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보른 아리랑파크 준비위, 박정희 대통령 방독 50주년 기념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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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보른 아리랑파크 준비위, 박정희 대통령 방독 50주년 기념식 개최
  • 홍미은 기자
  • 승인 2014.12.1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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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광부가 처음 배치된 딘스라켄 시 Lohberg 광산 독신자기숙사 기념 홀에서 열려

▲ 함보른 아리랑파크 독일 준비위원들은 박정희 대통령 독일 국빈방문 50주년을 기념해 역사 현장 지정 현판식을 가졌다

함보른 아리랑파크 독일 준비위원(김용길 백진건 김용운)들은 박정희 대통령 독일 국빈방문 50주년을 기해 역사 현장 지정 현판식을 10일 오전 10시 50분, 뒤스부르크(Duisburg) 공회당에서 유제헌 재독 한인 총연합회장, 노미자 재독 한인 간호사회 회장, Peter Kropf 루르 광산 부사장, 김인회 캄프-린트포르트(Kamp-Lintfort) 한인회장, 이행명 딘스라켄(Dinslaken) 한인회장, 오벨하우젠(Oberhausen) 한인회장 등 40여 명의 관계자와 함께 열었다.

이어진 박정희 대통령 방독 50주년 기념식은 1963년 12월 파독된 광부들이 처음 배치된 딘스라켄 시 Lohberg 광산 독신자기숙사(Ledigenheim) 기념 홀에서 130여 명이 모여 문화행사와 함께 진행했다. Dinslaken Lohberg 광산은 1963년 1차 광부가 배치된 광산이기도 하지만 1999년 8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기념식은 백진건 위원의 사회로 국민의례와 함께 시작됐다. 이형모 함보른 아리랑공원조성 준비위원회 위원장 기념사는 김용운 위원이 대독했으며, 김용길 위원에 이어 딘스라켄 시 시장 Michael Heidinger 박사, 유제헌 재독 한인 총 연합회장, RAG(Ruhrkohle Aktien Gesellschaft) 광산 Juergen Kroker 사장, 노미자 재독한인 간호사회 회장이 축사했다.

특히 이날 문화 행사에 한국을 사랑하는 독일인 70여 명이 참석하여 50년 전의 한국인의 모습을 전하고, 독일인이 보는 현재의 한국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며,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독일인들이 한국 김밥을 직접 말아보는 체험도 있었다. 딘스라켄 시 시장과 광산 사장단도 앞치마를 입고 김밥을 직접 말아 보았다.

끝으로 함본 아리랑 공원 조성이 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참석한 교민과 독일인들이 하나가 되어 합창했으며, 독일 청년들은 무대에 올라 그동안 배웠던 아리랑을 불렀다. 이어 독일 대표 선수들의 태권도 시범도 있었다.


┃ 딘스라켄 시장 Michael Heidinger박사 축사

▲ Dinslaken 시장
지난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인의 독일 이주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딘스라켄보다 더 좋은 지역이 있을까요?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방문 50주년 문화 행사가 딘스라켄에서 열린다고 들었을 때 저는, 여러분들 중에도 고향을 떠나 처음 도착한 제2의 고향이 노베르그 독신자 기숙사가 아니었겠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Lohberg 광산에서 첫 지하 막장 교대 근무를 기다렸을 거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확히 51년 전 젊고 건장한 한국의 광부가 처음 독일에 왔습니다. 1963년 12월 16일 계약이 체결되고 21일이었습니다.  60년대 한국과 독일은 아주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언어, 글자, 종교, 문화 등등 모든 것이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같은 것이 있었다면 분단된 국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서로 분리된 우리와 같이 한국도 숨쉬기조차 어렵게 긴장이 고조되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공통분모가 바로 독일과 한국이 경제협력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고 여러분이 독일에 오고 나서 1년 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국빈 방문하게 된 이유일 것입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한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독일문화에 아주 잘 적응하여 이방인 생활에서 어느 민족보다 빨리 딘스라켄을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 생활했다 여겨집니다.

딘스라켄은 여러분들 즉 외국 노동자들에게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많은 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의 명성은 아직까지 영웅적이며, 부모가 2세들에게 갖는 교육열은 독일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한국 학생들은 목적을 향해 나가는 투지력은 기억될 만하고 독일인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존경하는 한국의 귀빈 여러분, 박정희 대통령과 뤼뷰케 대통령이 Duisburg을 함께 방문한 50년 후 여러분은 독일이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과 독일이 공동의 역사를 만들어 기억해 가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기회가 딘스라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에 아주 기쁩니다.

여러분은 오늘 역사적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역사현장 지정 현판식을 가졌습니다. 나는 Duisburg 시의 공식적인 허가와 함께 문제가 신속히 해결되리라 믿기 때문에 여러분의 대통령과 파독 광부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지정된 장소에 현판이 세워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모든 게 어렵게 여겨지더라도 50년 전 당시 독신자 기숙사를 기억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거라 나는 믿습니다.

