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미주 한인이 ‘동해 병기’ 캠페인을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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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미주 한인이 ‘동해 병기’ 캠페인을 시작했을까?
  • 홍미은 기자
  • 승인 2014.11.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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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해 병기 법안 통과의 주역 '미주 한인의 목소리' 피터 김 회장

▲ 동해 병기 의무화 법안 통과를 이끌어낸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 피터 김(가운데) 회장이 지난 2월 6일, 하원 전체 회의 통과 후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2014/2/6)

미국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 병기’ 의무화 법안 통과를 이끌어낸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 피터 김(55. 한국명 김영길) 회장이 동해 병기 운동에 뛰어든 결정적인 계기는 자녀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에게 동해를 가리키며 어디냐고 물으니 “Sea of Japan(일본해)”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미 학교에서 일본해로 표기된 교과서로 공부해온 것이다. 김 회장은 아들에게 “여기가 East sea of Korea(동해)지 어떻게 Sea of Japan이냐”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인사회의 요구로 2007년 버지니아주 의회에 '동해 병기법안'이 상정됐지만, 일본의 로비에 가로막혀 법안 통과가 좌절되면서 한인사회는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김 회장은 ‘아들 사건’을 계기로 당장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 2012년 3월 22일부터 4월 21일까지 백악관 청원사이트 '위 더 피플'을 통해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동해-교과서에 왜곡된 역사’라는 제목의 청원서에는 △1929년, 잔혹한 침략전쟁과 함께 일본은 강제로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었습니다 △한국은 1945년에 해방되었지만, 일본은 동해를 아직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을 공격했던 일본정부에 의해 왜곡 표기되었던 일본해란 이름을 우리는 학교에서 아직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올바른 역사를 배울 권리가 있습니다 등의 내용을 담았고 102,043명이 청원서에 서명하며 호응했다.

버지니아 한인회를 중심으로 미주 한인 단체와 개인 온라인 서명운동도 시작됐다. 하지만 SNS를 통한 일본의 강력한 방해 공작도 전개됐다. 개인 페이스북을 해킹하고, 대한민국 전체를 공산주의로 모는 일본의 백악관 청원 신청도 있었다. 동해 병기 문제가 커지자 2012년 4월 29일에 일본 노다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했고, 같은 해 6월 29일 ‘일본해’를 인정한다는 미 국무부의 공식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 눈치를 본 부적절한 공식 답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한인 단체는 그저 유감만 표명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무부 답변에 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전화, 이메일, 공문으로 연락하기 시작했죠. 그러나 모든 회신에 침묵했습니다. 102,043명의 한인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한 거죠. 백악관에 2차 청원서를 넣기로 하고 초강수로 현 정부와 정면 대결에 나섰습니다.”

2012년 8월 10일 2차 청원서를 등록했다. 워싱톤 지역 한인 언론사의 적극 홍보와 지원을 힘입어 대대적인 2차 청원서 서명 운동을 전개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일인 11월 6일을 앞둔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경쟁자인 공화당 후보 밋 람니 지지자 페이스북에 300여 개의 서명 동참 글을 올렸고, 드디어 백악관을 움직이게 했다. 청원 신청 후 3일 만에 백악관 참모에게 연락이 왔다. 만나서 대화하자는 제안을 받아낸 것이다.

백악관을 움직인 청원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2년 3월 22일, 나는(피터 김) 미국 내 매우 심각한 교육 문제를 발견하고, 백악관 청원서를 신청했다. 이 청원서에 102,043명이 동참해 서명했다. 2012년 6월 29일, 미 국무부가 절대적으로 부적절하고 불만족스러운 답변을 발표했다. 그 후 백악관은 공식 답변에 항의하는 이메일, 서신, 전화통화를 완전히 무시했다. 결국 102,043명의 서명자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무시당해왔다. 그런데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활동을 선전하는 이메일을 나에게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오바마 지지자들에게도 많은 이메일을 받는다. 왜 당신은 나의 이메일 주소를 당신의 지지자들에게 공개했는가? 백악관은 청원서 시스템을 남용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고 ‘동해표기’ 청원서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하라.”

2차 청원서 등록 6일만인 8월 16일, 백악관 참모와 교육부 장관 상임 자문위원과 면담을 진행했고, ‘동해 병기’ 청원에 대한 미 교육부의 검토와 답변을 요구했다. 공식 답변은 대선이 끝난 11월 8일에 들을 수 있었다. 교과서 내용 수정 권한은 주 정부와 지방 정부에 있고, 연방 정부는 직접 개입할 수 없으니 주 정부 학교 관계자를 접촉하라는 상세한 지침이었다. 결국 교과서 수정을 위해서는 정치인과 교육 관계자 접촉은 필수였다.

