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7. "오리! ", "꽥꽥!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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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7. "오리! ", "꽥꽥! " 1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6.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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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오리!” ... 
 
꽥꽥!”

  반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오리!” 라고 크게 외치며 학생들의 시선을 모은다(우리 학급 이름이 오리반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와 약속한 대로 꽥꽥!”, 오리 소리로 답을 하며 발을 구르고 곧 수업에 집중을 한다. 기특한 놈들... 안 듣고 있는 것 같아도 모두 입을 모아 크게 대답을 하니 예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어린 2, 3학년 학생들이기에 오래 집중을 못하고, 장난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어떤 학생은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려니 아이들을 어떻게 집중시키고, 어떤 방법으로 재미를 더해 주어야 하는 가로 매일, 매시간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리고 그것도 안 될 때는 어김없이 오리!”를 외쳐야 한다.

  개학을 한 지 2주가 지났는데 교장 선생님이 어떤 청년(?)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새로 온 오리반학생이라고. 8학년(한국의 중 2)이란다. 내 보기엔 고2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알렉스는 건장한 체구에 약간 그을린 얼굴이 더욱 어른스러워 보인다. 이를 어쩌나... 솜털 같은 우리아이들하고, 무쇠 같은 알렉스가 같이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유치반 방법을 동원하며 나조차도 유치원생이 되어 노래하고 연극을 하며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중학생인 알렉스가 끼면 어떻게 지도해야 하나? 알렉스가 보기엔 유치할 테고, 그렇다고 알렉스에 초점을 두어 수업할 수도 없고... 또 어린 아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알렉스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생활을 할까? 알렉스를 접하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그 큰 체격에 짓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무거워진다.

  주말 한국학교는 한국어를 시작하는 시기에 강제성이 없다 보니 한 반에 2~3학년 정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6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경험은 처음이기에 난감하면서 황당해 진다. 그러나 늦게나마 한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용기를 낸 알렉스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보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청년(?) 알렉스를 맞았다.

  아이들도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 알렉스를 쳐다본다. 알렉스가 한 마디를 하면 우스운 소리도 아님에도 무턱대고 웃는다. 목소리부터가 자신들과 다르니 신기하고 웃기나 보다. 어떤 아이는 알렉스만 바라보고 있다. 가뜩이나 집중 안 하는 아이들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호기심이 많을 때이니 일시적인 현상이라 위로하며 1, 2교시를 마쳤다.

  “ I love this class!, Hey you guys, Let’s go to cafeteria, Let’s go!”

  간식을 먹으러 갈 때 알렉스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친(?) 말이다. 목소리가 커서 그냥 얘기하는 것인데도 꼭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수업을 해보니 다른 학생들보다 실력이 뒤진다. 하지만 학습 능력은 뛰어나 그 날 배운 내용은 잘 받아들이고 응용도 잘한다. 부족한 부분은 따로 숙제를 내주고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면 곧 따라올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게다가 한참 어린 동생들하고 공부하니 자존심도 상했으련만, 학급을 좋아하고 오히려 씩씩하니 정말 고마웠다. 동생들한테 먼저 말을 걸고, 그들을 챙기는 것을 보니 아이들과 조화롭게 잘 지내리라는 생각과 함께 반에 활력을 넣어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짧은 간식 시간이지만 어느 새 이름을 다 외워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치고 있다. 그럴 때는 또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그래, 알렉스를 반장을 시키자. 그래서 아이들을 이끌게 하고...’

  “알렉스, 동생들을 잘 데리고 교실로 가 줄래?”

  여느 때 같으면 내가 아이들을 불러서 한 줄로 세우고 교실까지 인도해야 했지만 나는 이제 알렉스를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알렉스는 우리반 아이들을 모두 불러 한 줄로 세우더니 교실로 올라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간다. 교실에 들어서더니 이번엔 아이들을 지도한다.

  “모두 앉아 조용히 하고, 책을 펴세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술 더 뜬다. 누가 좀 떠들면

  “마이크, 조용히 해. 안젤라, 그림 그리고 있으면 어떡하니?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아이들은 내가 지적할 때는 그렇게 말을 안 듣더니 알렉스가 지적을 하니 어김없이 자리를 고쳐 앉고 수업에 집중한다. 마치 마술사가 탁하고 손을 가리키면 물건이 비둘기로 변하듯이 아이들은 알렉스의 지적 한마디면 군소리 없이 조용한 천사로 변했다. 우려했던 바와 다르게 알렉스는 자연스럽게 오리반 식구가 되었고, 수업 분위기도 더욱 좋아졌다. 화가 복이 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나 보다.