 ┃ RAG 광산 Juergen Kroker 사장 축사

▲ RAG 사장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존경하는 시장 Heidinger 박사님.  여러분의 초대에 감사드리며, 여러분과 오늘 문화행사를 같이 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오늘 옛 한국 광부들과 독일 광부들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행운의 인사를 드립니다.

1963년 한국과 경협체결은 많은 사람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8,000여 명의 한국 광부들이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로 왔습니다.  숫자에 대해서 독일 문회원에서는 10,000명이 넘을 거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잠시 1963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당시 세상은 냉전의 시대였습니다.  분단된 독일은 동서가 대치하는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독일의 눈부신 고속 경제 성장은 완전 고용시대를 만들었으며, 따라서 노동력을 여러 곳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미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터키 그리고 일본과도 경협을 체결한 후 독일은 광부들을 독일로 불러왔습니다.

60년대 초 독일은 140여 개의 광산에 400,000명의 근로자가 있었습니다. 50년대 말부터 독일 탄광업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여겼지만 루르지역 광산은 여러 가지 이유로(예를 들면, 노동력이 다른 산업으로 이동한다는 염려, 근로자 노령화 등) 수십 년에 걸쳐 외국의 노동력을 필요에 의해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독일 연방정부는 외교 및 경제정책 일환으로 한국정부와  ‘독일광산 한국광부 기간제 지원취업’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247명의 젊고 건강한 체력의 한국 광부가 1963년 12월 21일 처음으로 독일로 왔습니다.  지원자 연령은 20세 이상 35세 이하로 제한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소 1년 이상의 광산 지하근무 경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이 조건을 충족시킨 경우는 많지 않았다 생각됩니다. 대다수가 대학생과 사무직 근로자로 고학력 근로자가 되어 지하 막장 근무에는 사실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독일 지하 광산에서 일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계약상 작업장은 지하막장 일이었습니다. 근무기간은 최장 3년이었고 근로계약은 사전에 정해진 사용자와 체결했습니다. 한국 근로자들은 스스로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이런 조건하에 한국 광부들의 취업 프로그램은 1973년 연방정부에 의해 기간제 지원취업 해약이 있은 이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2004년까지 한국광부로서 일하신 광부가 연금에 들어가면서 마지막 한국 광부로 기록되었습니다. 지금도 동남아에서 들어온 근로자가 지하 막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 독일 에너지 공급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2014년 말에는 RAG 광산에 10.000여 명의 근로자만이 남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들은 연간 약 8백만 톤의 석탄을 채굴하고 있습니다.

2018년 말로 독일은 더 이상 석탄생산을 하지 않습니다. 석탄 채굴 마지막 광산으로 Prosper-Haniel과 Ibbenbüren GmbH 광산이 될 것입니다.

이는 2007년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이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일명 재심약관 삭제로 더 이상 논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석탄 산업은 수년 전부터 사양 산업으로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4년 내로 모든 석탄채굴을 마감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비해 2018년 말까지 채탄 감량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 필요한 사전대비 조치에 직면해 있습니다. 또한, 가능한 경제성 및 석탄을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마지막 시간까지 공급에 차질이 없어야 합니다.

2018년 말로 석탄 생산이 끝난다고 해서 RAG 광산 업무의 끝은 아닙니다. 지속적이고 책임 있는 자세 역시 석탄생산이 끝난 후에도 매우 중요한 광부들의 미덕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쌓아온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고 경제 환경적 견해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폐광촌의 친환경적 개선과 안전은 지역 주민의 요구에 부응한 신경제 구역으로써 활용 역시 당연한 RAG광산의 임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2019년부터 폐광 지역 잔재 오염 처리를 위한 조직을 만들고, 필요한 재정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업무가 광산 광구 제거 작업입니다. 즉 광산 지역 재활, 낡은 수직 갱도 철거와 붕괴된 지반 안전성 확보, 광산 인근지역 시설물 재활 등 소위 광산회사 평생업무에 해당됩니다. 광산 평생업무 수행 충족은 폐광 배수 유지에서부터 지하수 청결성 유지, 해안 간척지 조성에까지 이릅니다. 이러한 평생업무 수행을 위해 RAG재단이 설립되어 재정을 확보하고 RAG회사가 운영할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2019년부터 석탄 생산이 더 이상 없지만 독일은 석탄자원을 확보하고 있고 채굴할 수 있는 능력을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이는 역시 훗날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현재 RAG의 사업 참여 분야는 많이 확대되어 있습니다. 이에 해당된 사업으로 Mining Solutions GmbH(마이닝 솔루션 주주회사)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 독일의 중고 광산 장비를 보수하여 국제 시장에 판매하고 여기에 사용된 고도의 광산 Know-how을 상품화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에는 이미 외국에 있는 많은 광산과 사업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사업부문 역시 지속적으로 넓혀 갈 것입니다. 지난해에 동유럽 국가, 터키 그리고 중국과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RAG 미래 주 사업부문은 2018년 이후에도 역시 국내 석탄시장에 석탄을 외국에서 들여와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업분야는 RAG 부동산 회사입니다. 폐광지역의 넓은 대지와 건물을 미래 지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을 구상 개발하여 폐광 지역에 중요한 산업 환경변화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속하는 사업으로 에너지 전환을 들 수 있습니다. 예로 풍력 발전, 폐광 지역 대지 위에 거대한 태양에너지 단지 조성뿐만 아니고, 광산 지하가스, 지열이나 바이오매스의 지역 효용비율을 높여 개발된 지역에 공급하는 사업입니다.

