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사코를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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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사코를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이병우 총경리
  • 승인 2015.07.0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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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총경리(상양 국신광전 실업 유한공사)
  한두 차례 비가 오면서 극심했던 가뭄이 어느 정도는 해갈이 된 듯합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저는 무엇보다 한국의 하늘이 너무나 좋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싱싱한 여름이 선사하는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은 제가 살던 중국에서는 보기가 아주 힘듭니다. 비록 낮에는 다소 덥기는 하지만 아침저녁에 맛볼 수 있는 청량하고 시원한 여름 바람은 가히 일품입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도 있듯이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도 결국은 내 나라 내 집만 한 곳이 없습니다. 타국에서 살다가 모처럼 고국에 오신 분들의 생각도 다른 건 몰라도 이 점만은 같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는 처절한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한 번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품어 주었던 겁니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봄이면 만산에 꽃이 피고 여름에는 풍성한 채소와 과일을 주며 가을은 정말로 아름다운 오색의 단풍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긴 겨울밤은 피곤하고 힘든 우리를 포근하고 따듯하게 감싸 줍니다. 그러나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닐 겁니다.
 
  이방에서 바라본 고국의 모습과 실제로 와서 살아보는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달라져 갑니다. 고국을 향했던 애정과 지극했던 사랑이 애증으로 변해 갑니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애증이 원망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에는 이런 다양한 모습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가 나의 조국이라는 겁니다.
 
  남의 땅에서 살 때는 별로 상관이 없던 일들이 가슴과 피부로 와 닿는 내 나라 내 땅인 겁니다. 외면해서도 안 되고 외면하고 돌아설 수도 없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조국의 땅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늘 피곤에 지쳐있고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희망과 도전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쉽게 좌절하고 노년의 모습은 쓸쓸합니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힘찬 발전의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보아 온 느낌과 비교하면 우리의 조국은 너무나 침체된 기분이 듭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요구하고 공유하려는 "철학(哲學)"이 없다는 겁니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무엇을 목표로 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국민을 상대로 어떤 가치를 공유하며 무엇을 목표로 함께 가자고 요구하는지를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처럼 “우리도 이제 잘살아 보자”는 것도 아니고, 80년대의 “우리도 이제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자”는 것도 아닙니다.
 
  지도자들의 무능한 국가 운영으로 IMF 사태를 맞아 죽기 살기로 고생하고, 다시 금융 위기를 통해서 한 번 더 허리를 졸라매기도 했지만 우리는 왜 그런 시련과 난관을 극복해야 했는지에 대한 목표가 없는 듯합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비전이 없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목표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는 마침내 난파되는 겁니다. 어디를 향해서 항해하는지 모르는 선장을 믿고 마냥 그 배를 타고 갈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왜 배를 탔으며, 이 배는 어떤 목적으로, 어디를 향해서 가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모두가 함께 지향하는 목표와 목적이 있다면 때로는 더 나은 발전과 더 확실한 방법을 생산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싸울 수도 있는 겁니다. 당연히 논쟁하고 치열하게 다투어야 합니다. 그 게 민주주의입니다. 제가 살던 중국의 호북성 무한은 거대한 장강(長江)과 한강(漢江)이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강변의 높은 망루에 올라가 두 개의 강이 합쳐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장관입니다. 황토색의 장강과 푸른색의 한강은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는 거품을 내며 부딪치지만 금방 어울려서 다시 흘러갑니다. 두 강의 목적지가 결국 바다임을 서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겁니다. 자연의 거대한 질서를 결코 거스르지 않는 겁니다.
 
  중국인들의 사상(思想)도 비슷합니다. 순리(順理)를 거역하려는 모습이 없습니다. 중국어의 특성상, 목소리가 커서 마치 늘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들의 결말은 대부분 웃음으로 끝이 납니다. 격렬한 토론도, 언쟁도 웃으면서 결말을 내기 위해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견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상대의 말이 더 합리적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이유를 접을 줄 아는 겁니다.
 
  그래야 헤어지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합리적인 것에 수긍을 하는 겁니다. 세월이 오늘 하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나에게도 더 합리적인 방법이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늘은 상대의 좋은 의견에 수긍을 하는 겁니다. 중국 사람들의 좋은 점입니다.
 
  안타깝지만 한국의 현실은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은 중국과 비교할 때 훨씬 더 아름답지만, 내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권의 싸움과 사회의 여러 모습은 또 다른 비교를 줍니다. 참 어렵습니다. 답답하기도 합니다.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런 부질없는 생각은 안 할 겁니다.
 
  피천득 선생은 인연이라는 수필에서 “아사코를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아마 저처럼 한국에 살다가 이방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고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비록 아사코를 만나러 고국에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고국을 다시 만났을 때 선생의 고백처럼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란 느낌을 갖는다면 분명히 우리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닐 겁니다. 부디 우리의 조국이 “다시 만나기를 잘했다”는 고백을 해외 동포들에게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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