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8. "오리", "꽥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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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8. "오리", "꽥꽥!" 2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7.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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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겨울 방학이 끝나고 봄학기가 시작되었다. 2달 만에 만난 아이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떤다. 물론 그 장중을 휘어잡은 사람은 알렉스이다. 크리스마스를 필두로 영국에 놀러 간 이야기, 친구들이랑 지낸 이야기... 아이들은 지난 학기와 다름없이 알렉스를 추종하듯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꽥꽥~!”

  ‘기특한 아이들... 그래도 잊지 않고 내 구호에 답을 하네...’

  학생들을 정돈시키고 수업을 하려는데 교장선생님이 남녀 학생 2명을 데리고 들어오신다. 체구가 큰 아이들이다. 알렉스와 같은 8학년이란다. 한 번 경험을 해서 그런지 별로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여학생은 가는 체구에 얌전해 보이고, 남학생은 알렉스와 비슷한 체구지만 부드러운 인상 때문인지 알렉스를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덜 난감하다. 어쩌면 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어도 동생들과 공부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을 알렉스에게 친구도 생기고, 또 서로 격려하며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 이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지? 한 명일 때와 다르게 수업 전략을 다시 짜보아야 겠다.

  아이들을 반원 모양으로 앉히고 왼편은 초등, 오른편은 중등으로 자리를 구분하여 수업 자료나 활동을 다르게 운영하기로 했다. 주로 초등부 학생들은 활동을 하면서 단어나 문형을 습득하도록 했고, 중등부 학생들은 많은 문제를 풀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내 전략은 맞질 않았다. 아이들은 자리 배정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무룩해 있고, 눈길은 나를 보지 않고 중등부만 바라본다. 특별히 알렉스 옆에 앉아있는 여학생 안젤라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다. 부러움인지, 시샘인지 어쨌든 눈에 힘이 더 들어간다. 다른 때 같으면 신나서 할 활동도 대강하며 언니 오빠들이 무엇을 하나 흘끔흘끔 쳐다보고, 어떤 학생은 중등부 자리로 가서 그들에게 준 자료를 들여다보며 자기도 달라고 한다. 자기도 활동 학습 안하고 문제 풀겠다고. 그러더니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서로 중등부 문제를 달라고 한다. 평소에는 문제 많다고 투덜대더니만 이제는 서로 풀겠다고 야단이니... 어이없으면서도 아이 같은 귀여움에 씨익 웃게 된다. 그래, 잘 됐다. 언니오빠 덕에 너희가 더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구나...

  수업 전략을 다시 바꿔야 했다. 우선 초등과 중등으로 나누었던 자리배정부터 바꾸고 매주 돌아가며 골고루 섞어 앉았다. 수업 방법도 같이 하고 숙제만 구분하여 따로 내주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초등부 7, 중등부 3명의 오리반은 변화된 봄학기를 더욱 알차게 채워갔다.

  “선생님, 언니 오빠들도 같이 음악수업 하면 안 돼요?”

  중등부는 다른 중학생들과도 친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초등생이 음악을 배울 시간에 역사문화를 배우게 하였다. 그랬더니 3학년인 예림이는 그것도 아쉬운지 요청을 한다.

  “으응, 언니오빠들한테 노래가 너무 쉬워서. 그리고 언니오빠에게는 한국 역사가 더 필요하기도 하고...”

  그래도 못내 아쉬운지 앵두 같은 입을 좌우로 삐죽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  아침에 나를 보자마자 예림이와 은재가 달려오더니 큰 비밀을 털어놓듯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선생님, 알렉스 오빠랑 안젤라 언니랑 사귀는 것 같아요

  “그래? 어떻게 알았어?”

  “둘이 얘기하는 것 들었는데요... 서로 이메일 하나 봐요. 그리고 전화도 하고요. 오늘 아침에 오자마자 둘이 얼마나 오래 이야기 했는데요... 간식시간에도 우리 랑은 얘기 안 해요. 둘만 얘기해요.”

