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캄보디아 KBS 월드 채널은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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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캄보디아 KBS 월드 채널은 먹통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9.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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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저작권 문제 삼아 해외시청자 볼 권리 막아

 KBS 월드 채널은 지난 2003년 첫 방송을 시작한 후 전 세계 100개국, 시청 가구수만 5,400만 가구(2014년 5월 현재)가 시청하고 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중국어 자막 그 외에 지역별로 일본어, 스페인어, 인니-말레이시아어까지 제공하는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해외 채널 방송이다. 영국 BBC나 일본 NHK 못지않은 고품질의 방송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정이다.

또한, 고국의 향수를 못 잊는 700만 재외동포들에게는 둘도 없는 벗이자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더욱이 실시간으로 고국의 9시 뉴스를 시청할 수 있어 한국소식과 정보에 목마른 해외 거주 시청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단비와도 같다.

그뿐 아니다. 한국의 인기드라마나 ‘해피 투게더’, ‘1박 2일’ 같은 오락프로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볼 수 있어 해외 한류팬들의 반응도 뜨겁다. 요즘 한국드라마와 가요 등 한국방송을 즐기는 외국인 애청자들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심지어 한국 드라마 보는 재미에 푹 빠져 결말이 궁금하다며, 물어보는 현지인 친구들도 주변에 여럿 있을 정도다.

그런데 유독 캄보디아 KBS 월드 채널에 대해 주변의 해외동포시청자들 뿐만 아니라, 한류팬을 자청하는 외국인 시청자들도 종종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그럼, 과연 그 불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요즘 고국에서는 인천아시안게임이 한창 열리고 있다. 그런데, 메달 소식이 궁금해 KBS 9시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켜면, 스포츠 관련소식이 나올 때 마다 어김없이 화면이 정지되고 안내문구가 뜬다. 그리고 정지된 화면에는 이런 내용의 문구가 뜬다.

“저작권 관계로 시청할 수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

해외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한국방송을 애청하는 주변 외국인들 대부분은 이런 뜬금없는 정지화면에 놀라거나, 인상을 찌푸리곤 한다. 갑자기 정지된 화면에 아나운서의 목소리만 들리니, 한류팬 시청자들 중에는 혹시 TV 화면에 문제가 있는 줄로 착각해 리모컨을 찾거나, 수신 안테나를 만지작거리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종종 일어나곤 한다.

결국, 뒤늦게 안내 문구를 읽고 난 외국인 시청자들은 대부분 쓴웃음을 짓는다. 일부는 내용을 다 읽고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보인다. 참을성이 적거나 이미 내용을 짐작한 눈치 빠른 일부 외국인 시청자들은 실망스런 눈치로 다른 채널로 재빨리 돌려버린다. 함께 시청하던 기자는 늘 그럴 때 마다 괜스레 뒤통수가 따가워진다.

요즘 2014 아시안게임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다보니, 9시 뉴스 헤드라인도 금메달 소식 등 스포츠관련 뉴스가 독차지할 때도 많다. 그런 날은 한 시간 가량 뉴스시간 중 무려 20분 가까이 정지화면만 나온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만 들리니 답답해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함께 보던 캄보디아인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OECD 선진국가라고 늘 ‘자화자찬’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고작 뉴스시간에 잠시 내보내는 화면자료조차 저작권료를 감당 못해 십 여분 넘게 정지화면만 송출하는 게 전파낭비가 아니냐?” 속으로 비웃는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럽기까지조차 하다.

고국에 사는 시청자들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지만, 솔직히 외국에서 오래 산 대부분의 해외동포 시청자들은 이런 황당한 일을 수도 없이 경험해왔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때는 물론이고, 런던 올림픽도 그랬다. 그 순간 TV는 라디오로 변한다. 이미 웬만한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풍경이다.

물론, KBS 방송사의 어려운 재정 상태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비싼 방송저작권료 때문에 해외방송채널로 송출하지 못한다니 할 말이 없다 “시청료도 내지 않고 공짜로 보는데 무슨 할 말이 그리 있냐?” 묻는다면 이에 대해서도 더 더욱 할 말은 없다. 일부 시청자들은 아무리 답답해도 눈뜬장님처럼 화면만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적어도 전 세계 다른 나라 어느 해외 채널 어느 방송국도 KBS 해외채널처럼 저작권 운운하며, 정지화면을 10분 넘게 방송 아나운서의 목소리만 내보내는 경우는 없다. 해외방송에 맞게 다른 프로그램으로 재편집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느 나라 방송도 방송사고가 아닌 이상, 결코 10여분 넘게 목소리만 내보내는 그런 먹통방송(?)을 내보지는 않는다.

중국 CCTV이나 일본의 NHK, 영국 BBC는 물론이고, 독일 DW TV, 아랍의 알자지라 같은 어느 해외송출 방송에서도 그런 일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동남아의 태국과 말레이시아 해외채널방송도 마찬가지다.

KBS가 방송저작권료 탓만을 돌리지만, 심지어 일부 해외 송출 채널들은 정규뉴스시간에 국제 경기 하이라이트뿐만 아니라, 중요한 국제스포츠경기나 이벤트의 경우, 비싼 방송저작권료를 감당하면서까지, 해외시청자들에게 생방송 서비스로 제공할 때도 많다.

그런 점에서, 짧게는 수분에서 길게는 10여 분 넘게 정지화면에 아나운서의 목소리만 내보내는 KBS 해외 채널의 처사는 당장의 불편을 넘어서 전파낭비인 동시에 해외시청자들의 권리마저 박탈하고 우롱하는 셈이다.

KBS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방송국이다. 일편, “수신료의 가치 감동으로 전한다”는 방송사 캐치프레이즈가 방송사의 어려운 재정 상태를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처럼 해외시청자들의 관심도 높고, 더욱이 우리나라 안방에서 열리는 국제스포츠 축제마저 저작권료를 이유로 삼아 정규뉴스방송 시간에 내보내는 10여분 안팎의 하이라이트조차 반쪽자리 ‘먹통방송(?)’을 보내는 것은 좀체 이해하기 힘들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이는 자칫, 해외시청자의 시각에서 보면, 단순히 저작권료 등 비용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의 문제로 비쳐질 수 있다.

이와 별개로, KBS 방송사측은 전 세계 수천만 명에 이르는 한류팬 시청자들이 우리나라의 방송수준과 한국의 위상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과 평가를 하게 될 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방송국과의 조율과 협의를 통해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등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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