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논쟁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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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논쟁에 부쳐
  • 김승력
  • 승인 2004.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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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스크바 연방정부로부터 연해주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로 한통의 편지가 왔다.  
올해로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이 되었으니 행사를 차질 없이 준비하기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만달러가 넘는 행사 준비금을 보내겠다는 공문이었다.
그동안 러시아 정부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했던 고려인자치회는 거금의 지원을 하겠다는 연방정부의 편지가 신기했는지, ‘러시아가 이제야 제대로 돌아간다’고 좋아라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문득 떠오른 생각은 작년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과 관심 속에 성대하게 치루 어진 미주이민 100주년 기념 행사였다.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는 기념행사는 고사하고 모국으로부터 거의 잊혀진 채 살다가, 현재에도 재외동포법이란 테두리 안에서 차별 받고 있는 고려인 동포들이 비교되며 연민의 감정이 새삼스러워졌던 것이다.
다행이 올해 러시아연방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관심 속에 140주년 행사가 공식적으로 준비되고 있다니 고려인 동포 사회로서는 가슴 설레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한때 러시아 동포사회에서 한인 이주 140주년이 2003년이냐 2004년이냐를 놓고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어서,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와 고려인협회가 각각 다른 입장을 가지고, 모스크바에 있는 소수민족 담당 장관에게 유권해석을 내려달라며 요청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만일 러시아 정부가 뒤늦게 2003년 이었다고 통보했다면 큰 행사도 치러보지 못한 채 140년이 되는 해가 지나가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년 연해주 동포사회는 나호드까에서 ‘고려인 문화의 날’ 행사를 이주 140주년 타이틀로 일단 치루어 내며 위기를 모면했다.
100주년 행사도 치루지 못한 고려인 동포 사회가 140주년 행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만든 행사가 작년 열린 ‘제3회 고려인 문화의 날’ 행사였던 셈이다.
연해주 고려인 동포들은 비공식적이었지만 140주년이란 타이틀을 달고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기념하고, 자신들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한,러 양국 모두의 관심을 끌어내는 슬기로운 지혜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여기에 두고, 작년에 140주년행사를 했는데 올 해 또냐, 언제가 정말 140주년이냐 라는 식의 논쟁은 고려인동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140여 년 전 두만강을 건넌 최초의 한인이 1863년이었는지, 1864년이었는지 논하고 밝히는 일은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러시아 정부와 대한민국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올 140주년 행사를 훌륭히 치루어 내는 일이 동포사회의 과제로 남았을 뿐이다.  

나는 벌써 성급하게 10년 후 150주년이 되는 고려인 동포 사회를 상상해 본다.
구소련 붕괴 후 뿌리를 찾아 연해주로 돌아온 지 이제 10여년. 아무 기반도 없던 연해주 벌판에서, 그 사이 동포사회는 참 많은 싹들을 키워내고 길러내고 있다. 민족문화자치회, 청년회, 노인단, 민족예술단, 재생기금, 고려신문 등등 새롭게 각종 동포 단체를 만들고 강제이로 인해 잃어버린 문화와 언어와 언로를 찾기 위한 노력들을 해나갔으며, 이제 조금씩 그 결실들을 맺어 가는 과정이다.
가끔 사정을 모르는 한국의 동포들은 한국과 비교하며 고려인 동포 사회가 너무 약하고 더디게 일하며 이질화 됐다고 말한다. 나는 그럴 때 마다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다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일군 10여년 얼마나 더 잘할 수 있겠느냐고, 이제 우리가 거름이 되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두고 보시라고, 10여년 후 150주년, 재외동포사 최초로 치루어 낼 성대한 행사에 고려인 동포사회가 얼마만큼 성장한 모습으로 모국앞에 돌아와 있을지...우리 지켜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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