  “으응... 언니 오빠가 같은 학년이잖아. 그러니까 공부에 대해서도 물어볼 게 많 고, 할 얘기가 많겠지. 그러면서 더 친해지는 거고. 너희도 같은 학년 친구랑 더 친하지 않니?”

  나한테 큰 맘 먹고 일급비밀을 알려 주었는데 내가 놀라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전의를 상실한 군인처럼 기운이 빠진 눈치다.

  그런데 정말 사고가 터졌다. 알렉스와 안젤라가 안 보인다. 학교 어디를 찾아봐도 없다. 그러니까 한국어 수업 후 역사문화 시간을 빼먹고 둘이 사라진 거다. 교실엔 가방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타나질 않는다. 학교 입구에는 Security Guard가 학생의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는데... 도대체 얘들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학생 지도를 철저히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니 교장 선생님께 고개를 못 들겠고, 안젤라를 데리러 온 아버님께도 너무 죄송했다. 큰 아이들 지도에 내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머릿속에선 온갖 나쁜 생각들이 다 들고, 초조함에 입이 타들어 간다. 아이들이 다 하교를 하고 난 후 10분쯤 지났을까? 알렉스와 안젤라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도 잠깐, 수사관이 범인 취재하듯 모두들 엄하게 묻는다.

  “너희들 수업 빼먹고 어디 갔다 온 거야?”

  “죄송합니다학교 근처 버거킹에 갔었어요. 간식 시간에 잠깐 나간 것이...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어요. 학교 끝나기 전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한국어 수업이야 담임이 가르치니 빠질 수 없지만, 합반을 하는 역사 시간은 좀 빠져도 되겠다 싶으니까 둘이 수업을 빼먹기로 마음을 맞춘 거다.

  “어떻게 나갔어? Security Guard는 너희 나가는 것 못 봤다는데...”

  “카페테리아 쪽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이 또 있어요

  어느새 개구멍까지 알아 놓았던 거다. 교장 선생님이 엄하게 꾸짖으셨고, 안젤라 아빠도 혼을 내시고, 내 차례가 오기도 전에 많이 혼이 난 아이들... 안젤라는 아빠가 데려가시고, 혼자 다니는 알렉스만 남았다. 평소의 그 쾌활하고 호탕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나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한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나는 얼굴을 굳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아빠한테 말씀하실 거예요?”

  “그럼, 말해야지... 당연히 알려 드려야지

  “선생님...한 번만 봐주시면 안돼요? 저 한국학교 열심히 다닌다고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시는데...그분들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안돼.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데. 수업도 빼먹고, 학교 밖까지 나가고, 게다가 늦게 와서 모두를 걱정시키고... 네가 잘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 알아요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약속해요. 한 번만 저를 믿어 주세 요. ?”

  “안 돼!”

  말은 냉정하게 하고 돌아섰지만 나의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미국학교라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번 기회에 한국학교의 권위를 세워야 해. 그래야 학교, 선생님 무서운 줄 알고 제대로 행동하지. 아니야... 다들 노는 토요일에 그 먼 곳에서 혼자 꼬박꼬박 오는 정성만도 어디야. 그렇게 애원하니 한 번만 봐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지... 이번에 확실히 해놓아야지 행여 안젤라와 또 다른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어. 아니야, 내가 알고 있는 알렉스는 그럴 학생이 아니야.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는데 일을 확대시키면 내가 자기를 믿어주지 않은 데에서 오는 상실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잃을지도 몰라...’

  나는 전화기를 수십 번 들었다 놓으며 고민을 하다 결국 내가 경험한 알렉스를 믿기로 했다.

  일찍 등교한 알렉스가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씨익웃으며 인사를 한다. 지난 주 행했던 잘못에 대한 죄스러움, 자기를 믿어준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이 섞인 눈빛이다. 나도 미소로 답을 했다. 너를 믿는다는 온화한 눈빛을 건내며... 따로 불러 다시 한 번 주의를 주고 다짐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침에 나눈 미소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언어보다 더 확실하게 다가온 그 결심의 눈빛을 믿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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