따라서 광산 전성시대 이후에 대한 계획으로, RAG 가지고 있는 기술적 Know-how, 독일의 광산 역사, 광산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가능한 원형 그대로 유지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유산 속에는 한국 광부가 독일 광산에 투입된 사실도 속해 있습니다.

독일이 광부를 모집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광부 모집은 젊은 광부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독일에 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광부는 독일에 오기 위해 눈에 익은 고향을 떠났고, 가족 친지들과 이별을 하였고, 이국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접하며 각자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개인의 역사를 각자 이야기할 수 있도록 된 것입니다. 수많은 여러분의 동료가 조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백진건 씨와 같은 소수가 독일에 살게 되었습니다. 백진건 씨는 독일 인생 역사를 ‘Zechenkinder 탄갱 어린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귀국 5일 전에 부인을 사귀고 독일에 남아, 탄갱이 제2의 고향이 되었다고 합니다.

광산이 여러분의 기억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얼마 후 여러분이 소수의 광산근로자로 독일에 남아 백 년 전통의 독일광산의 산 증인이 된다면, 어쩌면 지하에서 일했던 시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지난달 우리는 베를린 장벽붕괴 2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축하했습니다. 한국 역시 짧은 시간 안에 평화 통일의 길이 열려 분단의 슬픔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 유제헌 재독 한인 총연합회장 축사

▲ 유제헌(왼쪽) 재독한인 총연합회 회장과 노미자(왼쪽 두번째) 재독한인간호사회 회장, 하이딩거 딘스라켄 시장(오른쪽), 크로커 RAG사장(오른쪽 두번째)
존경하는 Heidinger시장님, Kroker 사장님, 그리고 사랑하는 독일 친구들과 동포 여러분. 재독 한인 총연합회장으로서 여러분에게 인사드리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함께 50년 전을 되돌아보면 도전의 시간이었고 많은 것이 그동안 변하였습니다.

1963년 한국광부가 처음 독일에 왔습니다. 당시 독일은 광부뿐만 아니고, 간호사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한국이 부족한 독일의 노동력을 채워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못하고 독일에 감사하게 여기는 것은 서방의 많은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경제개발 프로그램을 위해 상업차관으로 도와주었던 유일한 우방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964년 한독 경제 우호협정에 기초하여 12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당시 독일 뤼브케 대통령은 박 대통령을 친구의 예로 맞이했으며, 3년 후 뤼브케 대통령 역시 한국을 방문하여 양국의 우호관계는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박 대통령 방독 50주년을 맞아, 오늘의 경제 10대 대국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여한 그의 지도력을 기억하고 독일의 경제협력에 감사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독일이 25년 전 이룬 통일의 기적을 바라보며 우리들에게도 독일과 같은 통일의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 노미자 재독 한인 간호사회 회장 축사

존경하는 시장 사장 귀빈 여러분. 오늘 50년 전의 역사의 현장인 함보른 공회당과 노베르그 광산에서 뜻깊은 기념식에 재독 한인 간호사 대표로 축사하게 됨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딘스라켄 시장님을 포함한 여러 귀빈을 모시고 50년 전 파독광부와 박 대통령이 남긴 역사의 현장을 되새기고,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의 연설’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기억되는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바라옵기는 하루속히 이곳이 실질적인 동포들의 유익한 역사의 장소로 지정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난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만나,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의 빈국이던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으로 바뀌게 된 것은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땀방울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감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50년 전의 눈물이 고통과 슬픔의 눈물이었다면 오늘의 눈물은 환희와 기쁨의 눈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석하신 귀빈 여러분,  2014년도 저물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2015년 강건하고 다복한 한해 맞이하시기를 기원하며 축사에 갈음합니다.

▼ 박정희 대통령 독일 국빈방문 50주년 기념식

▲ Kropf 광산 부사장의 축사
▲ Dinslaken 행사장에 있는 광산막장
▲ 독일 청년들이 아리랑을 선창
▲ 김밥말이 체험 중인 재독한인 총연합회 회장, 딘스라켄 시장, 광산 사장, 광산 부사장
▲ 독일 대표 태권도 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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