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거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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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거 혁명
  • 미주한국일보
  • 승인 2003.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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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불과 1년 전까지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단순히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현장에서 지켜보고자 5일간 서울을 방문한 느낌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무현씨는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대통령은커녕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들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끌어보기 위해 도입되었던 국민경선 제도에 노무현씨를 좋아하는 수많은 네티즌들이 투표 참가를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대세론을 앞세운 이인제씨를 그가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노 후보의 인기가 떨어져 민주당 의원들이 흔들어대고 탈당하고 심지어 386세대의 기수라는 김민석 의원까지 탈당하자 노 후보를 지키자고 온라인으로 돈을 보내기 시작해서 노 후보를 살려낸 것도 인터넷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몽준씨의 지지철회 선언이 있은 후에 노 후보를 위해 밤새 동안 그리고 선거 당일까지 움직여서 그를 마침내 당선시킨 것이 인터넷이었다. 노 후보 지지자들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호소하고, 권영길 후보 지지자들에게 보수후보 이회창씨의 당선을 막는 것이 민주노동당 후보의 득표율을 높이는 것보다 더욱 급선무라고 주장한 것이 인터넷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인터넷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는 12월8일과 9일 양일에 걸친 특집을 통해 인터넷 매체의 문제점을 동아일보가 머리 기사로 실어 공격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선거가 끝난 직후에는 인터넷 매체의 대표격인 오마이 뉴스에서 인터넷 신문이 조중동을 이겼다고 선언했다.

인터넷은 하나의 매체로 물건을 담는 그릇처럼 담을 물건이 없으면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위력적인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담을 젊은 세대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6.25동란을 겪지 않았고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겪지 않은 그들은 스스로를 엽전이라 비하하는 선배 세대와 달리 한국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한 자부심은 월드컵 행사를 통해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이러한 그들은 짜증나게 하는 저질의 한국 정치가 향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원칙을 지키다 손해보는 “바보 노무현”에게서 그러한 희망을 찾았다.

노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DJ 정부에서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없었고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DJ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생긴 변화 위에서 그의 대통령 당선이 가능하였다. DJ 정부가 IT 산업에 역점을 두어 추진하였으므로 인터넷이 세계적 보급률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노무현의 당선을 위해 IT 산업을 추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남북정상 회담으로 상징되는 햇볕정책이 가져온 변화 위에서 노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다. 선거기간에 터져 나온 북한 핵개발이나 북한의 미사일 수출 같은 뉴스는 옛날 같으면 민주당 후보에게는 치명타를 먹이는 소위 북풍이었다. 그러나 북풍은 이번 선거에서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 후보의 당선은 “DJ 플러스 알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배태일
한국인권문제 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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