  알렉스가 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수업 중에 오리!” 라고 외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내가 외치기 전에 알렉스가 다 알아서 아이들을 지도하기 때문이다. 유치원 방법을 덜 써도 아이들은 알렉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집중을 잘하고, 숙제도 잘 해오고, 발표도 잘 하고... 너무 잘 하니 내가 오히려 심심해진다. 오리!” 한 번 외치고 싶다.

  그런데... 알렉스의 자세가 사뭇 눈에 거슬린다. 다리를 크게 벌린 상태에서 기일게 뻗고, 엉덩이는 의자 끝에 걸쳤으니 거의 일자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건방진 자세다. 갑자기 어느 분이 말씀해 주신 일화가 생각났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을 모시고 집에 갔는데, 아들이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스낵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손님이 왔다고 말을 하자, 아들은 누워있는 채로 고개만 돌리더니 “Hi ?” 라 말하며 손을 흔들고 다시 텔레비전에 집중했다. 그 때 그 아버지는 앞이 깜깜해지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미국이지만 한국 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그래서 손님이 가고 나서 한국의 예절을 가르쳐 주려 애썼지만 다 큰 사춘기의 아들에게 한국의 예절을 가르쳐주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한국의 예절을 불편해하며 편한 것이 좋다고 아버지께 대들었다고 하니...

  ‘, 저 자세를 고치라고 하면 알렉스가 어떻게 나올까?’

  “난 이 자세가 편해요. 그냥 나 편한 대로 앉을래요. 제가 이렇게 앉아서 피해준 것 있습니까?”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미국 교육의 특성상, 알렉스가 이렇게 대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한테도 영향을 끼칠 텐데... 어린 아이들은 그냥 가르치면 그런가 보다.. 하며 순종적이건만 자기 주장이 있는 큰 아이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래도 여기는 한국학교! 한국예절을 가르쳐야겠지?’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교차하며 나는 알렉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알렉스야, 한국에서는 어른 앞에서 그렇게 앉으면 안 된단다. 다시 잘 앉아 보겠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꽤 긴장을 했는데 알렉스는,

  “Oh!, Korean Style!”

  하며 금방 자세를 고쳐 앉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두 문화를 수용하려는 열린 마음의 알렉스가 정말 고마웠고 알렉스를 지도하는데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알렉스가 한국어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지도할 일만 남았다. 일단 숙제를 따로 만들었다. 글씨는 작게 하고 내용은 더 많게 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은 아래 단계 교사한테 자료를 얻어 첨부하는 등 알렉스 맞춤형 숙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주 전화를 걸어 숙제를 잘 하고 있는지, 일기는 썼는지 확인하며 관심을 쏟아 주었다. 일기에는 알렉스의 생활이 잘 나타나 있었다. 주말에 친구들과 놀고 영화 본 이야기, 육상부 이야기, 할머니와의 이야기, 여자 친구 이야기 등.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일기를 통해 알렉스를 더욱 잘 알 수 있었고, 지도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주로 여자 친구 안부를 물으며 나는 알렉스와 더욱 친하게 되었다. 허나 한국말이 서툰 때문인지 영어를 자주 쓴다.

  “알렉스, 네가 자꾸 영어를 쓰면 동생들도 한국말을 잘 안 쓰게 된단다. 동생들이 너를 좋아하다 보니 무엇이든 너를 따라 하잖니... 넌 동생들의 ‘Role Model ’ 이 되어야 해. 그러니 힘들겠지만 한국학교에서는 꼭 한국말을 쓰도록 하렴.”

  “!”

  한국말이 서툰 녀석이 씩씩하게 대답도 잘한다. 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긴장한 눈치다. 그러더니 정말 한국어만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집에 가서도 부모님께 한국말로만 얘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며 한국어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선생님, 알렉스 형아 왜 안 왔어요?”

  알렉스가 결석을 하면 반 학생들 모두 다 한 번씩 물어본다. 어쩌다 지각을 할 때면 아이들이 시무룩해 있다가 알렉스가 오면 다시 반은 활기가 넘친다. 이제 알렉스는 우리 반에 없어서는 안 될 학생이자 형이자, 반장이자 보조 교사가 되었다.

