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고 산삼샀다‘봉변’
상태바
멋모르고 산삼샀다‘봉변’
  • 미주 한국일보
  • 승인 2004.01.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모씨에게 2004년 1월12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바로 엊그제 월요일 오전 11시쯤이었다. 볼일이 있어 집에 잠시 들른 그 앞에 잠복중이던 공원관리국 직원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신분을 확인한 후 박씨를 차에 태웠다. 수갑이 바로 채워졌다.
버지니아 매나세스를 지나 어느 오피스에 당도하자 포승줄로 몸을 묶고 발도 묶었다.
“영화에서나 본 장면이 그대로 재연됐어요. 제가 무슨 큰 흉악범이라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TV 카메라도 그와 잡혀온 다른 한인들을 찍어댔다. 한 20-30명은 돼 보였다.
평생을 큰 죄짓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해온 그였다.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긴 했으나 왜 이런 곳에 잡혀와서 몹쓸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박씨는 보석금 5천달러를 내고 그날 저녁 석방됐다가 다음날 오전 다른 한인들과 약식재판에 출석, 정식 재판 일정을 통고 받았다.
되돌아보면 그가 불운을 겪게된 건 2001년의 어떤‘구매’ 때문이었다.
산삼을 판다는 광고를 보고 그가 전화를 하니 위치를 알려주었다. 쉐난도 공원 근처의 어느 옷가게였다.
“그 귀하다는 산삼이 큰 쓰레기통 같은데 2개나 쌓여있더라구요. 난생 처음 구경했는데 웅담도 판다고 자랑해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대형 냉장고에 보관중인 죽은 곰을 보여주었습니다.”
박씨는 건강에 도움이 될 것같아 1백여달러 어치를 사왔다.
얼마 뒤 형수가 병을 앓고있는 친척 형한테 그 웅담 이야기를 했다. 형은 길도 모르고 영어도 잘 못하니 함께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언제쯤 한번 방문하겠다고 전화는 했으나 바빠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가게로부터 왜 오지 않느냐는 전화가 왔다.
형과 그 가게를 다시 찾아 곰을 샀다. 점원은 형에게 지나가는 말로“너 가다가 경찰에 걸려도 모른다”고 했던 것 같다.
“1주일쯤 뒤로 기억나는데 쉐난도에서 웅담을 밀거래한 한인들이 체포됐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비로소 그게 불법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후 그 가게에서는 산삼, 웅담이 있다며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유혹했다. 그러나 위범임을 안 박씨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리고 잊고 있다 이번에 체포된 것이다.
“제가 위법했다는 것을 변명할 생각은 없어요. 그러나 저뿐 아니라 많은 한인들이 멋모르고 당한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가게를 차려놓고 광고를 내 고객을 유인한 후 함정수사를 하다니….”
박씨는 분한 마음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그가 대화를 나눠본 대다수의 한인들도 억울한 케이스가 많아 보였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들과 같이 잡혀왔어요. 길도 모르고 영어도 서투르니 산삼을 사러갈 때 아들을 데리고 간 거지요. 어떤 분은 교회의 아는 분 부탁으로 심부름해줬다가 잡혀왔어요. 늙으신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멋모르고 샀다가 잡힌 사람도 있고….”
그가 정작 분개하는 건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법 때문에 실수한 것을 자칫 파렴치범으로 보는 한인사회 일부의 시각이다.
“질나쁜 범죄나 저지른 것처럼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린 밀매 조직도 아니고 어쩌다 실수해 봉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한인사회에도 계몽이 됐을 겁니다. 앞으로는 저처럼 날벼락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종국 기자>

입력시간 : 2004-01-15


주요기사
이슈포토