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국의 희망, 재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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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의 희망, 재외동포
  • 이종훈
  • 승인 2004.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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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화의 기원이 그리스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8년에 그리스에 갔을 때 시간을 쪼개 박물관을 방문해보니, 그리스 초기 문화는 솔직히 대개의 고대 문화가 그러하듯이 어딘가 불완전해 보였다. 하지만, 후기의 그것에서는 그들이 그 시기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극치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아테네에 이어 로마도 가보았지만, 더 커지고 더 화려해진 것을 제외하곤 그리스 말기의 그것으로부터 더 나아가진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정작 당대의 그리스인은 아시아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 속에서 살았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솔직히 그리스 문화의 많은 부분은 아시아로부터 전파된 것이다. 그리스인이 즐겼고 이젠 전 유럽인이 즐기는 포도주도 실은 소아시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작은 도시국가로 이뤄진 나라 그리스가 서구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적극적으로 동양 문화를 받아들인 개방성이 자리 잡고 있다. 문화는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다. 흐르는 것을 받아 들여 자신의 것을 섞은 다음, 정제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어느 시점에 독특한 문화 양식이 만들어지는 그런 것이 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문화는 곧 퓨전의 산물인 셈이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자신의 치열했던 삶과 어울리지 않게 조국 대한민국이 군사대국도 경제대국도 아닌 문화강국이길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으로 나아가려면 작지만 문화적으로는 강했던 그리스를 벤치마킹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벤치마킹의 핵심은 퓨전이다. 곧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우리의 것을 섞어 정제하는 과정을 잘 해보자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애로가 있다. 우리 민족의 경우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그다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해외여행을 가서도 고추장과 김치 없이는 몇끼도 견디지 못하는 음식 습관의 보수성을 들 수 있다.

강대국 틈에서 작은 나라가 살아남으려 하다보니 내부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이러한 보수성으로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기 어렵다. 다른 민족에게 ‘잘 먹히는’ 당대 최고의 문화를 만드는 일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제 문화는 산업이다. 그냥 즐기는 것을 넘어서 경제적인 풍요도 보장하는 엄연한 사업이다.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전파할 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강대국 틈의 약소국이란 지정학적 지위도 뒤바꿔 생각하면 유리한 점이 적지 않다. 당대 최고의 문화 수준을 자랑하는 강대국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국가에는 우리만이 대규모 재외동포 집단을 가지고 있다. 이미 이들 재외동포는 문화를 보급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류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였고, 한류를 전파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역할을 극대화한다면 우리의 보수성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시간이 한층 단축시킬 수 있을 전망이다.

아테네의 저 유명한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올라보니 걷기가 힘들었다. 바닥의 울퉁불퉁한 돌 표면이 너무 많은 관광객이 다녀간 나머지 대리석 바닥처럼 미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삶이 여유로운 그리스에선 오후 시간에 업무를 볼 수가 없었다. 오침 시간이 있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결코 가난하지 않은 그들은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의 턱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조상 탓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재외동포를 매개로 하여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가공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우리 후손은 그들처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문화강국 대한민국, 한번 도전해 볼만한 꿈이 아닌가?

국정경영원 원장 이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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