지만 유치반에선 알록달록한 스티커 자체가 아이들을 신나게 하니 적절히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스티커와 하이파이브에서 충격(?)을 받은 애나벨 엄마는 결국 애나벨과 매튜를 한국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그 때부터 애나벨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더욱 깊어만 갔다.
 
  고백하건데, 애나벨은 유독 나의 마음을 끄는 학생이었다. 그 아이의 눈빛과 미소를 접하면 세상이 순간 분홍빛으로 변해버린다. 그 느낌이 주는 포근함, 따뜻함, 편안함... 세상사에 지친 어른의 마음에 쉼을 주러 온 천사 같다고나 할까… 애나벨이 주는 그 순수한 편안함은 일하다 지치는 주중에도 문득문득 보고 싶게 만들었고, 금요일 저녁엔 애나벨을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설레이기도 했다. 그 후 학교를 그만 둔 후에는 애나벨 꿈도 꾸고, 혹 애나벨 집 근처라도 가게 되면 ‘애나벨을 만나고 갈까?’ 생각할 정도로 그 아이에 대한 나의 마음은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애나벨을 그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던 중, 그 아이가 다시 학교에 왔다. 애나벨이 한국학교에 가고 싶다고 계속 엄마를 졸랐기 때문이다. 1년 만에 ‘짠’하고 환희처럼 나타난 애나벨... 그 사이 분홍빛 볼살이 조금 빠지고 키도 훌쩍 큰 어린 소녀로 변했지만 특유의 포근한 미소는 변함이 없다. 나에게 건네는 그 미소가 환한 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애나벨을 꼬옥 안아주었다.
 
  “고마워… 다시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애나벨은 1년의 공백을 보상이라도 하듯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재미있게 한국무용을 배웠으며 신나게 한국노래를 불렀다. 학기가 끝나는 날, 한복을 곱게 입은 애나벨이 발전상과 개근상을 품에 안고 나에게 다가왔다. 다시 만났을 때의 그 꽃 같은 웃음을 띄우며 내미는 은빛 선물 상자... 내 마음도 기쁨과 감격으로 은빛으로 반짝이며, ‘보람찬 행복’이 가슴 밑바닥에서 마구 솟아올랐다. 매 학기, 학생으로 인해 보람을 느끼는 일이 많지만 애나벨에게서 만큼은 그 기쁨이 더 컸다. 철옹성 같은 미국 문화를 뚫은 기분이랄까? 물론 미국 교육이 더 선진적인 장점이 많겠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만큼의 좋은 동기와 효과가 어디에 있으랴? 비록 방법에 있어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어도 이 세상에 완벽한 교육이란 없는 법, “사랑” 이상의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은 없다는 나의 생각을 애나벨이 입증해준 것 같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은빛 상자를 여니 애나벨처럼 포근한 빛을 담은 분홍 목걸이가 동그란 얼굴을 내민다. 마치 애나벨이 그 안에서 웃으며 속삭이는 듯하다.
 
  “선생님, 저는 느꼈어요. 선생님이, 친구들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 ‘사랑의 공간’으로 정말 다시 오고 싶었어요. 스티커 못 받아도 괜찮아요. 스티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그 아이는 알았던 거다. 누군가가 그에게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마음에 향기처럼 번졌던 한국학교에서의 사랑을. 우리 모두가 주었던 그 ‘사랑의 텔레파시’를.
 
  애나벨이 선물한 목걸이를 마치 아이들을 쓰다듬듯 어루만지며 내 마음을 다시 다져본다.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더 정성스런 사랑을 쏟고, 그들을 더 깊은 사랑으로 감싸 안겠다고. 그 ‘사랑의 향기’에 아이들이 맘 놓고 기댈 수 있는 ‘꽃밭 같은 학교’를 만들겠다고. 서로의 마음에 넘나드는 ‘사랑의 향기’가 학교 안에 가득 찰 때 인종, 문화, 그 어떤 ‘다름’의 차이도 극복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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