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9. 환상의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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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9. 환상의 짝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4.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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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세상엔 부자가 많다.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할 때 나도 부자라고 말하고 싶다. 내게 있어 ‘재산’은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사람 중 가족은 누구에게나 해당될 것이다. 가족 외에 평생을 같이 하며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 확신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부자라 생각한다. 물질적 풍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 ‘든든한 충만함’은 그런 사람을 가진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렇게 나를 부자라고 확신하게 하는 사람 중에 ‘제자’ 종찬이가 제일 먼저 꼽힌다. 가족 외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제자’로 꼽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기에 이 글을 쓰면서도 어깨가 으쓱거려지고 참 행복하다.

  모범생의 모든 조건은 다 갖춘 종찬이었다. 성실함, 단정함, 따뜻한 마음, 올곧은 인간성, 겸손, 그러면서도 잃지 않는 자기애, 뚜렷한 주관, 높은 사고력과 논리력에다 뛰어난 글재주까지 있어 나를 감탄시킨 학생이다. 그런 종찬이를 개인적으로 지도한 일이 계기가 되어 그가 중 3때 1년 가르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종찬이가 부족한 나를 스승으로 섬기며 한결같은 마음과 도움을 주었기에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내가 살면서 신세를 진 사람 중 1위를 꼽으라면 종찬이를 들만큼 나는 종찬이에게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교생 앞에서 특순을 하는 학급 발표회를 매년 도와주었고, 합창대회 때는 일요일도 마다 않고 학교에 나와 남학생 파트를 지도해 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서도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해결사처럼 나를 도와주었으며 심지어 군대에 있을 때에도 컴퓨터 관련 일로 나를 깜깜함에서 구해주었다. 내 결혼식 때는 007 특급작전으로 차 안에서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가까스로 식장에 도착해 사진을 ‘짠’하고 찍을 만큼 가족 같은 존재이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에도 내 생일, 명절, 스승의 날엔 잊지 않고 안부를 묻고, 한국에 왔을 때는 그날 밤으로 달려 나오고, 다시 뉴욕에 들어올 때는 가족을 물리치고 나를 배웅해 줄 정도이니 황송할 따름이다.

  “선생님, 지금 출판사랑 다 얘기 끝났는데요. 언어교육, 인문사회계열 쪽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에요. 원고만 가져 오면 선생님 책 내드린다고 했어요. 제 책을 낸 곳이라 제가 잘 알거든요.... 선생님은 아무 걱정 마시고 원고만 빨리 주세요.”

  나의 미래 계획에 대해 얘기 나누다, 나보러 책을 하나 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곧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새 알아보고 전화를 준 것이다. 물론 준비도 안 된데다 실력도 안돼서 출판할 마음은 없지만 나의 미래에 대해 나보다 더 애써주는 제자가 있다는 사실이 참 든든하고 행복했다. 가정에선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 사회에선 손꼽히는 주니어 영어교육 전문가로 강의에 저술에, 연구에, 분을 쪼개서 살아야 할 만큼 바쁘면서도 나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쏟아주는 제자가 있으니 이쯤 되면 내가 부자라고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한국사회가 들썩이고 있는데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나만큼은 든든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종찬이를 통해 다른 아이들의 소식도 자주 듣곤 했다. 그 중에 가장 반가운 소식은 영신이 이야기다. 영신이와 종찬이는 학급 발표회 준비로 종찬이가 저녁 늦게까지 우리 반 일을 도와주었을 때 서로 얼굴을 익혔다.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척척 일을 잘 할 뿐더러, 슬쩍 나가서 아이들 빵이랑 우유를 사올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으니 모두 종찬이 오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을 것이다. 그 후 영신이가 종찬이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종찬이가 제대 후 복학하면서 둘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영신이는 여제자 중, 아내감 1위로 꼽을 만큼 착하고 현명하면서 애교가 많은 매력적인 아이다.

  “선생님, 아이들 잘 모르시죠? 제가 아이들을 소개해 줄게요. 얘하고 얘는 장난꾸러기라 같이 앉히면 안 되고요, 얘는 너무 조용해서 친구가 없어요. 얘는 오락부장 감이고요, 얘는 그림을 잘 그려요. 그리고 얘는......”

  전 담임의 갑작스런 사직으로 2학기부터 담임을 맡게 된 학급의 부반장이었던 영신이는, 교무실에 직접 찾아와 내게 익숙지 않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소개시켜 줄 만큼 싹싹하고 사려가 깊었다. 

  “선생님, 이번 달에는 여러 행사가 있어요. OOO 가 필요한데요. 1.2.3번은 제가 준비할 테니 4.5.6번은 선생님이 준비해 주세요.”

  매달 초, 그 달에 있는 행사 및 주요 사항을 적어 와서 의논하는 영신이는 중학교 1학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획력과 추진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공부는 물론 노래와 운동도 잘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수준급으로 다루는 등 못 하는 것이 없는 재주꾼이었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느 해와 같이 새해 첫 날, 미국에 있는 내게 종찬이가 안부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이어영신이 특유의 애교가 듬뿍 담긴 새해 인사가 들려온다. 영신이 집이란다. 저녁 때 어른들께 인사 왔다가 전화를 한 것이다. 대학 선후배로 지내다가 서로 사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날 인사를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는 몰랐다.

  “OO 씨, 종찬이는 잘 알 테고. 내가 똑똑하고 야무지고 싹싹하다고 말한 영신이 있지? 아무래도 그 둘이 결혼을 할 것 같아. 내가 남편감 1위로 꼽는 제자와, 아내감 1위로 꼽는 제자가 결혼을 하게 되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아? 둘이 너무 잘 어울려. ‘환상의 짝’이 될 거야. 옛날에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정말 신이 나서 남편한테 자랑하듯이 얘기를 했다. 마치 큰 보석 두 덩이를 얻은 양 뿌듯하고 흥분된 마음에 한참을 떠들었고, 그만큼 두 애제자가 같이 꾸려갈 가정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지금부터 신랑 김종찬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 신랑, 입장!”

  신랑 종찬이가 당당히 입장을 한다.
  따안 딴 따단 ♪♫♪ 따안 딴 따단 ♪♫♪
  웨딩 마치가 울리며 신부가 수줍게 입장을 한다.
  어여쁜 신부 얼굴 위로 야무진 영신이 얼굴이 겹쳐진다......

  영신이와 종찬이가 결혼을 했으면 나의 이야기에 소설 같은 재미가 더해졌으련만, 안타깝게도 종찬이와 영신이는 그 후 헤어져 ‘각자의 짝’을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의 계절 5월을 앞둔 이즈음, ‘애제자 부부’의 불발이 요즘도 많이 아쉽지만, 종찬이는 종찬이대로 영신이는 영신이대로 ‘각자’ 환상의 짝을 만나 잘 살고 있으니 그들의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봄꽃처럼 가득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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