▲지난 9월 26일 재외동포신문사를 방문한 피터 김 회장
피터 김 회장은 버지니아 동해 병기 법안을 위해 2012년 12월 19일 사단법인 미주 한인의 목소리를 설립했다. △미 교과서 동해 병기 확정 △미 정부의 공식 입장 변화 △2017년 IHO(국제수로기구) 동해 병기 통과를 목표로 세부 전략과 계획을 수립했지만, 2013년 3월에는 예산 확보 문제로 캠페인 좌절 위기도 겪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4년간 최소 40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전략과 계획을 수정했다.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 교과서 수정을 목표로 삼고 메릴랜드주를 선 공략했다. 일본의 방해를 피한 연막작전이었다. 메릴랜드주를 이슈화시키면서 버지니아주 법안 통과를 위해 은밀하게 정치인들을 설득했다.

김 회장은 한인들을 하나로 결집하고 49개 단체 이름으로 동해 병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140명의 상ㆍ하원 의원에게 전화, 이메일, 미팅 등으로 설득하는 한편, 선거 모금 행사에 참여해 기부금을 전달하고 법안 통과를 호소했다. 법안 지지 의원이 늘어갔고, 주지사 후보에게 동해 병기 법안을 지지한다는 공략을 확보하기도 했다. 4명의 상원과 20명의 하원의원에게 공동 상정 약속을 받아내자 다급해진 것은 일본이었다.

2013년 12월 26일에 주미 일본 대사가 메컬리프 주지사 당선인에게 보낸 문서는 협박편지에 가깝다. 동해 병기 법안이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통과되면 일본기업들의 10억불 투자(13,000 일자리 창출)를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노골적인 협박과 함께 법안을 부결시켜달라는 부탁이 적혀있었다. 이 사실을 워싱턴 포스트 기사를 통해 알게 된 한인들과 공화당 의원들은 경악했지만, 결국 한인들의 표가 절실했던 공화당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데 도움을 줬다.

동해 병기 법안 통과는 이후에도 드라마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상원 법안 교차 심의에서 루커스 상원 의원에 의해 폐기되어 긴장감을 더했고, 2014년 2월 26일 하원 교육위 대위원 회의에서 19대 4로 통과, 3월 5일 하원 전체 회의에서 82대 16으로 통과하면서 희망도 맛봤다. 3월 6일에는 하원 동해 병기 법안이 주지사에게 전달됐다. 마지막으로 테리 메컬리프 주지사가 동해 병기 법안에 서명하는 것만 남아있었다. 버지니아 한인들은 긴장감 속에 기다렸다. 일본의 막강한 로비를 무시할 수 없었고, 주지사 법안 수정안 제출 시도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3월 31일, 주지사는 결국 법안에 서명했고 25일 동안 초조함 속에서 기다린 한인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2014년 7월 1일부터 동해 병기 법안(SB2)이 버지니아주 법으로 발효됐다. 앞으로 버지니아주 공립학교가 채택하는 모든 교과서에는 무조건 ‘동해 병기’가 되어 있도록 법제화됐다. 버지니아주 교육 정책을 따르는 남부 7개 주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대형 출판사는 모든 교과서를 동해 병기로 수정했다.

동해 병기 법안 통과는 한인 2, 3세들에게 하나로 결집하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고, 동해뿐 아니라 다른 이슈들도 얼마든지 통과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했다. 김 회장은 버지니아주를 시작으로 연방의회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미주 250만의 한인들이 하나로 결집해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년 미 연방 의회에서 동해 병기 결의안이 통과되면 그다음은 2016년 11월 미국 대선이다. 대통령 후보들에게 2017년 IHO 회의에서 동해 병기 안을 지지한다는 공약을 받아내는 것이 목표다.

“연방 상ㆍ하원 후보들로부터 결의안 상정 공약을 받아내기 위해 도입한 ‘후보 공식지지 시스템’은 획기적인 한인 정치력 신장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2016년 대선 때 동해 병기 지지공약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한인들의 정치력은 더욱 성장할 것입니다. 또한, 일본을 상대로 잃어버린 동해 바다 이름을 되찾기 위해 모든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버지니아주 ‘동해 병기’ 의무화 법안 통과 과정 

▲ 마스덴 상원 의원 기자 회견(2013/5/30)
▲ 팀 휴고 하원 의원: 기자 회견(2013/6/30)
▲ 상원 교육 대위원회 심의 과정(2014/1/13)
▲ 상원 교육 대위원회 심의 과정(2014/1/16)
▲ 상원 전체 회의통과(2014/1/23)
▲상원 전체 회의 통과 후 기뻐하는 한인들(2014/1/23)
▲하원 교육 대위원회 한인 입장 발표(2014/2/3)
▲ 하원 전체 회의 심의 및 표결(2014/2/6)
▲ 하원 전체 회의 통과: 기자 회견(2014/2/6)
▲ 주지사 동해 병기 법안 서명(2014/3/31)
▲ 동해 탈환 기념식(201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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