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보는 세상인식] 호주 한인 이민사는 과연 언제 나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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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보는 세상인식] 호주 한인 이민사는 과연 언제 나오게 될까?
  • 호주 동아닷컴
  • 승인 2004.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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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 사무총장을 맞이한 시드니한인회가 호주 한인 이민사(이하 이민사)의 집필을 알리자 Top 신문이 발행인의 편지를 통하여 ‘신중한 접근’을 경고하고 나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지상 토론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희망으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지만) 성급하나마 이 글을 쓴다. 편지에서도 지적된 대로 이민사 집필의 성공은 이에 대한 한인간 관심 표명과 토론과 홍보가 있어야 하고 이에 따른 합의 (컨센서스)가 선결 조건이다.

결론부터 말하라면 나는 현 한인사회의 실정으로 봐 이 사업은 완성 때까지 난항과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본다. 심지어 한인 사회의 한 고참 인사의 말을 빌리면, 이민사는 2세때에 가서야 제대로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내가 소극적이거나 딴지를 걸기 위해서가 아니다.

노만 빈센트 필 이후 ‘적극적 사고’(positive thinking)란 말이 유행처럼 쓰인다. 그러나 여기 한인사회 안에서 지적(知的) 프로젝트를 해내는 일은 다르다. 적극적 사고만으로는 안 된다.

주지하다시피 이민사의 필요성을 오래 역설하고 이를 위하여 백방으로 뛰어 다닌 인사는 지금은 고인이 된 신경선 전 한인회장이다. 나는 그 양반을 생각하면 미안한 게 많다. 1980년대 초부터 나에게 부탁한 일이 몇 개 있었으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이민사 사업을 위한 준비 모임을 갖겠다며 나와달라는 연락이 있었다. 예우로 나갔었다 (한인사회 백서 발간을 제안해 온 나는 이민사에 대하여는 특별한 열의가 없다. 백서는 한인사회의 현황과 장래 전망, 고국과 호주 정부에 대하여 건의할만한 사항들을 담은 한호지역문제연구소가 단독 또는 공동으로 내고 싶어 하는 종합 보고서라고 보면 된다).

캠시의 한 사무실에서 가진 이 모임에는 서로 구면인 10여명의 한인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 모임은 어떤 절차에 따른 것도 아니니 순전히 사적 모임인 셈이다.

그것은 문제 될게 없다. 누가 됐든 일단 발기라 할까 핵심 그룹이 생겨야 일이 될게 아닌가. 여기 대표성 없는 일부 인사들의 모임에서나마 오고 간 쟁점들을 종합해 보면 이 사업이 시작되면 시끄럽겠구나 하는 감이 들었다.

의미로 쓰는 역사

논의의 초점은 당연히 재원의 염출과 누가 어떤 내용으로 쓸 것인가의 두 가지로 모아졌다. 한인 사회 안에서 이런 일을 위하여 모금을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모두 잘 아는 터라 돈을 댈 수 있는 인사를 이민사 편찬위원장으로 모시자는 안이 나왔다.

그렇게 되면 한인 사회의 실정으로 봐 이민사는 공정하게 쓰여지기가 어려워진다고 나는 믿얻었다. 외부 재단 등의 그랜트를 좀 받을 수 있겠으나 그 경우에도 전액 지원은 어려워 일부 모금이 필요한데 공정성 시비는 여전히 생긴다.

역시 한인사회의 생리로 봐 사심 없이 돈을 낼 사람이 드문 것이다. 이민사 안에 자신이 돋보이게 다뤄진다는 보장이 없거나 아예 나오지도 않을 사람이 협조할 리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록이지만, 일어난 모든 사건을 미주알고주알 기록한다면 이 작은 사회의 역사도 몇 권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면 가치가 덜 할 것이므로 거기에 이론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 분야에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 순전히 사견인데, 한 가정의 족보처럼 보존하기 위한 게 아니라면 이민사는 사건 보다 의미 중심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의 40년에 가까워지는 호주 한인사회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중요한 시점을 중심으로, 그리고 그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한국과 호주 양국의 여건을 포함시키는, 거시적인 집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자면 한인사회에 대한 연구 자료도 있어야 하는 데 그런 게 아주 드물다.

1960년대에 나의 군대 동기생 하나가 제대 후 할 일이 없어 출생지가 연변인 한 부자 의사의 돈과 부탁을 받고 ‘간도 유목민사’를 썼다. 거의 800쪽, 두 권으로 된 화려하게 장정된 책을 펴보니 수백 개에 이르는 독립 운동 단체들의 회장과 간부들의 명단과 조직 과정 얘기가 거의 전부다.

여기서도 이민사를 쓰면 단체와 단체장 중심이 되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이름이 적힌 단체장의 후손들말고는 누가 읽고 보관할까?

정통성 시비

단체와 단체장 중심으로 이민사를 쓰면 또 다른 애로가 생긴다. 어떤 인사, 또는 어떤 세력이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다뤄졌느냐의 분쟁이다. 캠시 모임 후에 한 인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민사 안에 모씨가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존경 받을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이다.

누가 존경 받을 사람인가 또는 아닌가, 누가 한인사회에 크게 기여한 사람인가 또는 아닌가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한인사회에는 한인회로부터 제명을 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인회 자체를 ‘라비시’ 하는 사람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에 올라간다. 이런 분쟁과 집필의 전통성 시비를 없애는 길은 한인사회가 이민사기초위원회를 조직, 권한을 위임하는 것인데 매 한인회장 선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사회에서 그런 수권 행위(mandate)가 조용히 실천된 적이 없다.

너무 비관적인 견해를 말한 것일까. 아니다. 나는 정치와 역사가 전공인 한인회 사무총장 조양훈 박사가 틈틈이 이민사를 쓰기로 했다면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민사가 완성 될 때까지는 몇 개 시안이 나와야 한다. 아직 그런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다른 많은 뜻 있는 한인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김삼오/본지 편집고문, 한호지역문제연구소장,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sokim@hojudonga.com
200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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