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소리] 알구 웃어라, 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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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 알구 웃어라, 알구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5.05.17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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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구 웃어라, 알구! 

  고등학교 1학년 학기 초, 국어시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장용학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어오셨다. ‘요한 시집’이라는 선생님의 단편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유명한 분이어서 모두들 기대 어린 표정으로 첫 대면을 맞이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지독한 함경도 사투리로 말씀을 시작하시자 모두들 배꼽을 잡고 까르르 웃어댔다.

  알아듣기도 조금 어려웠지만, 그 보다는 철학적 깊이가 있고 세련된 작품 ‘요한 시집’과는 거리감이 있는 투박한 사투리가 의외였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들 나이가 ‘개구리가 폴짝 뛰어도 배꼽을 잡는’ 나이가 아닌가?

  장용학 선생님은 개구쟁이 학생들의 웃음폭탄에 적이 당황하고 기분이 상하셔서 외치셨다. “알구 웃어라. 알구!” 설명하시는 내용에 집중하고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 웃기만 한다고 꾸중하신 것이다. 물론 웃음은 곧 사라졌지만 수업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첫 대면은 어수선하게 끝났다.

  그런데 50여년이 더 지난 지금도 봄이 되면 문득 “알구 웃어라, 알구”하는 짙은 함경도 사투리의 꾸중이 귀에 들린다. 그때는 철없는 나이였지만, 지금도 종종 모르고 웃는 때가 많아서일까? 나이 들어 기억나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모르고 웃은 에피소드 3

  하나, 20여 년 전 경실련에서 일할 때, 정부에서 부동산 투기를 막는 토지공개념 3법을 시행한다고 좋아하며 웃은 적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체주택의 30%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짓고, 평당 500만원에 중산층 아파트를 공급하라는 국민들의 염원”에 대해서 정부는 외면했다. 오히려 ‘부동산 열기’가 꺼질까 노심초사하면서 ‘부동산투기’를 방조해왔다.

  세금 내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지나치게 값비싼 아파트를 금융대출을 받아서 구입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가계대출이 1000조를 넘고 가계소비는 탄력을 잃고 위축되었다. 그리고 일본식 장기불황에 진입했다.

  둘, 현대과학의 발달과 자본주의 경제의 성공으로 오늘날 지구촌 인구의 20%만 일하면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서 모두들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의 종말’을 가져왔고, 80%가 실업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어이가 없어졌다. 오늘날 ‘청년실업’은 범지구적 과제가 되었고, 이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 못하는 나라들의 미래는 암울하다.

  셋, 대한민국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립한 국가로서 경제민주화와 정치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국가라고 해서 무척 좋아했다. 더구나 ‘압축고도성장’으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 불에서 답보하면서 불황에 진입하고 가계대출이 1000조를 돌파한다고 했을 때, 비로소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압축고도성장이나 경제성장신화나 ‘747공약’이나 모두 국민의 5% 미만의 기득권에게 의미심장한 숫자가 아닌가? 국민의 절대 다수인 서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은 지금 합계출산율 1.21로 OECD국가 중 최저이고, 자살율은 OECD국가 중 1위이고 호주의 7배에 달한다. 일년동안 국민 1만5천명이 자살하고, 매일같이 십여 명의 노인이 자살해도 뉴스에 보도조차 되지 않는 형편이다. 자살율이 세계 1위라면 ‘국가경영’은 이미 실패를 공인받은 셈이고, 출산율 최저라면 ‘국가미래’는 이미 ‘파산경고’를 받은 셈이다.

  어떻게 할까?

  속없이 이대로 살다가 죽어야 할까? 아니다. 어려운 형편에서 우리를 이만큼 키워주신 부모님 은혜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더구나 자식들 생각을 하면 더 더욱 그럴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여러 사람들과 토론을 시작해서 무언가 해결책을 찾아야겠다.

  비전이나 목표는커녕 제대로 된 ‘문제의식’도 없는 여야 정치꾼들이, 권력자들이, 신문 방송이 웃으란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웃을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알구 웃어야겠다. 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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