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10. "마음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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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10. "마음이 아파요"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5.0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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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봄날이다. 모두들 자신을 봐달라고 각양각색의 모양과 향기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마음엔 살랑살랑 봄바람을 불게 한다. 봄 햇살이 더욱 반짝이는 날이면 일터를 벗어나 봄꽃 여행을 떠나고 싶도록 말이다. 그러니 한창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 또한 콘크리트 속 교실을 떠나, 이 봄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맘껏 즐기고 싶을 것이다.

   중1인 현주는 예쁘고 키도 크며, 다른 친구보다 성숙한 편이었다. 그런 현주가 입학한 지 2달 정도 된 어느 봄날, 아무 연락도 없이 결석을 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했더니,
   “아니, 현주가 학교를 안 갔어요???”
   ‘이건 또 뭔 소리?’
   외동딸인 현주는 부모님이 늦게까지 일하시는 날은 친구 집에서 자주 잔다며, 지난밤도 친구 집에서 자는 것을 허락해 주셨단다. 그런데 학교를 안 갔는지는 몰랐다고 오히려 놀라신다.

   “아침에 학교 오려고 친구랑 나왔는데요, 봄 햇살이 눈부시다~~ 꽃이 예쁘다~~ 서로 감탄하다가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이 나와서...... 그냥 돌아다녔어요. 쇼핑센터도 가고, 떡볶이랑 튀김도 사먹고, 공원 가서 꽃구경도 하고......”
   ‘이그, 어른들은 걱정으로 가슴이 타들어 가는데 봄날이 예쁘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고? 그래, 눈부신 햇살이, 아름다운 꽃이 죄다, 죄야......’
   한 번쯤 충동적인 일탈을 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 현주에게 화가 나면서도 그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도 없잖아 있기에 반성문을 쓰는 것으로 현주의 찬란한 무단결석은 면죄부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달, 그 다음 달도 현주는 무단결석을 했고 이제는 가출하는 날짜까지 늘려가면서 우리의 속을 태웠다. 그리고 급기야 낙엽 떨어지는 가을엔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린 여학생들이 3일 이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선생 X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정말 속이 탈대로 탔다.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피가 마르는 긴장과 불안감이 교차하며, 현주가 빨리, 무사히 돌아와 주기만을 바랐다. 이번엔 이유를 뭐라고 할까? 떨어지는 낙엽이 허무해서라고 하려나???

   현주는 5일 만에 돌아왔다. 친구랑 학교에서 해방되어 하고 싶은 대로 놀고먹고 했단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돌아온 것이다. 별 탈 없이 돌아와 주어 고맙기도 했지만, 매번 학교의 처벌에서 보호해 주고 타이른 내 정성과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가출을 하는 현주가 너무나 야속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체벌은 피하자’가 내 교육 철학의 하나이자 학교의 방침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나의 지도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이젠 극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 현주가 가출할 때마다 말로 타이르고 선처를 해주니까 그때뿐이고 계속 가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매 좀 들겠습니다.”
   어머님께 말씀을 드리고 현주 엉덩이를 수차례 때렸다. 현주가 아파서 저절로 주저앉을 때까지. 내 마음도 주저앉는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잘 타이르며 교육시키고 싶었는데...... 결국 매가 교육이 되어버린 현실과, 나의 무능함으로 인해 한동안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매 사건 이후로 현주는 2달 이상을 가출하지 않고 잘 견디며, 2학년으로 무사히 진급을 할 수 있었다. 진작 매를 들었어야 했나?
   그러나 현주는 2학년이 되고 몇 달 안 있다 다시 가출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내가 현주에게 너무 관대한 것이 한 원인이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 가출했을 때 따끔하게 매로 다스리고, 학교에서 징계를 주고 했어야 했는데 담임이 학생을 너무 감쌌다는 것이다. 결국 1학년 때의 전과도 있기에 현주는 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말 내가 진작 매를 들고 학교에선 정학 처분을 했어야 현주의 가출병이 나았을까? 현주 생각을 할 때면 당시 내가 얼마나 무식했고, 한국 교육이 얼마나 후진적이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아마 미국이었다면 현주는 심리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거주하며 경험한 한국과 미국 교육의 차이점 중 하나를 들라면 ‘양호실’을 들수 있겠다. 한국의 모든 학교에 있는 ‘양호실’이 미국에는 없다. 대신 심리치료교사가 상주하는 ‘상담실’이 있어 학생들이 늘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를 상담하며, 소화제를 먹듯, 소독약을 바르듯 마음의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일단 상담 치료를 받고, 정도가 심각한 학생은 특수 교육을 받게 하여 의학적, 정신적 치료를 병행하며 교육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현주의 가출은 일종의 ‘병’이었고, 그 원인을 찾아 ‘치료’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지 매로 다스리거나 정학을 시킨다거나 하는 식의 물리적 방법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외적 성장을 향해 질주해 온 우리 사회의 특성이 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학생의 내적 요인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해 본다. 물론 지금의 한국 교육은 체벌을 금지하고 학교에 상담 교사가 있는 등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긴 하지만, 좀 더 학생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성장에 집중하는 교육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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