  “알렉스, 트랙 경기는 잘 했어? 동생들이 너 너무 보고 싶어 해. 다음 주에는 꼭 올 거지? 숙제 보낸 것은 받았니? 모르는 것은 없어? 누나나 부모님께 물어서 숙제 다 해 오고. 일기도 꼭 쓰고. 알았지?”

  알렉스는 학교를 오나 안 오나, 나의 이런 잔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며 한 학기를 채워야 했다.

  2달 반의 긴 방학이 돌아왔고, 지난 학기와 달리 방학을 하는 것이 싫을 정도로 아이들은 알렉스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서운한 눈치다. 나도 알렉스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방학 숙제를 잘 하고 있나 점검도 할 겸 전화를 한 번 하려던 즈음, 알렉스 어머님으로부터 식사를 함께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보고 싶은 알렉스를 본다는 설렘으로 남편과 함께 약속된 장소로 갔다. 거의 한 달 만에 알렉스를 본다. 최근에 머리를 깎았는지 산뜻하게 보인다. 알렉스 부모님은 인자한 모습에 알렉스만큼이나 나를 편안하게 해주셨다.

  “알렉스 어제 머리 잘랐어요. 머리가 길어서 아무리 자르라고 해도 안 자르더니 선생님 만난다고 하니 금방 자르던데요?”

  아버님 말씀에 내심 흐믓해 하고 있는데

알렉스가 친구들한테 선생님을 스토커 같다고 말해요.”

 '? 웬 스토커?? 내가 알렉스를 너무 귀찮게 했나???’

  어머님의 말에 긴장을 하게 된다.

  “말이 스토커지 친구들한테 자랑스럽게 말해요... 그만큼 선생님이 관심을 가져 주시니 기분이 좋아서 하는 말이지요. 미국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이 다니는 한국학교 소개도 하고, 자신에게 지극정성인 선생님이 있다는 것을 항상 자랑하고 싶어 해요. 동생들이랑 공부하게 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선생님이 신경을 써 주셔서 생활도 활기차게 되고, 한국말도 늘었습니다... 몸이 아프신 시어머님을 형제들이 돌아가며 모시고 있거든요. 이번에 저희 집에 와 계신데 알렉스가 한국말로 할머니와 대화하니 어머님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저희가 큰 효도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알렉스가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다 보니 공부는 열심히 안 하는 편이에요. 한국학교 숙제도 잘 안 하다가도 선생님이 전화하시면 곧잘 하지요. 선생님!, 부탁이 하나 있어요. 우리 알렉스에게 운동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선생님 말씀은 잘 들으니까요. 현재 알렉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분은 선생님이랍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주말한국학교에서 만나는 교사이지만 알렉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니 정말 고마웠고 이 기회에 알렉스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큰 뜻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 되도록 격려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알렉스 생일에 맞추어 재미한인학교 협의회에서 쓴 이민사책을 선물했다. 부록에는 미국 이민사에 영향을 미친 훌륭한 한국계 인사들의 사진과 업적도 적혀있어 알렉스에게 자극도 되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드에 정성스레 알렉스에 대한 고마움과 기대를 실어 보냈다.

  “알렉스, 너를 만난 지난 학기는 정말 행복했어. 솔직히 네가 처음 한국학교에 왔을 때 걱정도 많이 했어. 그러나 너는 점점 선생님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나보다도 더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지...

  고마워. 동생들을 잘 보살펴 주고,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 일도 많이 도와주고... 이렇게 반에서 중요한 너는 다른 곳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리라 믿어. 현재 너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렴. 오리반 학생과 나에게 큰 행복과 기쁨과 주었듯이... 그러다보면 너도 이민사 책의 훌륭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선정되어 너의 사진과 업적이 올라갈 거야... 할 수 있지?

  선생님은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를 잘 포용하며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알렉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날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계화 시대에 두 문화를 조화롭게 겪고 있는 너는 분명 한국과 미국을 연결시키고 발전시키는 능력 있는 세계인이 되리라 믿어. 생일 축하해.”

  * 추신: 알렉스, 이제 오리반에 12학년 아저씨(?)가 와도 선생님은 두렵지 않단다. 다 네 덕분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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