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5. ‘물새’와 함께 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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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5. ‘물새’와 함께 한 즐거움
  • 김태진
  • 승인 2015.03.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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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가을엔 ‘중창 대회’가 있다. 합창 대회보다 수가 훨씬 적고 노래를 잘하는 학생들만으로 구성되기에 연습시키기가 편하다. 당시 우리 반 여학생 중에 노래를 잘하는 학생이 많았기에 곡을 잘 정하고 성실히 연습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곡목은 ‘물새’라는 우리 가곡으로 정했다.

  “머언 먼… 하늘가에 외면할 수 없는 저 물새
   어쩌면 물결같이 출렁이고 어쩌면 구름같이 떠다니고
   노을 빛 휘어져 내린 끝 물결 위에 비끼어 나는 한 점 생명이여.

   머언 먼… 바다 끝에 외면할 수 없는 저 물새
   어쩌면 잔별같이 출렁이고 어쩌면 꽃잎같이 떠다니고
   어느 날부터 일까 그 움직임이 수줍어 나는 한 점 생명이여 ”(김규환 작곡/ 유성윤 시)

  ‘님이 오시는지’, ‘남촌’ 등 유명한 가곡을 작곡한 김규환 선생님의 곡으로, 아름다운 시에 서정적인 곡이 얹어진 정말 멋진 곡이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부르기에는 좀 어려운 곡이지만 아이들 실력과 열성을 믿고 여성 3중창으로 도전을 해보았다. 다행이 학생들도 이 곡을 좋아하였고 곡 해석 능력도 뛰어나 아름다운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중창단에 뽑힌 학생 중에 문희도 있다. 문희는 1학년 때까지는 성적이 좋았는데,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텅 빈 집에 혼자 있기 싫어하며, 점점 집 밖으로 나돌게 되고 공부도 등한시하게 되면서 나에게 걱정을 안겨주던 학생이었다. 그런 문희 집에 피아노가 있었기에 중창 연습을 문희 집에서 자주 했다. 학교 음악실 확보가 힘든 상태에서 문희 집은 편안한 연습실 역할을 하며, 연습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러 조건이 잘 맞아 들어가니 서로 마음을 맞추며 신나게 연습했고 그만큼 실력도 일취월장하였다. 우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연습한 곡을 녹음해서 듣고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고쳐 나가며 완벽에 완벽을 기하였다.

  내일이 중창대회 날이다. 공교롭게 아침에 허리를 삐끗해서 간신히 학교에 갔고,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중창 연습은 봐주어야지... 아픈 허리를 이끌고 간식거리를 사서 문희 집으로 갔다. 아이들 눈이 동그래진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자기들을 격려해 주기 위해 온 선생님이 못내 고마운 눈치다.
   녹음해 놓은 것을 같이 듣고 최종 점검을 하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千命)’이라는 거창한 문구를 떠올렸다. 아이들 눈빛에는 최선을 다한 후의 만족감과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완벽했다! 정말 완벽했다!! 아름다운 곡을 완벽하게 부르니 금상첨화이다.

  드디어 심사 발표다. 수상은 학년 별로 동상, 은상, 금상을 주고 3개 학년을 통틀어 대상을 준다. 학년 별로 수상을 한다. 2학년 순서다. 그런데... 우리 반이 불리지를 않았다. 내심 ‘금상’을 기대한 나와 아이들은 모두 실망한 눈치다. 하나뿐인 ‘대상’은 졸업반인 3학년에게 주는 것이 관례이기에 ‘대상’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너무 잘해서 안 주었나???’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해 줄지 고민하고 있는데...
  “대상!!... 2학년 5반, 물새!”
  “와아~~~~”
  뜻 밖에 우리 반 이름이 불리자 반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함성을 질렀다. 유례가 없었던 2학년의 대상 수상에 박수 소리는 더욱 뜨거웠고, 상을 받으러 달려가는 여학생들 모습 뒤로 최선을 다한 뒤에 얻은 환희의 빛이 퍼지고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 오니 내 책상에 편지가 놓여 있다.
  “선생님, 문희예요... 그동안 열심히 공부 안하고 친구들하고 밤늦게까지 놀기만 했었어요. 왜냐하면 노는 것이 공부보다 즐거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진짜 즐거운 것’이 무엇인 가를 중창대회를 준비하면서 알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즐거움’은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 가슴에 남아 저를 끊임없이 기쁘게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더욱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진짜 즐거움’을 늘 맛보도록 생활하겠습니다. 이런 소중한 것을 느끼게 해 준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문희를 안듯이 편지를 꼬옥 껴안았다.

  " ...... 선생님, 이곳은 남아프리카입니다. 앞으로는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리라는 생각에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 외롭게 지내고 있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3년 전, 선생님과 같이 열심히 준비한 중창대회 생각이 납니다. 그 때 주셨던 무언의 가르침은 제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물새와 함께 했던 즐거움’을 되새기며 저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2 때 ‘남아프리카’로 유학 간 문희와 지금은 연락이 끊겨 소식을 모르지만 어디서든 최선을 다한 후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유난히 뽀얗던 문희의 피부같이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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